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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 Jul 07. 2021

원격제어와 조각 일기

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가게 문을 열고 포스기를 실행하자. 순식간에 오색 찬란한 바- 들이 줄지어 채워지면서 뭔가가 자동으로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내가 뭘 잘못 눌렀나.


얼마 안 있다가 화면엔 에러 표시가 떴고, 그 후론 영 포스 프로그램이 열리지가 않았다.


어찌저찌 해서 포스사 직원이 원격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는데, 그 원격 조종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신기하다.


나는 손 놓고 있는데 화면이 분주하게 혼자 움직인다. 자비스처럼.


너무 신기한 나머지 나는 직원이 프로그램을 다시 깔고 어쩌고를 하고 있는 15 동안, 불멍 하듯, 얼굴 모를 그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프라이빗  무언가를 훔쳐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우스의 움직임이 전혀 기계스럽지 않다는 면에서(기계가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미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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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 일기도 블루투스 키보드로 핸드폰 화면을 보며 쓰고 있는 첨단인 주제에, 새삼스럽게 원격제어를 신기해하는 게 좀 이상하지만, 할튼 그렇다.


일종의 해킹 같은 거잖아. 내 컴퓨터를 남이, 저 멀- 리서 막 자기 컴퓨터처럼 프로그램을 깔았다 지웠다 하는 거잖아.


그건 곧, 내 컴퓨터에 있는 일기를 복사해다가 자기 메일에 로그인해서 보낼 수도 있는 거잖아. (누가 그렇게 하겠니..)


너무 요상 방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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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게 이렇게 첨단화 (왜 이렇게 ‘첨단’이라는 단어도 낡은 거 같지?) 된 상황에선 역설적으로 아날로그 기술들이 더 신기하다.


LP가 그렇지, 육안으론 보이지 않는 판의 구멍을 바늘이 긁으면서 노래가 나오는 건… 도저히 원리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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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어둡다. 오늘은 할 일이 많다. 기타 레슨도 받아야 하고 마치자마자 오산으로 달려가(전철이) 조카님들 저녁상을 차려드려야 한다. 그리곤 집에 와서 9시 30분부터 친구들과 줌 채팅.


허허 화상으로 하는 모임이라니 이것 또한 얼마나 첨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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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면서…. 장마도 시작되면서.. 손님 수가 확 줄었다.


나는 오늘도 선물 받은 책을 읽는다.


어제 다 읽은 장류진 작가 장편 소설[달까지 가자]는 곧 독후감을 쓸 예정.


당최 공감 가지 않고 관심도 없는 ‘코인’ 이야기. 한소리는 어떻게 읽었을 것인가!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던 것일까!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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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시인의 에세이, [일기시대]를 읽는다. 시인의 언어는 참 새롭고 부드럽고 기괴하다. 그 언어들이 모여 내 마음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문장을 만든다. 기존의 단어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던 정체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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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가게에서 방금 아이스티 6잔, 아메리카노 12잔을 시켜, 나오는 족족 들고 갔다. 쟁반을 안 돌려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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