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빛이 미치지않는 곳 없이 풍족하게 비추는 어느 화창한 봄날, 작은 농장 옆 호숫가의 한 둥지에 오리 한 마리가 우아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유난히 빼어난 미모를 지닌 이 젊은 오리는 티 없이 곱게 자라고,호숫가의 모든 오리들이 선망하는 대장 오리와 짝을 이룬 후, 이제는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큼 건강한 알들을 품고 있는 중이었다.
때가 이르자 아기 오리들이 차례차례 알을 깨고 나오기 시작했다. 어둡고 축축한 알 속에서 젖어 있던 깃털들을 부리로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엄마 오리는 아기 한 마리 한 마리를 사랑이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든 아기 오리들이 따뜻한 햇볕 아래 뽀송해진 깃털을 신나게 부풀릴 때까지도 하나 남은 알이 깨지지 않고 있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엄마 오리는 아기 오리들을 불러 모아 동생이 어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자고 부드럽게 일렀다. 아기 오리들은말을 알아듣지 못해 멀뚱거리긴 해도 말에 담긴 마음을 알아채고는 알 주위로 몰려들어 각각 손을 내밀었다. 이 작고 예쁜 손들을 꼭 붙잡은 채 엄마 오리는 마지막 알을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이런 사랑스러운 엄마와 아기 오리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가 있었다. 바로 호숫가 옆 농장의 터줏대감 오리였다. 이 농장 오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엄마와 아기 오리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나는 둥지에서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엄마와 형제들과 헤어져야 했을까?’
알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식용 달걀이 되어버린 형제들과, 농장 사람들이 자신을 둥지 밖으로 너무 일찍 데려간 탓에 아직까지도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불쌍한 농장 오리는 수심에 잠겼다. 농장 주인이 다리에 빨간 끈 조각까지 묶어주며 그를 특별히 예뻐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얄팍한 애정은 이 사연 많은 오리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엄마와 아기 오리들을 보는 농장오리의 마음 가운데엔 어느새 억울이 들었다.
‘어째서 나는 이리도 불행하고 저 오리들은 저리도 행복할 수 있는 거지?’
농장 오리는 저들이 저렇게 행복한 모습을 그냥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 아니, 분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농장 오리는 엄마와 아기 오리들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기 시작했다.안전하게 헤엄치는 법을 가르친 후 아기 오리들을 이끌어 호수로 들어가려는 엄마 오리를 놓칠 세라 급히 뛰어가는데, 다리에 묶인 빨간 끈 조각 때문에 농장 오리는 자꾸만 발이 걸려 쓰러질 듯 뒤뚱거렸다.
“이봐요!” 호숫가에 당도한 농장 오리가 숨을 몰아 쉬며 외쳤다. 난생처음 호수에 발을 처음 적시며 까르르 웃는 아기 오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엄마 오리는 생각지 못한 부름에 놀라 몸을 휙 돌렸다.
“무슨 일이신가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 엄마 오리의 따뜻한 눈과 농장 오리의 서늘한 눈이 마주쳤다. 엄마 오리의 햇살처럼 눈부신 용모와 친절한 미소에, 안 그래도 할 말이 딱히 없던 농장 오리는 위축되어 어버버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였다. 아직까지 미동도 없던 둥지의 알이 흔들거리더니 마지막 아기 오리가 세상으로 나왔다. 다른 아기 오리들과 별다를 바 없이 엄마 오리를 닮아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다른 아기 오리들에 비해 날갯죽지가 조금 더 크고 일반 오리들의 우윳빛 색깔과는 달리 회색빛이 도는 깃털을 갖고 있어 외모가 독특하긴 했다. 하지만사람들 가운데 누구는 키가 조금 작고 누구는 조금 크며 피부나 머리 색깔에는 다양한 색이 있듯, 이 아기 오리의 다름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질투와 아픔으로 얼룩진 마음에, 농장 오리는 이때다 싶어 이 아기오리를 보며 엄마 오리에게 팩 쏘아붙였다. “내 이럴 줄 알았어요. 저 알이 둥지에 너무 오래 있는 걸 보고 걱정했다고요. 불행을 미리 경고해줄 수 있을까 싶어 달려왔지만 역시 너무 늦었네요. 다른 아이들은 참 예쁘고 잘생겼는데, 아무리 봐도 저 한 녀석은 영 못났어요. 깃털색도 이상하고, 날개도 무식하게 크고. 알을 다시 낳을 수도 없으니, 이것 참 안 됐네요.”
이러면서 애써 혀를 끌끌 차는 농장 오리에게, 엄마 오리는 순간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살면서 이런 무례함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이 유순한 오리가 어떤 대처를 할 수 있겠는가! 얼빠진 엄마 오리는 그저 “아기가 알 속에서 너무 오래 있어 그런 것”이라며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이런 엄마 오리의 모습을 본 다른 아기 오리들의 머릿속에는,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막내 오리가 정말로 못났다'는 생각이 깊게 뿌리내려버렸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말문이 트인 아기 오리들은 농장 오리가 했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기 오리들은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경쟁심과 생존본능에 더욱 힘입어 막내 오리를 악의 없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우린 예쁘고 잘생겼는데 넌 영 못났어!” "네 깃털색은 다르고 이상해!" "네 날개는 왜 이렇게 바보처럼 커?"와 같은 형제 오리들의 말에, 가엾은 어린 오리는 자신이 정말로 못났다고 생각하며 서럽게 우는 일상을 보냈다.
아무리 타일러도 항상 동생을 괴롭히는 아기 오리들과,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막내 오리를 보는 엄마 오리의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지금껏 살며 고생한 적이 없었으니 지금처럼 마음이 힘들었던 적 또한 없었다. 화목한 가정을 꿈꾸며 알들을 품었던 엄마 오리는 자신이 마치 실패한 엄마가 된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어느 날, 형제들의 놀림에 또다시 울며 달려오는 어린 아기 오리를 보자, 엄마 오리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네가 차라리 멀리 가버리면 좋겠구나!” 라고 얼떨결에 혼잣말을 해버렸다. 이를 들어버린 어린 아기오리는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을 흘리며 아무도 몰래 집을 나갔다.
하지만 어린 아기오리가 마주한 세상은, 농장 오리와 엄마 오리 만큼이나
아프고 물렁한 마음을 가진 미성숙한 동물들의 집합소였다.
집을 떠난 지 며칠 후, 아기오리는 너른 들판에 이르러 그곳에서 사는 들오리들과 마주쳤다. 황량한 들판에서 거친 삶을 살아가는 들오리들은, 작고 연약한 아기 오리를 보자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됐다. 그 당시 어른 들오리들에게 "강하게 커야 한다"라며 혼났던 기억이 난 이 괄괄한 오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며 옛날에 들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뭐 저렇게 못난 오리가 있지! 저런 녀석은 한번 호되게 맞아야 정신을 차릴 거야.”
이 말을 들은 아기 오리는 울면서 자신이 정말 못났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미운 아기오리는 생각 없이 말을 쉽게 내뱉는 젊은 기러기 두 마리를 만났다. 이 기러기들은 귀여운 아기 오리를 보며 “어이, 거기 친구, 너 참 못생겼구나! 그래서 네가 마음에 들어.” 하며 실없는 장난을 쳤다. 하지만 이 장난말에도 아기 오리는 상처를 받고 주눅들었다. “마음에 든다”라는 기러기들의 말은 들리지도 않고 “못생겼구나”라는 말만 귓가에서 맴돈 것이다.
그때, 기러기를 쫓아온 한 사냥개가 갈대숲으로 뛰어들어왔다. 푸드덕거리며 날아간 기러기들과 달리 공포에 몸이 굳어버린 채 서있던 아기 오리는 험상궂은 사냥개와 그대로 마주쳤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기 오리를 측은하게 생각한 사냥개는, 아기 오리를 한번 쳐다보더니 그대로 사냥꾼에게 돌아갔다. 이런 사냥개를 보며 아기 오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못생겼으면 사냥개도 내 얼굴을 보고 피할까!’
울상을 한 채로 갈대숲에서 며칠을 떠돌다가 어두운 숲 속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간 아기 오리는, 얼마나 시간이지났을지 모를 만큼 긴 방황의 기간 끝에 한 낡은 축사에 이르렀다. 허기와 피로에 지친 아기 오리는 축사 옆, 굴뚝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작은 통나무집이 있는 것을 보고는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전부 쥐어짜 가까이 다가갔다. 집 안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창문에 어떻게 이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아기오리는, 집 벽면에 세워진 장작과 낡은 냄비와 같은 잡동사니들을 딛고 차근차근 오르더니 살짝 열려 있는 작은 창문을 향해 온 힘과 용기를 끌어 모아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힘껏 뛰어올랐다. 간신히 창틀에 착지한 아기 오리는, 비록 못생기긴 했지만 튼튼한 두 날개가 있어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뿌듯해 했다.
창 너머로 보이는 집 안에는 따뜻한 화롯불과 아늑한 카펫이 있었고, 담요와 뜨개질로 만든 각종 액세서리와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작은 소파 위에는 주인 노파가 애지중지 키우는 고양이 한 마리가 도도한 모습으로 한껏 폼을 잡고 앉아 있었는데, 창 너머에서 갑자기 등장한 아기 오리를 보자 심기가 불편했는지 고양이는 날카롭게 가르랑거리며 수염을 움찔거렸다. 아기 오리가 놀라 뒷걸음치며꽥, 하는 소리에, 소파 뒤에서 웬 암탉 한 마리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아기 오리는 더욱 놀라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야 너, 알 낳을 수 있어?” 암탉이 아기 오리를 쨰려보더니 날 선 목소리로 다짜고짜 물었다.
“아니요.” 아기 오리가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그 입 다물고 있는 게 좋아. 알을 낳지 않는 닭은 쓸모가 없으니까.”
이 말을 들은 아기 오리는 기운이 없는 와중에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전 닭이 아…….”
고양이가 끼어들었다. “너 등을 둥글게 말 수 있어? 가르랑거리는 건? 소리 없이 땅에 착지하는 건?”
아기오리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고양이가 아니…….”
“도대체 뭐라고 웅얼거리는 거니?" 고양이가 아기 오리를 위아래로 훑으며 새침하게 쏘아붙였다. "어서 알을 낳거나 귀엽게 가르랑거리는 법을 배워. 그렇지 않으면 이 집에서 네가 있을 곳은 없을 테니까. 우리 주인은 사랑받을 만한 동물만 집에 두거든."
아기 오리는 자신의 회색빛 깃털과 자랑스러운 두 날개, 그리고 고양이와 암탉을 번갈아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더니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고 똑똑히 말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오리일 뿐인 걸요. 게다가 주인 분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꼭 사랑받아야 하나요?
아기 오리의 말에, 고양이와 암탉은 말문이 막혀 서로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틀린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 자신도 알고 있었다—꽤 오래 전부터 그들에겐 문득문득 불편한 생각이 들곤 했다는 걸.
왜 자신들은 밖에 나가지 못하고 언제부터 이 집에서 살게 된 거지?
왜 푸른 숲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대신 이 집에 갇혀
인간을 위해 알을 낳고 애교를 부리며 살고 있는 거지?
이런 많은 생각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찰나의 침묵이 흐른 후, 암탉이 갑자기 빽 소리를 질렀다. “너, 네가 우리나 주인 노파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고양이도 거들었다. “그래, 까불지 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이 아늑한 집에서 사랑받으며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기나 해? 우리를 보고 배우란 말이야!”
하지만 아기 오리는 자신이 더 영리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이 아늑한 집에서 계속 머무르고 싶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못난 오리로서 살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알을 낳고 애교를 피우며 소리 없이 땅에 착지하는 것만이 사랑을 받는 방법이라면 사랑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아기 오리는 창틀에 불편하게 걸터앉은 채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여전히 허기진 배를 안고 말없이 통나무집을 떠났다.
아기 오리는 어두운 숲으로 다시 들어가 몇 날 며칠을 헤맸다. 허기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기 오리를 본 것은 한 부엉이였다. 홀로 어둠 속에서 사냥을 하며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부엉이는 이 작은 아기 오리를 가엾게 여기고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며칠 동안이나 자신이 잡아온 먹잇감을 잘게 찢어 먹이며 아기 오리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이 극진한 노력에 다행히 눈을 뜬 아기 오리는 부엉이에게 감사인사와 함께 자초지종을 들려줬다. 모든 이야기를 가감 없이 쏟아낸 아기 오리는 말을 마친 후 머쓱했는지,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부엉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부엉이씨는 어쩌다 이런 어두운 숲에서 홀로 지내게 되었나요?”
이 질문에, 부엉이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족이 사냥꾼을 피해 도망가던 때 나는 지금의 너만큼이나 어렸어. 부모님을 부지런히 따라갈 힘이 없어 뒤떨어지고는굶은 채로 거의 죽어가고 있었지. 이런 나를 발견한 한 인간 여자의 손에 꽤 오랜 시간을 길러져 살았어. 어느 날 사냥 본능이 깨어났고, 나는주인에게 고마움과 사랑의 표시로 들쥐와 참새 한 마리를 선물했어. 하지만 주인은 내 선물을 보더니 질색을 하며 나를 내다 버렸지. 아마도 내가 자신을 괴롭히고 놀라게 하려 그랬다고 믿은 것 같아. 집에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주인은 빗자루를 휘두르며 나를 멀리 내쫓더라고. 그 이후로는 이 숲에서 혼자 지내고 있어.”
아기 오리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슬피 울었다.
“저런, 내 얘기가 슬펐구나. 하지만 괜찮아. 너의 눈에는 이 숲이 어둡고 내가 외로워 보이겠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부엉이답게 살고 있어. 처음엔 나도 힘들고 슬펐지만, 이제는 내가 어떨 때 가장 편안한지 알고 있어. 오히려 밝은 화롯불 앞보다 이 적막한 어두움이 더 좋아. 주인이 줬던 음식보다 내가 사냥해서 먹는 먹잇감이 더 맛있고, 나와 성격이 맞지 않는 고양이와 암탉과 다투며 지냈던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
“고양이와 암탉이요?”
아기 오리는 부엉이에게 자신이 통나무 집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아, 그 둘은 아직도 그 집에서 살고 있구나. 원래 밖에서 살던 친구들인데, 내가 쥐와 새를 잡아온 것을 보고는 주인이 놀라 그 둘을 집 안으로 들였지. 나와 성격은 달랐지만 나만큼이나 숲과 바람을 좋아했던 친구들이었어. 집 안에서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그 친구들이 지금 썩 행복할지는 모르겠네. 창문 밖으로 차라리 탈출했으면!”
이 말과 함께 부엉이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듯 슬픔을 머금은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더니, 이내 아기 오리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내 생각에 너는 못나지 않았어. 이 윤기가 흐르는 훌륭한 회색빛 깃털과 네 건강한 몸을 봐. 너는 이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원하는 만큼 날아다닐 수 있어.”
이 말에, 아기 오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천천히,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랜 시간 여기저기를 걷고 뛰며 단련되어 앳된 티를 벗은 몸, 그리고 그 위로 풍성하게 자라난 깃털이 이루는 모습이 정말이지 꽤나 멋졌다.
“다만, 너는 부엉이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따라 이 어두운 숲에서 계속 사는 게 좋지 않을 거야. 너도 이제 너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길 바라. 이 숲에서 조금 멀리 날아가면 네가 좋아할 만한 호수가 하나 있는데, 네가 원한다면 그 호수까지 가는 길을 알려줄게.” 이 말에 아기 오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날개를 힘 있게 펼쳐 보였다.
그 후로 몇 주 간의 비행 연습 후, 아기 오리는 부엉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나무들 위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뻥 뚫린 파란 하늘에서 맑고 시원한 바람을 타고 며칠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내려다보니, 자신이 거쳐왔던 어두운 숲과 축사 옆 통나무집, 그리고 갈대숲과 들판이 갓 낳은 알만큼이나 작아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 낯익은 농장과 호수가 보였다. 아기 오리는 더욱 힘찬 날갯짓으로 농장 위를 한 바퀴 돌고서는 호수가로 고도를 낮췄다.
농장의 동물들과 주인은 이런 자신감 넘치는 아기 오리의 부드러운 날갯짓을 보며 ‘와, 저기 아름다운 백조가 날아가나 봐!’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다리에 빨간 끈 조각이 묶인 터줏대감 오리는 저런 아름다운 새는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훨훨 날아가는 저 새를 보며, 이 농장 오리는 어쩌면 자신도 다리의 끈 조각을 푸르고 농장을 벗어나 넓은 곳으로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기 오리는 호수 한가운데에 우아하게 착지하며 큰 회색빛 날개를 쫙 펼쳤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호수의 오리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 오리들 중, 한 때는 가장 곱고 티 없이 맑았으나 어느 날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한순간에 늙어버린 나이 든 암오리가 있었다. 이 늙은 오리는 아름다운 회색빛 오리를 보자마자 고개를 떨구더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엄마 오리를 본 회색빛 아기 오리는 찬찬히 다가가 따뜻하게 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따뜻한 햇빛이 미치지 않는 곳 없이 풍족하게 비추는 어느 맑은 가을날이었다.
덧붙이는 말:
이 이야기는 제가 <미운 아기 오리> 원문을 읽고 느낀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서 출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미운 아기 오리가 실은 백조라는 설정과, “못생긴 오리였을 때는 이렇게나 큰 행복을 꿈도 꿀 수 없었어.”라는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제게 이러한 운명론적인 설정과 결론은, 미운 아기 오리가 백조의 삶을 타고나지 않았으며 또한 자랑할 만한 아름다운 외모가 없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저주처럼 다가왔습니다. 또한 이야기가 미운 아기 오리를 중심으로 구성된 탓에 주변 동물들에 대한 설명, 특히 내면에 대한 서사가 없어 캐릭터들이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개선하면서 <미운 오리 아기>의 이야기를 재창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 이를테면 소재부터 달리해 완전히 이야기를 바꾸는 — 제게 가장 의미 있는 방법은 원문의 소재와 분위기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되 변주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모티브를 최대한 살리면서, 필요한 경우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거나 기존의 내용을 제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기 오리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대신 아기 오리를 바라보는 다양한 동물들의 내면적 서사를 다각적으로 구현해 원문을 재구성했습니다.
<미운 아기 오리>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궁극적으로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제 자신을 비롯해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들 모두 각자의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도무지 설명되거나 정당화되지 않는 아픔과 어떻게 맞서는지에 따라삶이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 희망 어린 격려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불완전한 우리들이 서로 알게 모르게 주고받는 아픔과 위로가 각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파괴하며 또한 치유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