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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씩한 스텔라 Nov 06. 2024

진정한 자신으로 조각되는 시간

힘든 순간에 누가 나를 위해 달려와줄까

24.10.27. 일요일.


수술 이틀 전 입원이라 하여  어렵게 기차표를 끊고 서울로 향했다. 지금은 10월이지만 퇴원하는 달은 11월이라 외투 선정에 고민을 많이 했다.  환자는 체온유지가 중요한데 지금 입고 다니는 잠바가 퇴원할 때는 추울 것 같아 확신이 안 섰다.

결국 옷상자를 꺼내서 검은색 롱패딩을 꺼냈다.

‘그래 이거야.’

얼굴에 절로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열심히 캐리어에 넣고 있는데 큰애가 롱패딩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엄마 롱패딩 가져가려고? 어제 20도가 넘었어. 더울 텐데

“ 물론 지금은 덥겠지. 근데 엄마는 11월 퇴원이라 괜찮아”


옆에서 그저 보고만 있는 친정엄마의 표정이 복잡하다. 엄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짐을 줄이고자 낮 기온이 20도를 넘는데도 불구하고 패딩을 입고 여행가방 하나에 배낭 하나 메고 입원길을 나섰다.


동행해 주는 보호자는 당연히 없다

그나마 입원하는 길이라 괜찮은데 퇴원하는 날은 어쩌나 마음 한편이 묵직해졌다.


씩씩하게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는데 버스 안 사람들이 “뜨악” 하는 표정으로 빠르게 나를 훑고 지나갔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롱패딩.

캐리어에 배낭가방.

창가에 앉은 나의 얼굴에 내리꽂는 햇볕에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화장과 땀.


괜찮은 척 태연하게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고

버스가 멈출 때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려는 여행가방을 잡고 있느라

무릎에 놓인 가방이 위태로웠다


아직 기차역도 못 갔는데 벌써 지쳤다.


지하철을 타고 병원까지 가는 중간에

사람들에게 치이는 것도 힘들고

너무 더워서 결국

패딩을 벗고 팔에 걸치고 말았다

세상에나 정말 시원했다 ㅠㅠ

이게 뭔 헛고생인지

캐리어 자리도 남았는데 오늘은 가볍게 입고

패딩은 넣고 올걸


입원수속을 하고 창문을 바라보니 한강이 보인다

내가 한강 야경뷰를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감회가 새롭다 여기가 병원이라 그런지 더욱 그랬다


수술바늘도 바로 꽂고

뇌부종 예방주사 6시간마다

뇌경련 예방약도 바로 먹기 시작했다.


보호자 역할을 해 줄 조카는 내일 오기로 했다.


이혼 후 홀로서기에 대해 단단히 각오했지만

이런 예기치 못한 큰일이 닥치니

주변사람들에게 신세를 안질수가 없었다.


수술동의서 사인 해주러 멀리서 올라오는 언니

이모가 아프다니 연차 써서 간병 오는 조카

아이들 밥 해주시겠다고 집으로 와주신 엄마


다들 고마웠다

내가 언제 이들에게 이만큼의 사랑을 베푼 적이 있었을까


꼭 수술 잘 받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면

받은 사랑 이상만큼 베풀고 살아야겠다.

결연한 첫날밤이 이렇게 지나갔다


24.10.28. 월

평소 때라면 출근준비에 애들 등교준비로 하루를 시작했을 평범한 월요일 아침이었지만 지금 나의 일상은 좀 달라졌다.


16층 신경외과 입원병동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바라보고 있다.

어제부터 맞기 시작한 주사와 바뀐 잠자리에 약간의 긴장감이 나를 일찍 깨웠다.


서울사람들은 참 부지런한 것 같다. 밤새도록 도로에 차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창밖을 보니 도로에 차가 가득하다. 어제는 머리 엑스레이와 ct를 찍었고 오늘은 밤에 mri를 찍기로 했다.


휠체어 타고 이동할 때마다 애들 어렸을 적에 유모차 끌어주던 기억이 났다. 그때 아이들 기분이 이랬을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게 재밌고 편하다.

중요하고 큰 수술을 앞두고 혈혈단신 입원 했어도

뭘 하든 집에 있을 아이들이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충청도에서 멀리 살고 있는 언니가 보호자 수술동의서 서명 해주려고 아침 일찍부터 만사 제쳐두고 올라왔다.

서울 운전이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수술 주치의 선생님과 동의서 작성 면담이 시작되었다.


“ 이 수술은 저밖에 못해요. 그리고 시신경 쪽이라 안과 교수님과 같이 들어갑니다 “


자세한 설명을 다시 들으며 내가

올해 나의 인생이 얼마나 극적인지

새삼 느꼈다


“바쁜 월요일 아침 그날 병원 처음 온 초진 환자에게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진료비 천 원만 받고 의뢰서 써주신 선생님,

의사말  무시하지 않고 대학병원 가셔서 목돈 들여가며 검사 한 환자분,

이렇게 뇌종양이 발견되고 서울 메이저 병원으로 외래 잡으신 거,

이런 시국에 수술 잡히신 거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됩니다. “


나는 행운아였어.

인생사 새옹지마.


생계로 장사를  하는 언니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나를 꼭 안아주고

다시 충청도로 내려갔다.

말은 안 해도 행동에서 느껴지는 언니의 무심한 따뜻함이

나를 울렸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내일 24.10.29. 화

나는 진정한 자신으로 조각되는 시간이 될 거야.


마지막 다짐하듯

보호자 침대에 누운 조카에게 말을 남겼다.


“뇌종양 진단받았을 때 나는 울었어. 그렇지만 나는 평생 감사하며 살 거야. 일생토록 알지 못할 일을 알게 되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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