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25년 1월
재활병원에서 나는 식단대로 나오는 밥을 다 먹고, 짜인 재활 프로그램시간대로 운동을 열심히 하고,
때마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을 까먹지 않고 잘 먹는 흠잡을 데 없는 우등생이었다.
우리 병실 대장 할머니는 본인의 막내딸보다 어리다는 내가 뇌종양 수술을 하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침마다 먹는 사과의 반쪽을 남겨서 자고 있는 내 머리맡에 두고 가셨다. 대놓고 말을 안 했지만 우등생의 치열한 재활이 다들 안쓰러웠는지 자신들의 주전부리 간식을 나눠주셨다.
재활치료실에서도 물리치료사님들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운동했다. 500G 아령도 무거워서 못 들던 내가 2kg도 들 수 있을 만큼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재활병원 안에서 우등생이라고 칭찬받자 퇴원하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내가 먹어야 할 약봉지도 혼자서 뜯을 수 있고, 혼자서 계단을 올라갈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지금 당장 퇴원해도 될 것 같았다. 낮에는 재활운동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냈지만 해가 질 때쯤 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의 감정도 주체하기 힘들었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가족들 면회시간이 있는데 장성한 아들, 딸들이 부모님 얼굴 보러 왔기 때문에 병동 로비는 많은 사람들로 혼잡했지만 나는 찾아오는 가족이 없었다. 여기 재활병원과 집은 거리가 멀고 아이들은 아직 어렸다. 남편은 왜 한 번도 안 오냐는 할머니들의 질문에 주말부부고 멀리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둘러댔다. 마음 한편이 씁쓸했지만 패배주의에 빠져 있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힘들어도 버티고 재활을 끝내야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치료사님이 숙제로 내주는 재활 동작이 있으면 쉬지 않고 연습했다. 저녁 먹으면 개방재활실에 가서 소등 전까지 운동을 했다.
작년 10월 아이들에게 별 거 아닌 것처럼
"엄마 수술받고 올게, 걱정 말고 할머니랑 잘 지내고 있어^^" 웃으며
집을 나선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병원의 아침식사가 나오는 7시 30분. 우리 병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환자들 방이어서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침대정리도 하고 잠깐 환기도 했다. 이때는 서로 침대에서 밥을 기다리며 밤새 안녕하셨냐는 인사를 주고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차피 말할 거라면 아침에 말하는 게 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퇴원하고 집에서 재활하려고요"
식판의 밥뚜껑을 열며 입을 열었다.
젊은 나이에 뇌종양 수술을 하고 재활병원에 침대째 실려왔던 막내가 죽기 살기로 재활을 하더니 퇴원하겠다고 공식 선언을 하자 병실은 술렁거렸다.
"추운데 겨울은 나고 가지"
평생 그릇가게를 하셨다는 옆 침대 할머니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뇌경색으로 한쪽이 마비가 와서 거동이 불편했지만 부지런한 재활로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는 분이셨다.
"집 가면 여기처럼 편하게 못 지내. 가면 새끼들 봐야 하는데 뭣한데 벌써 나가려고 해?"
툴툴대는 듯한 말투로 대각선 대장할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다 나은 줄 알고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하는 사람들 많이 봤어. 생각 잘 혀"
우리 4명 중 유일한 아가씨인 50대 언니도 벌써 퇴원해도 되는 것인지 걱정하는 빛이 보였다.
"괜찮아요. 이제 집에 가야죠."
축하한다는 말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병실 안 할머니들의 반응은 걱정과 염려였다.
나와 대각선에 있는 침대를 쓰시는 대장할머니는 본인의 반찬으로 나온 간장 불고기를 밥뚜껑에 반절 덜어서 절뚝이는 걸음걸이로 나한테 오셨다.
"새끼들 생각에 더 못 있겠어? 어쩐지 죽을 똥을 싸면서 재활하더라. 맨날 발이 시럽 다고 양말 신고 자는 거 볼 때마다 우리 집 하고 가까우면 구절초도 주고 챙겨줄 텐데라고 생각했어. 나는 집이 천안이라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이 있으려나.... 나도 집에 가고 싶어 죽겠어. 나도 봄에는 집에 갈 거야.... 집에 갈 생각 하니깐 좋지? 좋겠다.. 나도 집에 가고 싶어. 여기 계속 있으려니 답답해 죽겠어"
평생 농사를 지으셨다는 대장 여사님은 정이 많았다. 오늘도 먹성 좋은 나를 위해 고기반찬을 반절 내어주셨다. 집에 가고 싶다는 어린아이 같은 투정에 마음이 아렸다. 마음과 달리 따라주지 않은 몸에 갇힌 영혼이 얼마나 답답하실까...
"여사님도 꽃피는 봄에 집에 가실 수 있을 거예요. 저보다 더 열심히 재활하시잖아요."
대장 여사님은 가까운 거리는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셨지만,
우리 병실 포함 몇 개의 병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고령의 환자분들은 기저귀로 용변을 해결하고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운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도 얼마나 집에 가고 싶으실까. 말도 못 할 만큼 가고 싶으시겠지.
퇴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담당의사에게 전달하고 얼마 있지 않아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수술받기 위해 입원하는 날도 혼자서 여행가방을 끌고 병원을 들어간 것처럼
퇴원하는 날도 씩씩하게 혼자서 퇴원짐을 꾸렸다.
퇴원하는 날 아침 혹시 모를 어지럼증에 대비해서 약 처방을 받았다.
두꺼운 약봉투를 받아 들고 답정녀가 되어 물었다.
"선생님 저 퇴원해도 되는 거 맞죠?"
처방약들의 복용설명서를 듣고
내 자리의 짐을 정리하자 진짜 퇴원하는구나 실감 났다.
작은 여행가방에 다 넣지 못해서
냉장고 남은 과일은 퇴원선물로 두고 가기로 했다.
품이 넉넉한 입원복을 벗고
퇴원하기 전 사복으로 갈아입으려고 옷장에서 바지를 꺼내 한쪽 다리를 집어넣는 순간,
꽉 끼는 게 불편함이 느꼈졌다.
이럴 수가...
병원밥을 삼시 세끼 안 남기고 다 먹고, 운동을 많이 하다 보니
몸이 불어있었다.
바지가 맞지 않았다.
입원복은 통이 넓고 허리가 고무줄이라 살이 쪄도 몰랐던 것이다.
숨을 참고 억지로 억지로 바지단추를 채워봤지만 터질 것 같았다.
결국 바지는 포기하고 입원복이 추우면 입으려고 갖고 있던 고무줄 허리에 통이 넓은 별무늬 수면바지를 입고 퇴원하기로 했다.
그동안 잘 챙겨주신 간호사실 직원분들께도 인사하고 나오려는데 몇 번 마주쳤던
입원환자 조랑말아저씨랑 마주쳤다.
따로 인사를 할 만큼 친하지는 않았지만 휠체어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환자라 서로 낯을 익혔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어디가 불편한지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지게차에서 2번 떨어지시는 사고를 당해 산재로 들어온 거라고 들었는데, 그 사고 후유증인지 단순한 대화만 가능하신 분이었다.
"재활 가? 재활?"
짐을 들고 나오는 나를 보고도 재활 가는 줄 알고 재활실로 가는 문을 열어주셨다.
"저 퇴원해요. 재활 잘 받으시고 얼른 퇴원하세요"
"퇴원해? 벌써? 재활 더 해~"
"집에서 재활해도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퇴원하래요. 안녕히 계세요"
롱패딩에 수면바지를 입고 여행가방을 끌며 병동을 나왔다.
장기간의 별나라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는 우주비행사처럼 마음이 비장해졌다.
병원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병원 안에 멈춰있던 나의 일상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어지러울까 봐 암환자용 어지럼증 예방약도 미리 먹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조심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일상생활을 하는 것.
언제 가는 사회로 돌아가서 다시 회사도 다니고
밥벌이를 하려면 병원밖을 나와야 했다.
지하철역 중간중간 내려서 쉬었다 가기를 반복하고
집까지 가는 버스로 환승했다.
세상은 여전히 부지런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잠깐 멈춰있던 나에게 관심은 없었다.
집 근처 정류장에 완벽하게 하차까지 끝내자
내가 드디어 혼자서 집까지 왔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덜덜덜
여행가방을 손 바꿔 끌며 집까지 걸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도 지나쳐왔다.
역시 집까지 가는 재활도 우등생답게 잘하고 있었다.
띵동~!!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놀래줄 목적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저녁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난데없이 울리는 초인종소리가 낯설었나 보다.
집안에 사람이 있는 걸 아는데 대답이 없다.
띵동~~!!!!
철커덕 문이 열리고 큰애가 보였다.
"엄마 왔어^^"
"엄마? 엄마 왔어? 나는 내일 오는지 알았어. 엄마! 엄마 이젠 다 나았어? 엄마 이젠 안 아픈 거야?"
큰애가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엄마! 엄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수술하고 금방 올 거처럼 말하더니"
둘째는 엄마가 야속했나 보다.
"아이고.... 택시 타고 오지... 걸어왔어? 날도 추운데! 배고프지? 빨리 들어와"
엄마 눈에는 내가 얼마나 딱해 보일까.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서일까...
저녁을 먹자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며칠 잠을 못 잔 사람처럼 곯아떨어졌다.
집에 왔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