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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 May 01. 2021

남에게 기대어 행복한 것은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리뷰

마이크 리 감독의 2010년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톰과 제리 부부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비교적 안정적이게 자신을 사랑하고, 그 넉넉함으로 주변을 돌보는 이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곁에는 왜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행복해지지가 않는 사람이, 그 온기를 나눠 달라는 듯 주위를 맴돌고는 한다.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은 이 위태롭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제리 부부와 그들의 친구 메리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주말농장을 함께 가꾸고, 하루하루 주어진 행복과 불행을 무난히 마주하며 살아가는 제리와 톰 부부.

남편 톰의 친구 켄과 아내 제리의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메리는 부부의 집을 자주 드나들며 잘 정돈된 두 사람의 영역에 가족처럼 머물고자 한다. 특히 메리는 더 자주, 더 깊숙이 부부의 행복에 끼어 들어가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제리와 톰은 친구들이 집을 불쑥 찾아와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따듯한 차를 내주며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준다. 쉽게 조언하지 않고, 대강 흘려듣지도 않는다. 자신들이 어디까지 도울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만큼을 정성껏 돕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배려에도 메리는 좀처럼 행복해지지 않는다.


퇴근 후 제리와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메리



메리는 빨간 차를 중고로 사서 끌고 다녀 보기도 하는 등 나름의 노력으로 스스로 행복해지려 하지만 이내 사소한 위기들에 쉽게 무너진다. 그리곤 습관처럼 제리 부부 집에 찾아오기를 반복한다.


어릴 때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감정의 결을 잘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다. 살아오며 누군가에게 메리이기도 하고, 또 제리이기도 했던 시간들을 거쳤기에 지금 보는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일 테다.


메리를 완벽히 소화해낸 배우 레슬리 맨빌의 놀라운 연기와 함께, 지극히 현실적인 시나리오, 상대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서늘한 연출까지 참 훌륭한 영화였다.




삶을 아우르는 행복은 왜 쉽게 옮겨오고 또 옮겨가지 못하는 걸까. 그건 태도의 문제일까?

가끔   힘들다 말하는 친구가 안쓰러워 칭찬과 따스한 말들로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도 일방적인 에너지 소모가 껴지 나를 지키기 위해 선을 긋고 만다. 그런  자신이  못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선을 마구 넘고도 나를 살피지 않는 친구를 보며 마음이 눅눅해질 때도 있다.


이 영화의 감상평을 보면 두 가지 반대되는 의견을 볼 수 있는데

'제리 무섭다. 적당 이상의 친절은 절대 베풀지 않는 모습이 매정하다.'

'메리 참 이기적인 거 같다. 제리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이입이 되는지에 따라, 나와 내 친구들과의 관계를 돌아볼 수도 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줘"라는 메리의 말이 따스한 위로가 아닌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할게 들어줘'라는 간절한 부탁으로 들리는 것은 제리 쪽으로 한껏 기울어져 있는 메리의 자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고마워, 하지만 난 괜찮아"라는 제리의 답변은 어쩌면 메리에게 '네가 없어도 내 인생은 크게 달라질 게 없어'라는 말처럼 차갑게 다가왔을 수 있다. 메리가 참 가엽기도 하고, 억지로 무언가를 꺼내진 못했던 제리의 입장도 알 것만 같다.




살아보니 인생은 피해자 가해자가 분명히 나뉘지 않는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여정이었다. 제리가 메리를 위해 자신의 선을 허물고 끝없이 그녀를 받아주었다면, 그러면 과연 메리가 행복했을까? 제리는? 남에게 기대어야지만 행복한 것은 너무나 불안하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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