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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 May 16. 2021

말보다 중요한 것


  글이 영 써지지 않던 날이 있었다. 대단한 글을 쓸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단 것을 먹으며 머리를 쥐어뜯다가 장소가 바뀌면 좀 괜찮을까 싶어 스타벅스에를 갔다. 1층에 마음에 드는 자리가 있었지만 음료 제조하는 소리 때문인지 좀 시끄러웠다. 커피를 주문한 뒤 잠시 고민하다가 2층으로 올라갔다. 



  콘센트 자리는 언제나처럼 만석이었다. 미간을 찡그리고 자신의 노트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눈들. 나는 가서 어깨를 톡톡 치고 "무엇을 하세요?" 물어보는 상상을 했다. 그리 편하지도 않은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뭘 그렇게들 하고 있는 걸까. 다 대학생은 아닌 듯한데, 나처럼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글을 쓰러 온 사람도 여기 이 공간에 있을까? 이런 걸 궁금해하다니 어지간히 글쓰기 싫구나 나 자신.



  다행히 내 노트북은 충분히 충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빈자리를 찾으면 된다. 고 생각 하며 주위를 둘러봤는데...... 어째서인지 무릎 높이밖에 오지 않는 낮은 테이블들만 가득했다. 왜지? 여기서 공부하지 마세요 하는 무언의 메시지인 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커피숍 테이블들이 이렇게 낮았단 말인가. 나만 모르는 이유가 있는 걸까? 



  그러다 구석의 한자리를 발견했다. 화장실 바로 앞이었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를 주기적으로 들어야 했지만 그런 자리라도 누가 채갈까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의자가 튼튼하고 테이블 높이도 적당해서 기분이 좀 좋아졌다. 그렇게 가방을 놓고 1층으로 내려가 커피를 받아왔다.



  룰루랄라 나의 화장실 지킴이 자리로 돌아왔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 손님 둘이 각자의 음료를 들고 소란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몸동작이 요란한 것으로 보아 왠지 목소리가 엄청 클 것 같았다. '편견이겠지. 편견일 거야. 나의 편견을 제발 깨주세요. 저는 오늘 글을 꼭 써야 한답니다. 더 갈 곳도 없다고요. 아니지 여긴 커피숍이지 도서관이 아니야. 그들은 대화를 나눌 권리가 있으며 나는 이어폰을 끼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가방을 열어 노트북을 꺼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와이파이를 연결하기도 전에 사탄 마귀와 썩은 영혼에 대한 살벌한 토론을 인트로도 없이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 거의 일방적인 대화이긴 했다. A가 세상과 신에게 드는 의문을 짜증 가득한 말투로 말하면 B가 굉장히 화려한 언변으로 A의 말문을 막았다. 너에게 그런 마음을 주는 게 무엇인 거 같냐며 못된 친구 이름 말하듯이 마귀 사탄을 불러댔다. 언젠가부터 너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의심을 감지하고 있었다며 다 알겠다는 듯 친구를 바라보는 B의 눈에선 일말의 이해심도 보이지 않았다. 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이어폰 볼륨을 최대치로 하고 유튜브에서 바흐를 검색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플레이했다. 그러나 내 귀에는 스타벅스 매장 음악과 바흐, 이름 모를 열혈 청년의 마귀론이 리믹스 되어 들릴 뿐이었다. 참다못해 우주 최고 차가운 눈빛을 쏘아 봤지만 그런 하찮은 증오가 저들에게 가닿을 리 없었다.



   "저기요 대화하시는 건 좋은데,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했다. 나는 쫄보다. 괜히 말 걸었다가 나도 그 자리에서 B의 설교를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내적 눈물을 흘린 지 40여 분 만에 저 멀리 구석 창가에 자리가 하나 빈 것을 발견하고 노트북을 쟁반 삼아 짐을 올려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그 후엔 글을 좀 쓸 수 있었다.



  나의 지난 시절이 스쳤다. 저런 비슷한 말투와 눈빛을 가진 적이 내게도 있었던 거 같다. 다 깨달은 듯 오만했던 나의 말들에 상처받았을 친구들과, 그 반대 상황으로 인해 내가 떠나온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 좋으니 오만함 만은, 틈 없이 견고하고 무서운 저 표정만은 영원히 잃어버리고 싶다 생각하며 얼음이 든 컵을 만지작거렸다.








  밤 10시 즈음 초고를 얼추 완성했다. 매장이 닫을 시간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데 갑자기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며 주말엔 교회도 같이 다녔던 동네 친구가 있었다. 뜨개질로 벙어리장갑 만드는 법도 알려주고 어려워 보이는 예술 영화 DVD를 빌려, 함께 하품하며 보던 마음이 잘 맞는 친구였다.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었는데 어느 날 불쑥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21살 때였다. 우린 역 근처 닭갈비 집에서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했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더니 신수가 훤해졌다며 아주 광채가 난다고 친구를 놀렸다. 그 말을 듣고 따라 웃을 줄 알았던 친구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날 가만히 보던 친구는, 자신의 얼굴이 이렇게나 좋아진 이유가 있다며 불쑥 자신이 다니는 교회 전도사님을 만나보지 않겠냐고 하는 것이다. 나는 조금도 곤란해하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당시에 내 친구들은 거의 다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의 교회에 한 번씩 놀러 가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별로 특별한 제안은 아니라 생각했던 거다. 흔쾌한 나의 대답을 듣고 활짝 웃던 친구는 핸드폰을 보는 척하더니 마침 전도사님이 이 근처에 계신다며 후식 먹을 겸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나는 조금 서운했다. 오랜만에 둘이 만나서 근황 이야기를 신나게 나눌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낀다니 말이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친구 손에 이끌려가, 텅 빈 한낮의 맥도날드 2층에 멍청하게 앉아있었다. 전도사라는 사람은 시간이 꽤 지나서야 나타났다. 우리보다 열몇 살 정도 많아 보이는 그는,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밝게 인사했다.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니? 나 기분 좋으라고 거짓말하시는구나 생각하며 그분을 따라 밝게 웃었다. 처음엔 평범한 대화들이 오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나 보다 나이가 많다 해도 초면에 저런 질문은 매우 무례한 건데 그때는 그런 걸 잘 몰랐다. 그저 친구가 좋아하고 따르는 어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로 행복하냐고. 나는 다시 한번 그렇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칭찬받고 싶었다. 이제 저 전도사라는 사람은 나와 친구를 번갈아 보며 '이렇게 올바른 청년들이 다 있나'하며 세상 따듯한 표정을 짓겠지? 싶었는데 왜인지 단어만 조금씩 바뀐 채로 비슷한 질문이 계속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대답하기를 거부하고 정색 비슷한 걸 할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21살 한소리는 그저 열심히 행복해할만한 이유들을 생각나는 데로 나열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두 사람의 표정은 난처해졌다. 잠시 말이 없던 전도사는 포기한 듯 한숨을 쉬더니 이만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이 오고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거기에 앉아있었던 거다. 친구는 자기 교회 자랑을 좀 하다가 곧 있을 수련회에 같이 참석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수련회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고3 수학여행도 눈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었다. 괜찮다고 정중히 거절한 뒤 다른 이야기를 좀 나누다 헤어졌다. 그날 이후로 친구는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친구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었다. 그 종교 이름이 뉴스에 나오고 인터넷 기사로 여기저기 뜨면서 그들의 포교 수법이 쓰인 글을 보게 되었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 평일 낮의 맥도날드 2층이라는 장소. 모두 내게 일어난 일이었다. 세상에, 여태껏 친구와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다 여기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내가 그때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수련회에 따라갔다면?  그런 상상을 하니 아찔해졌다. 왜인지 배신감은 들지 않았고 친구가 걱정이 됐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있었다. 




  신념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 좋다고 느끼는 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단단한 논리를 무기처럼 지니고 다가오는 사람. 이미 정해진 답을 가지고 질문하는 사람. 함부로 상대를 가엽게 여기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는 아무것도 나눌 수 없다. 때로는 말보다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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