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직장생활
2024. 7. 2. 화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 우리 기관도 일 년에 두 번 인사이동이 있다. 연초에 내가 발령받은 부서는 H과였기 때문에 하반기 인사 시에 나는 전보대상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옆에 직원이 원하는 전보발령 부서를 어디로 써야 하나 고민을 할 때도 나는 관심이 없었다. H과 발령받은 지 반년도 안 됐는데 설마 내가 전보대상이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사시스템에 전보희망부서 입력이 시작된 그다음 날 인사계장님의 메신저가 왔다.
잠깐 차 한잔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시기에 인사계장님이 차 한잔 하자고 메신저를 보내다니.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인사계장님과 나는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대도 비슷하지 않아서 따로 차 한잔 하면서 나눌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굳게 닫힌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넓은 회의실에 인사계장님이 먼저 와서 앉아계셨다.
이럴 수가.. 계장님보다 늦게 오다니... 낭패다
H과 일은 재미있냐며, 적응은 잘하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분명하고 싶은 말이 이게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질문이라면 굳이 따로 만나서 할 필요가 없었다.
인사시즌에 인사계장의 자리가 얼마나 바쁜가...
인사계장님 곧바로 본론을 꺼내셨다.
“이번에 전보희망부서를 제출해 줬으면 좋겠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화의 물꼬였다.
적어도 내가 예상한 대화의 주제는 아니었다.
전남편은 이혼소송의 이의신청기간이 끝나자마자 시청에 가서 이혼신고를 했다.
5월 말에 서류상 이혼처리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6월부터 배우자수당을 받으면 안 되는 나는
급여담당자에게 이혼사실을 알렸다. 나는 그것에 관련된 대화일 줄 알았다.
그러나
발령받은 지 6개월도 안된 H과를 나가줘야 한다니
그간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는데.
그러나 조직은 그렇게 단순한 논리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가정사가 복잡한 건 내 사정이지
조직에서 신경 쓸 정도의 사안은 아니다.
업무에 익숙해졌으므로 그간 여러 소송으로 소홀히 했던 아이들 좀 살뜰히 챙기고 싶었던 것도 내 욕심이었다.
전보 가기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어색한 몇 마디 대화 후 회의실을 나왔다.
세상살이 쉬운 게 없구나
인생이란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넘는 것이라더니
발령받은 지 6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가라니.
패배감이 들었다.
나는 결혼에도 실패하고
이직한 직장에서도 실패한 사람이구나.
눈물이 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초 나는 H과 발령 대상이 아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사안을 고려하다 보니 깍두기가 되어 H과로 발령이 났던 것이고
하반기 인사에 다시 제대로 발령을 내는 거라고 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나의 인사발령이 이상하긴 했다.
이 기관으로 나와 같이 전보 온 3명은 소속기관으로 발령이 났는데
나만 본부 H과로 발령받은 거였다.
이제 제자리에 맞게 발령을 내는 것이라고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이제 앞으로 내 자리를 찾을 거야.
그곳에 가서도 나는 열심히 할 거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하는 것.
이제라도 나를 위해 나에게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