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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Jan 29. 2021

서울에는 내 집이 없다.

잘 말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 이 같은 지혜를 준 이가 바로 ‘코코모’다. 그녀를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다. 2019년 1월, 모로코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본가에서 두 달가량을 쉬며 시간을 허비했었다. 무료한 시간이 쌓일수록 몸은 한가하니 편안했지만, 마음은 조급하고 불안해져 갔다. 결국 별다른 계획도 없이 무작정 서울의 한 셰어하우스에 들어갔다. 몸이 불편해지면, 비교적 마음의 조급함이 덜어질까 싶었던 것이다.



 홍대입구역 근처 작은 빌라에 성인 여자 총 6명이 함께 살았다. 내가 사용했던 2인실과 옆방의 4인실로 방은 총 2개. 화장실 하나, 거실 겸 협소한 주방이 바로 보이는 현관. 전혀 남인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 지내며 넉 달 정도를 살았다.

모로코에서 지내는 동안 겪었던 새롭고 이질적인 경험들이, 결국 새로운 영감을 주는 환기의 과정임을 알게 됐었다. 고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유목민의 삶을 살아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크고 어지러운 도시, 서울에 살았다. 이십 대 초반의 가난한 자본으로는 서울의 그럴싸한 원룸을 구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터라, 저렴하고 안전한 셰어하우스를 선택했다.

직업과 나이, 고향... 따지면 따질수록 다른 것뿐인 사람들 가운데 나와 가장 잘 어울리던 사람이 바로 코코모다. 사실 나머지 4명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코코모는 옆방의 4인실을 사용했었고, 우리가 사는 셰어하우스의 반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셰어하우스에서 고작 4개월을 살고 나왔지만, 코코모는 일 년 넘게 그곳에서 살았다. 입주 기간의 차이를 보아 나보다, 코모의 포용력이 훨씬 크다고 말 할 수도 있겠다.



코코모와 나는 조용하지만 정신없는 집에서 자주 답답함을 느꼈다. 그럴 때면 우린 집에서 나와 근처 운동장으로 향했다. 시간에 상관없이 이따금 운동장을 걸었다. 빙빙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며 입으로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코코모는 모든 대화마다 자신만의 단어를 곰곰 생각해보곤 하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냥 슬픈 것이 아니라, 쏟아진 물에 흠뻑 젖어 무거워진 솜처럼 슬프단 표현과 같이, 코코모만의 단어로 짜인 문장을 만들어 냈다. 좀처럼 순수한 언어를 사용하는 코코모 라지만, 나와 코코모는 곧잘 이 시대의 불쾌함과 부당함에 대해 신랄하게 씹어댈 때도 있었다. 이건 이래서 나쁘고, 저건 저래서 나쁘다며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비판을 하다 보면, 벌써 한 시간째 운동장을 걸었었다. 내가 셰어하우스를 퇴실하고 나서도, 우리는 종종 홍대 근처에서 만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셨었다.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며 들었던, 그녀의 이름 코코모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외국 밴드 더 비치 보이즈의 ‘코코모’라는 노래를 좋아했던 그녀는 그 노래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자신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녀 역시, 본가를 떠나 취업을 위해 서울로 갓 상경했을 당시 울적한 마음이 잦았고,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더랬다. 환상의 섬 코코모에 대한 노래를 듣고 있자니, 잠시나마 현실의 피로함을 잊게 되는 것이 좋았던 그녀는 노랫말 따라, 자신의 이름을 코코모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코모와 같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짓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쨌거나, 자신의 이름을 지어보는 일은 굉장히 재밌다. 아주 단순한 이름이라도 말이다. 문득 영화를 재밌게 봤으면 그 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따라 지어보거나 뛰어난 전시를 관람하고 나면 전시의 주제나 키워드를 따다가 이름을 지어보는 것이다. 이렇듯 일상에 연관 지어 본인의 이름을 새롭게 짓다 보면 본연의 주체성이 뚜렷해짐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속는 셈 치고 자신의 이름을 지어보길 바란다.



아주 간단한 이름들을 먼저 지어보면 점차 개성 있는 나만의 이름을 짓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 같은 경우에는 이렇다.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를 좋아한다면 비비안 파라샤. 좋아하는 과일이 파인애플이라면 파인 수린.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지어보란 말이다. 

다시 코코모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그녀는 말재간만큼이나 이래저래 손재주도 많다. 그녀의 그림 솜씨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전문 그림 작가들과 다퉈도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요리에도 기발한 사람이었다. 매일 저녁, 다음 날 회사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만드는 코코모였기에. 한 끼라도 정성을 담아 먹는 코코모를 보며, 나를 돌보는 방법을 배웠다. 매 끼니 꼬박 정성으로 챙기는 일은 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혼자 먹는 밥은 더 그렇다. 모로코에서 지내는 동안, 건강이 안 좋아졌었다. 파견 지역에서 혼자 지내니 식사를 잘 챙기지 못해 생긴 위경련과 이유 모를 두통이 잦았었다. 매일 진통제를 2~3알씩 먹어야 했었다. 한 번 망가진 몸을 되돌리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좋은 옆방 친구 코코모를 뒀다지만, 18평 남짓한 좁은 빌라에 다 큰 여자 6명이 부대끼며 지내는 일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했었다. 결국 코코모가 있는 셰어하우스를 나와 친구가 지내고 있는 자취방에 들어가 신세를 지게 됐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20대 초반 대학을 다니던 동안에도 자신의 원룸 방에 나를 거둬준 고마운 친구다.



 그녀의 이름은 주현으로, 주현이라는 이름은 나와 아주 깊은 연관성을 보인다.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닐 성싶은데, 나의 지인 중에는 주현이가 세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주현이들은 나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참이라, 나는 주현이라는 이름에 환상을 갖기도 했었다. 이러다 주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만나 결혼이라도 하게 되는 것 아닌지. 주현이들에게 정복당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만 그쳤고, 기존의 세 주현이들을 제외하고는 근 2년간 내 주위에 새로운 주현이가 나타나는 일도 없었다.

아무쪼록, 고등학교 동창 주현이의 원룸은 언제라도 나를 받아주는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정말이지 언제라도 찾아가면 받아주었다. 둥글둥글한 주현의 성격 덕분인지 여전히 좁은 원룸에서 살을 맞닿으며 붙어 지내는 동안에 다툼 한 번 없이 즐겁게 지냈었다.

그런데도 주현의 집에서 4개월 남짓 살았을까, 반년도 못 채우고 또 거처를 옮길 작정을 하고 말았다. 거대 회색 도시 서울에 진절머리가 났었기 때문이다. 모로코에서 얻은 두통이 서울에서 지내면서 더 심해졌고, 면역력이 똑 떨어지는 바람에 틈만 나면 두드러기까지 발생했었다.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안 좋았었다. 메스꺼움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두통으로 잠도 이루지 못하는 밤도 있었다. 실컷 아파지고 나서야 건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니, 아픈 것도 경력이 필요한가 보다.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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