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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 Jun 02. 2021

걸음에 대한 단상들




I 같이 걷기 I


"잠깐 같이 걸을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애인일 수도 있고, 동네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겠다. 나의 대학 시절 경우엔 학기가 시작되면, 방학 동안 사이좋게 살이 오른 친구들과 원래 몸으로 돌아가자며 옆 학교 호수 길을 걷곤 했다. 호수를 두 바퀴 도는 데에 5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 물 밑에 시체가 몇 구 있는지 아냐며 공포 분위기를 만들다가 겁에 질린 친구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기도 하고, 연애 상담을 학업 고민보다 심각하게 나누기도 했다.



졸업을 하고 서는 친구들과 같은 아파트에 모여 살았다. 저녁이 되면 같이 근처 중학교 운동장을 경보하듯 걷기도 하고 마트까지 걸어갔다가 약간의 장을 보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친구와 같이 가볍게 하는 산책은 따듯한 차 한 잔과도 같았다. 함께 살면서 사소하게 생기는 서운함 들도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눈처럼 녹아 없어지고는 했다.



지금의 동거인 김종현과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산책을 한다. 천천히 걷지만 걸음을 멈추는 일은 별로 없는 나와 달리 김종현은 자주 멈춰 서서 참새 사진을 찍거나 꽃향기를 맡는다. 정말 낭만적인 성격이구나 싶어, 연애 초에는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곤 했는데 이제는 그냥 내 갈 길을 먼저 간다. 그가 멈출 때마다 기다리는 것은 조금 귀찮기 때문이다. 헐레벌떡 뛰어와서 너무 귀엽지 않냐며 박새와 직박구리 사진을 보여주는 그에게 약간의 리액션을 해 보이면, 나의 영혼 없음을 귀신같이 알고 입을 삐죽거린다. 멈췄다 나에게 달려왔다, 멈췄다 나에게 달려왔다 하는 김종현을 보며, '네가 바로 참새로구나' 속으로 생각한다.






I 아주아주 느린 걸음 I


강남 빌딩 숲 사이에 작게 자리한 영세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오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매일 아침 콩나물시루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콩나물시루'라니 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서글픈 감탄을 하곤 했다. 강남역 ZARA 매장 앞에 내려 일터까지 10분여를 걸었는데 처음 내 걸음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느렸다. 이리저리 어깨빵을 당하며 모르는 이들의 찌푸러진 미간을 마주하다 보니, 얼마 안 되어 나의 걸음 속도도 많이 빨라져 있었다.



퇴근 시간은 일반 직장인들보다 훨씬 이른 오후 2시였다. 저마다 커피 한 잔씩을 들고 걷는 사람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아침 보다 한결 차분해 보이는 그들의 걸음 사이로 나의 발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좀머 씨처럼 앞만 보고 버스 정류장으로 돌진하던 어느 날, 풀린 운동화 끈에 걸려 대차게 넘어지고 말았다. 손바닥과 무릎에 생채기 난 그제서야 의문이 생겼다. 집에 빨리 가야 할 이유도 없고 이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토록 빠르게 걷고 있을까? 왜긴 왜야, 몸에 밴 강남 출근길의 속도 때문이지.



손바닥을 털고 일어나 사람들 보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길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 다음 의식적으로 천천히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할 땐 눈앞에서 파란 불이 반짝여도 뛰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깊고 커다란 한숨이 쉬어졌다. 편안했다. '이 감각을 잊지 말아야지. 나의 속도를 찾아야지.' 다짐한 날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걸을 일이 생기면 시간이 촉박하지 않는 이상 아주아주 느리게 걷는다.






I 자기만의 속도 I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세 사람 이상이 함께 걷게 되면 나의 느리게 걷기는 없던 일이 된다. 특히 길 안내자 역할을 맡게 되면 자꾸 걸음이 빨라진다. 최적의 길로 최단 시간에 무사히 목적지로 무리를 이동시켜야 한다는, 아무도 내게 기대하지 않는 책임감에 짓눌리는 바람에, 지도 앱을 켜고 동서남북을 가늠하느라 시간을 다 쓰며 맨 앞에서 종종 거린다. 그러다 보면 정작 따라오는 이들이 나를 진정시키기도 하고, 길을 찾아주기도 한다. 그러면 잠시 제정신이 돌아오는 듯하다가도, 이내 다시 혼자 앞질러 걸으며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처럼 무리에서 가장 먼저 이탈자가 되는 친구 H가 있다. 나와 다른 게 있다면 너무 느려서 혼자 남겨진다는 것이다. 한참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H가 콧노래를 부르며 따라오고 있다.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무리를 놓치진 않을까 하는 안절부절 따위 그에겐 없다. 친구들이 기다려 주겠지, 안 기다려주고 먼저 가도 괜찮아, 왜들 저렇게 빠른 걸까, 길 잃으면 전화해서 물어봐야지, 그나저나 이 동네 이쁘네, 우와 고양이다! 뭐 이런 의식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H 자신이 길 안내자가 되어야 할 때는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게 목적지를 향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침착하게 방법을 찾는 거 같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 있을 때 제 속도를 찾는 사람'이고 H는 '언제나 제 속도대로 사는 사람' 인듯하다.



그런 우리도, 지도를 잘 못 읽고 계획성이 없다는 면이 매우 닮아있다. 서울에서 둘이 만나 놀던 어느 날, 초행길이라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 H가 "왠지 이 길 따라 걸으면 나올 것 같다! 촉이 온다 언니." 해서 한참을 걸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식이었다. 그쯤 되면 누구 하나 지도 앱을 켤 만 한데 그러지 않았다. 봐도 모를 것이기도 하고, 그 '헤맴'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었을 거다. 결국 가려던 곳은 영원히 찾지 못했지만, 발바닥 아프게 걷다가 아무 데나 들어가서 맛없는 식사를 하는 것에 조금도 불만이 없는 우리였다.






I 산책길에 만난 할머니 I


얼마 전 혼자 밤 산책을 하다가 재미난 경험을 했다. 좁은 산책길 초입에 들어서자 내 앞에는 뒤로 걷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흘끗 흘끗 뒤를 보시며 건강 박수도 치시던 할머니. 나도 느리고 그분도 느렸기 때문에 한참을 마주 보고 걷게 되었다. 약간의 민망함 속에 산책길이 끝날 때까지 그 기이한 동행을 했다. 할머니 왜 그렇게 걸으세요? 묻고 싶었지만 그 상태에서 질문을 던지는 건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거 같았다.



집에 오는 길에 '뒤로 걷기의 효능'을 검색해 보았다. 과연 엄청나게 많은 포스팅들이 있었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기 때문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을뿐더러 일반 걷기보다 열량 소모도 더 있다고 했다. 오! 그렇구나. 하지만 야외에서 뒤로 걷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기에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나중에 인적 드문 산책길을 걷게 되면 시도해 봐야겠다.






I 무례한 바람 I


노인의 걸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언젠간 내가 가지게   걸음을 말이다. 김기택 시인의 [한가한 숨막힘]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옆으로 휙휙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빠른 시간이
무례하고 거친 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걸음은 파닥거리는 몸을 붙잡고 잠시 기우뚱거리다가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있다.



오래전 우연히 읽은 이 시를 통해 '무례한 바람'이라는 표현을 접한 후부터, 노인의 곁을 지날 때 속도를 줄이게 되었다. 급한 일이 있어도, 스치는 순간만은 바람이 일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다. 이런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발목에 반깁스를 했던 때였다. 아직 물이 마르지 않은 무거운 깁스를 차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며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절뚝거리며 최대한 빠르게 걸었는데도 다 건너기 전에 신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같이 건너던 사람들은 쌩쌩 바람을 일으키며 내 곁을 무심히 지나갔다. 우리나라 횡단보도 산정 시간이 이렇게 짧은 줄은 이전엔 미처 몰랐었다. 건강한 청년 걸음에 맞춰진 시간이라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서글픔과, 열외자가 되고서야 뒤늦게 문제를 인식했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찾아보니 교통약자 보호구역에서만 횡단보도 시간이 조금 더 길다고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교통약자들은 보호구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어디에나 있다. 지하철 문제도 있었다. 깁스를 한 채로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했을 때 또 당황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 하나하나를 겨우 오르고 나니, 길 건너 멀리 다른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걸 알았다.




겨우 잠깐의 반 깁스를 한 것으로 엄살을 떤 덕분에 뒤늦게나마 어떤 시선이 생겼다. 이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더 알아가다 보면, 장애인 이동권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서울의 22개 역에는 아직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혼자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지상부터 승차장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안희경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휠체어 진입 램프가 없으니 장애인이 접근하려면 리모델링을 해야겠죠. 하지만 애초부터 이런 설비를 해 놓았다면요? 이는 장애가 있건 없건 모두 함께 이용할 거고 거기에 장애 설비 비용이라는 질문이 나올 이유도 없을 겁니다.
(...)
단순합니다. 바로 이 사람들을 애초부터 제외시켰다는 겁니다. 나중에 함께하려니 비싼 거죠.




나의 평범한 걸음이, 느리게 이동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에게 '무례한 바람'이 되지 않도록 살피는 일. 그 일에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 걸음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걸음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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