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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Jan 27. 2021

Rita! We are happy!

Rita


5일 정도 함께 여행하는 동안 리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리타는 여행을 좋아해서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새로운 감동을 줄 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그녀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그녀의 이름은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레소토’에 여행을 갔을 당시, 그곳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남아공에 둘러싸인 작은 독립 국가인 레소토는 ‘세소토’라는 레소토 언어를 사용한다. 리타(Rita)는 세소토 말로 We are happy!, 레소토 사람들이 리타를 보면 행복해진다고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세소토 사람들은 단시간만에 리타의 진가를 알아본 것이다. 

 리타와 K는 같은 전공이라 그런지 여행을 하는 동안 둘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열의를 높여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꽤 있었다. 졸업 후 구체적인 방향성이나 관련 연구, 실습 따위의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나누곤 하였다. 그들의 전공 분야에 문외한이었던 나였지만,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의외로 재밌었다. 또 본인의 분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나의 방향성마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사실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모로코에 왔던 것이니, 적어도 모로코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를 확보해야 했다. 




 마라케시를 여행하는 동안,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나무판자에 일러스트를 그려 판매하는 사람도 있었고, 라탄으로 다양한 직물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이밖에도 마라케시는 예술가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예술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모로코는 특히 핸드 메이드 블랑켓 생산국으로 유명한데, 블랑켓의 대부분이 마라케시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크고 화려한 무늬가 가득한 마라케시의 블랑켓은 내 마음이 꼭 들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구매는 포기해야 했다. 

 평소 그림을 그린다거나, 손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내길 즐기던 나로서는,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마라케시의 예술가들이 마냥 부러웠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을 실제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실현하는 일. 이것은 어느순간부터 나의 이상이 되었다고나 할까. 더불어, 여행을 하며 느낀 자유스러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더해져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 냈다. 

 무슨 일을 하거든, 손으로 만들어 내는 일.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제약 받지 않는 노마드 워커가 되겠다. 유동적인 쉼을 가지고, 자유롭게 여행하듯 살아가는 유목민이 되겠다는 생각이 바로 내 삶의 방향성이 된 셈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배우던 미용을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였지만, 앞으로의 시간이 훨씬 길고 중요하기 때문에, 또 원하는 방향성이 뚜렷하기에 별 수 없이 포기했다. 하지만 약 5년간 걸어온 길을 포기하는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까워 죽겠다고 여전히 대답한다. 이 여담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야겠다.  복잡한 이야기는 뒷부분에서 마저 하고 싶다. 




 그건 그렇고, 그들과의 여행은 어찌보면 내 생에 첫 또래 친구들과의 여행이었다. 비등비등한 머리를 모아 잠 잘 곳을 정하고, 밥 먹을 곳을 정하는 이름하야 능동적 여행. 앞서 레지던스에서 동기 단원들과 함께했던 여행은, 차량 기사님과 가이드 선생님도 있어서 굉장히 수동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제 아무리 멋진 광장과 동굴, 기프트 숍을 다녔어도 세세하게 기억나는 건 딱히 없었다. 그저 카말과 함께 여행 했기에 즐거웠을 뿐이다. 

 그와 달리 능동적 여행은 하나하나 모든 일련의 과정이 모조리 기억에 남아있다. 경이로운 자연 경관을 보고 감격하거나, 생소한 타국의 향이 폴폴나는 음식을 애써 먹은 일. 그뿐만 아니라 이동하는 중에 버스에서 읽은 책 속의 문장. 브런치로 먹었던 빵의 푹신한 식감과 달큰한 살구잼의 조화 등, 사소한 일들 마저도 모조리 생생하다. 

 특히 여행하는 동안 겪은 모로코 여름 날씨는 도저히 잊을 수 없이 강렬했다. 모로코 남부에 위치한 도시 ‘마라케시‘로 이동하자 카사블랑카의 평균 기온보다 10도 가량이 더 높아졌다. 게다가 해안가인 카사블랑카와는 달리, 내륙에 위치한 마라케시는 극도로 건조하기까지 했다. 사막을 간접체험 하는 기분이었다. 상당히 덥고 건조해서 일까, 조금만 걸어도 땀이 옷을 다 적시고, 갈증이 심하게 났었다. 그래서 우린 길에서 파는 오렌지 착즙 주스를 자주 사 마셨다. 물보다 싼 오렌지 주스는 주문하는 동시에 제조하는 신선한 주스였다. 팔뚝이 제법 굵은 아저씨가 오렌지를 한 손으로 꽉 눌러 짜 주시는 건강한 장면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더위에 지쳐 여행이 힘들어 질 때, 오렌지 주스 한 입 마시면 당장 생기가 차올랐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종종 모로코의 더위를 회상하며 마트에서 파는 오렌지 주스를 사마실 때가 있다. 커피를 제외하고 음료수를 잘 마시지 않는 나지만 오렌지 주스 만큼은 좋아하고 싶은 이유다. 

 그도 그럴 것이, 리타와 K는 한국에서도 자주 만나는 여행 메이트들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가 지내고 있는 서울, 청주, 전주 세 도시에서 한 번씩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연고 없는 도시들을 여행하며 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돌아오는 주말에도 부산에서 그들을 만나기로 했다. 1년에 서너 번쯤 만나는 모임이지만, 만날 적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가 참 잘도 만났구나 싶을 뿐이다.


 세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터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주로 있었다. 특히 리타가 선물해주는 책이나, 추천해주는 책은 믿고 읽는 서적이 되었을 정도다. 타고난 센스가 뛰어난데다가 자주 읽는 습관을 가진 그녀는 잘 읽는 사람인 것이다. 이는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말에 살을 더 붙여 보자면 이렇다. 잘 읽는다는 것이 중요하듯, 잘 듣는 것 역시 중요하다. 글을 쓰려면 먼저 글을 읽어야 하고, 말을 하려면 먼저 말을 들어야 한다. 이것은 짧은 인생이 만들어낸 나만의 철학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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