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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 Jun 11. 2024

육아휴직, 전쟁을 선포하다.

퇴사자의 글쓰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얼마 전 ebs 위대한 수업 예고편에 등장한 조앤 윌리엄스(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우리나라의 저조한 출생률을 듣고 보인 반응이다.

0.78이라는 우리나라의 저조한 출산율, 한국 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걸 암시하며 예고편은 짧게 끝났다.

갑자기 사회 문제를 끄집어내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의 지난날의 경험이 떠올랐을 뿐.

나는 외국계 회사에서 결혼과 출산을 모두 경험했다. 첫아이의 경우 출산 시 주어지는 기본 필수(?) 휴가만 간신히 채우고 회사로 복귀하기 바빴다. 그 누구의 의지도 아닌 나의 의지로 말이다. 조리를 위해 주어진 최소한의 기간도 무척이나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회사로 돌아가 출근하는 일상이 간절했다. 물론 이런 바람이 가능했던 건 친정어머니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었다.

둘째 출산 후에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출산 휴가 후 바로 복귀해 일을 하는 것으로 가족, 회사와 모두 얘기가 돼있었다. 그런데 복직 시점 갑작스럽게 친정어머니는 수술과 함께 꽤 오랜 기간 입원을 하셔야 했다. 

건강했던 엄마가 약해진 모습을 보고 아이를 맡긴 내 탓인가 싶은 죄송스러운 마음과 슬픈 감정이 복받쳤다. 동시에 어떻게든 달라진 상황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생전 관심도 없던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외국계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내는 건 쉬웠을까?

솔직히 말해서 그 기억이 좋지만은 않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당시 나는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내는 첫 케이스였다. 본의 아니게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인물이 되어야 했던 거다. 게다가 당시 팀장은 미혼의 남자 사람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결혼 전과 후, 아이가 있는 삶의 전후 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범주의 차가 얼마나 컸던가. 팀장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료들 역시 비슷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비롯된 묘한 기류는 나를 꽤 외롭게 했다.

친절하고 유쾌했던 사람들이 냉랭한 얼굴로 가시 돋친 말들을 툭툭 내뱉던 그때. ‘육아휴직’을 냈다는 이유로 나는 전보다 위축되는 일이 많았고, 복직 후에도 꽤 오랜기간 마음의 짐을 짊어져야 했다. 

씁쓸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그 후로 하나 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다 같은 길을 걸었다는 거다. 시간이 얼마쯤 지나 바통을 이어받아 당연하듯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어떤 조직이든 특정 제도나 규정이 있다 한들 실제 이것이 운영되고 작동하기까지 얼마간의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고, 구성원 각각의 이해도 혹은 입장 차이로 인해 서로간의 합의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했다. 

요즘은 어떨까? 육아휴직을 내는 일이 아직도 가시밭 같은 일일까? 

워킹맘으로 살아남기란 얼마나 전쟁 같은 일인가. 예전의 나처럼 혹시 어디선가 가슴 서린 일을 겪고 끙끙 앓고 있다면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은 날이다. 그런 이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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