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잊게 하는 '몰입'에 대해서
2013년도에 발매된 노래,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함께 있으면 시간의 개념이 사라지고 하루가 1분 1초 같다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 가사가 공감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내 모든 주의와 관심을 집중하기에 시간의 개념이 사라진다. 시간의 개념은 사라지고 그 대상에게 몰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몰입'에 대해서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대상에 대해서 완전히 몰입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한다.
매일 주어지는 24시간. 이 시간은 살아서 숨을 쉬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다. 사람에게 시간만큼 평등한 것은 없다. 그래서일까?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이나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바로 '시간'에 대한 통제 방법이다.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계획하고 통제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진정한 경험이나 성취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참 많다. 몸과 마음은 바쁘기만 한데 성취감이나 즐거움은 느껴지지 않고 남과 비교하며 계속해서 뒤처지는 기분에 우울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경쟁에서 뒤처진 나 자신을 보며, 좀 더 빡빡한 계획을 준비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 뿐 내 삶과 경험의 질을 높이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가르쳤던 고등학교 2학년의 여학생의 경우가 그랬다.
그 학생의 집에는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있었다. 그 학생의 방은 2층에 있었는데 우리가 공부를 할 때마다 이모님이 과일과 음료를 내어 주셨다. 널찍한 방에는 여러 가지 참고서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그 친구의 취향이나 관심이 드러나는 방은 아니었지만, '공부'를 하기에는 무척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방이었다. 우리는 그 방에서 매주 2회 2시간 동안 수업을 했다. 그 학생은 조용히 나의 말을 듣곤 했다. 아늑하고 편안한 방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말이다.
나는 그 학생을 1년 넘는 시간 동안 지켜봤다. 국어, 영어, 수학을 비롯한 주요 과목의 과외가 가득 들어차 있는 알찬 계획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학생은 아침부터 늦은 저녁 시간까지 시간대별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을 계획하는 것으로만 본다면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알찬 계획에 따라 공부를 하고 또 했지만 그 학생의 성적은 그리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기간 내내 알찬 계획표에 따라 많은 시간 공부를 했지만 수능에서도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이름만 들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큰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계셨다. 교육, 그것도 학원업에 종사하는 부모님답게 아이의 커리큘럼에 많은 신경을 쓰셨고, 그 시간표 역시 그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짜 놓은 그 시간표는 그 친구에게 그리 큰 의미가 되지 못했다. 부모님이 커리큘럼과 시간을 계획하고, 그 시간대 별로 그 과목을 전공한 선생님들이 그 시간을 통제하며 아이와 함께 공부를 했지만 아이의 성적은 오르지 못했다. 시간을 계획하고 효율적으로 통제한다면 좋은 결과를 이어져야 할 텐데, 무엇이 빠졌던 걸까?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사례는 정말 많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목표와 계획을 세워놓고 시간표에 따라서 열심히 그 계획을 실천해 나가는데 그것들이 중요한 경험이나 성취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 말이다. 목표도 세우고 시간도 확보하여 매일 실천을 하는데 왜 그것들이 성취로 연결되지 않을까? 시간을 투자하고 돈을 투자해서 습관처럼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수행한다면 지능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결과치는 얻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편 공부를 잘하는 많은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잠은 충분히 많이 자고, 공부하는 시간에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고 말이다. 이 대답에는 거짓이 없다. 아이들은 모두 진실된 자세와 눈빛으로 그렇게 말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정량적인 객관적 단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질적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해를 하곤 한다. 이 아이들은 그저 주어진 시간을 질적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집중력 도사이다. 주의를 기울여 시간을 잊고 공부에 빠져들기 때문에 때로 이 아이들은 잠자는 것을 잊고 공부를 했을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공부에 몰입하고 빠져들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시간을 아무리 효율적으로 계획한다고 하더라고 가장 중요한 것인 시간을 얼마나 질적으로 사용하는가의 문제이다. 몰입을 통해서 말이다. 주의를 집중하고 몰입을 함으로써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매일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질적인 경험, 유의미한 성취로 이어지기 어렵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여겨질 테지만 주의를 집중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반면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주어진 시간을 통제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서 자신의 주의를 집중하고 몰입을 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몰입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물속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물고기처럼 앞에 있는 대상에 몰입을 한다. 몰입의 시간에는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몰입을 하는 절대적 시간이 길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자기 스스로를 내맡긴다. 레고 방에 들어가서 몇 시간 동안이나 레고를 만들기도 하고, 모래사장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모래 놀이를 하기도 한다. 아주 어린아이가 휴지를 찢는 일을 30분 동안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모든 경험을 질적으로 만들어간다. 아이들의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지는 이유가 호기심을 가지고 질적인 경험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그런 경험을 한 번쯤은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남편과 함께 1박 2일 내내 1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는 데 몰입을 해 본 경험이 있다. 클림트의 <KISS>라는 작품이었다. 이 그림은 황금색과 노란색, 검은색이 주로 사용된 작품으로 퍼즐들이 굉장히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난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처음에 이 퍼즐을 시작할 때에는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시간이 가는지 밖이 어두워지는지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주말 내내 그 퍼즐을 맞추는 데 시간을 썼다.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서 퍼즐을 맞췄다. 만약 누가 시켜서 이 짓을 했다면 절대로 끝까지 하지 못했을 일이었지만, 우리는 그냥 계속 이 작업을 했다. 집중을 해서 퍼즐을 맞추고 결과물이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뿌듯했지만, 사실 그 결과물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유명 작가의 카피된 한 그림일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퍼즐을 맞출 때의 몰입감과 그것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대단했다. 그것은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것이었다.
시간을 계획하여 조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언가에 주의를 기울여 집중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몰입을 할 수 있어야만 그 시간에서 진정한 경험과 의미가 생겨난다. 머릿속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을 떠올리면서 책상 앞에서 앉아서 책을 펴 놓고 공부를 한들 그것이 ‘공부’는 아니다. 그저 공부를 하는 시늉을 내고 있을 뿐이다. 시간을 잊고 무언가에 빠져 몰입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해 보았다면, 그 경험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엇을 했을 때 그런 느낌을 받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경험에 빠져들 수 있는지를 몸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성취나 목표가 생겼을 때, 그 몰입의 경험을 복제할 수 있다면 당신의 시간표는 제 의미를 다 할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이 진정으로 의미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성취와 목표에 24시간을 해도 모자란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몰입을 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지 우리는 우리의 삶을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