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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무 Oct 25. 2019

여과지에 담지 못한 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나를 싫어한다. 좋은 말을 내뱉는 것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과정과 꽤 비슷하다고 느낀다. 따뜻한 물을 주전자에 끓이고 여과지에 고운 커피가루를 담아 그 물을 조금씩 신중하게 흘러내듯,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위해 고운 말들은 내리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마음 속에 여전히 담아두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나는 종종 마음 속 여과지 위로 한바가지의 물을 철퍼덕 하고 쏟아내버린다. 당연스럽게도 촘촘하디 촘촘한 여과지를 통과하지 못한 물은 범람하여 그대로 밖으로 쏟아지고 만다. 그 결과로 나온 커피가루와 섞인 쓰고 싱거운 물같은 말들은 아직도 녹지않고 내내 내 마음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

  다인이를 처음 안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그녀가 허리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수술 부위에 타투를 하고 싶다던지 등이 파인 옷은 입기가 꺼려진다던지의 이야기를 한걸로 보아 그녀에겐 좀 아픈 기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평소에 그 얘기를 굳이 꺼낼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연히 그 사실을 조금은 잊고 살았다.

  어느 날 그녀의 휘경동 집에 놀러간 날이었다. 자기 전에 그녀와 나는 나란히 누워서 작은 이불 안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평소에 몸을 비틀어 뼈 소리를 내던 습관이 있던 나는, 그날도 어김 없이 잠들기 전에 열심히 온 몸을 비틀어대고 있었다. 하루종일 구부정했던 탓인지 조용하고 작은 방 안에 내 척추들이 뚜두두둑. 따드드드득. 괴기한 소리를 내며 비틀어지는 중이었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 안나지만 아마 어둠 속에서 걱정어린 목소리를 한 다인이가 그래도 괜찮냐고 물었던 것 같다. 나는 계속 이리저리 몸을 늘리고 땡겨가며 시원해. 언니도 해봐. 하고 무심코 말했다. 조용히 있던 다인이가 나는 수술 받아서 못해 하더니 이불 속에 몸을 깊이 우겨넣었다. 그 말에 얼어버린 나는 더 이상 몸을 비틀던 짓거릴 할 수가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 상태로 나는 한쪽 팔을 이마에 올린 채 미안함에 몸서리 치는 시간들로 밤을 보냈다. 꽤나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사과해야할까. 사과하면 더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밤새 나는 나를 꾸짖었다. 알고있었으면서. 조금만 생각했으면 언니도 해봐. 그딴 말은 안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아마 술도 한잔 먹은 상태였으므로 나는 잠이 들었고, 아침엔 또 서로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 일은 그렇게 시간에 묻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씩 다인이의 뒤로 난 흉터를 보며 휘경동 그날 밤을 생각한다. 그때 다인이 마음이 어땠을지. 다인이는 아마 잊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내가 앞으로도 다인이의 흉터를 보면서 매번 그 날의 나의 실수를 생각하리란 걸 알고 있다.

  이 다음으론 재은. 나의 친언니이기도 한 사람. 재은은 나보다 분명히 4살이나 먼저 태어난 언니지만 가끔 나보다 4살이나 어린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아졌다가 또 어느날엔 다시 의젓해져서 내가 푹 기댈만큼 커다래지는 그런 엉뚱한 사람이다.

  이번 년 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다. 그러니까 재은과 나에겐 할매 라고 불리는 사람. 그녀는 재은과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를 도맡아 키워주곤 했었다. 바쁜 자식이 짐가방과 함께 우리를 집 앞에 덜렁 내려놓고 가도 싫은 내색 한번 없었다. 몇 년 후 사춘기가 제대로 접어든 여고생과 여중생 둘을 맡으면서도 자식에게 전화해 이제 그만 애들 데려가라 한 마디 해본 적이 없는 어른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나는 온 세상이 멍할 뿐이었다. 언젠가 재은과 나는 누워 만약에 할매가 죽으면 우린 어떨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 있다. 그런 이야기를 시작할 때쯤 재은과 나는 깊은 이야기가 가능한 나이였고 할매는 이미 만신이 쑤실 나이였다. 그런 if가 등장할때마다 재은은 농담식이지만 항상 나도 따라죽을거야.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성인이 되고 각지에 흩어져있을 때 그녀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장례식장에 재은은 우리 가족들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었으며 또 그 곳에서 가장 많이 운 사람 중 한명이었다. 장례가 계속 되는 며칠동안 조용할 틈마다 영정사진 앞에서 재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웃기게도 나는 정말 거의 울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는 탓도 있었겠지만, 요양원에서 모든 기억을 잃고 죽을 날만 기다렸던 그녀가 이제야 편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녀의 죽음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것은 이성적인 나의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재은은 이런 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영정사진 앞에서 바닥을 치며 죽지마 죽지마 하고 울었다. 나는 그런 재은을 보면서 속상하고도 미워서 우는 그녀 옆에 서서 그만 좀 울라고 다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자꾸 죽지마 가지마 하면서 울면 할매가 어떻게 세상을 떠. 언니같으면 집밖에 나가려고 하는데 어린애가 바짓가랑이 붙들고 늘어지면 나갈 수 있겠냐고. 그거랑 지금 뭐가 달라. 그만 울어. 이제 보내드려. 냉철하고도 지독한 말들이었다. 그런 말들을 들은 재은은 들은 채를 않다가 바삭하게 말라있는 내 얼굴을 노려보고는 독한 년. 한마디 쏘아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영정사진과 재은을 등지고 나와 다른 가족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그 날이 장례식의 마지막 날이었다.

  밤이 되도록 재은은 눈물이 한가득 맺힌 얼굴로 영정사진 앞에 앉아 계속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영정 사진 앞에서 자겠다고 했다. 나는 또 그 모습이 미워서 그러지 말고 나와서 자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이모가 말없이 언니 옆에 이부자리를 까시더니 내게 와서 누우라고 말하셨다. 그리곤 본인도 우리를 껴안고 나란히 누워서 눈을 감더니 말했다.

오늘 여기서 자.

할머니 옆에 자는 마지막 밤이야.

그 말에 재은을 다그친 내가 너무 미워져서 할매 영정 사진을 바라보다 울었다. 재은도 눈물을 훔치며 계속 중얼거렸다. 멀리 있을 땐 듣지 못했지만, 옆에 누워서 들으니 재은은 할매에게 마지막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순수하고 감성적인 마음이 부럽고 애틋해서 그 날 밤은 이성적인 나를 탓하고 탓하다 잠이 들었다.

  그 후로 서울에 올라와서 매일 혼자 잠드는 나는 종종 할매를 떠올린다. 한바탕 할매 생각이 지나가고 나면 재은을 다그쳤던 그 날이 생각나서 마음이 쓰라리고 쓰리다. 거친 커피 가루가 내 마음을 긁어내듯 아픈 밤들이다. 그래도 착한 재은은 아직도 본가에 가는 날엔 나에게 카톡으로 할매와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내준다. 마냥 어린아이 같이 울던 재은은 사라지고 또 의젓한 언니가 되어있다. 재은이 그 날의 차가운 나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내게 기대주었으면 하고 내심 바란다. 사실 다정다감한 동생이 될 자신은 여전히 없지만,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구는 재은을 이해할 자신이 조금은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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