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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Jan 31. 2021

단어의 진상 #62

눈물 나게 매워도 어쩔 수 없는 것

염장을 질러도 어쩔 수 없는 것

숨죽이고 기다리는 것

찬바람에 눈발 날려도 어쩔 수 없는 것

얼고 녹고 얼고 녹고

그렇게 버티는 것

그 독한 것들이

스며들고 물들어 가는 것

그렇게 익어가는 것

세월과 바람과 눈물로 익어가는 것

그러다 보면 아는 것

나중에야

맛을 아는 것

아주 나중에야

향기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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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진상의 진상> 김치     


싱싱한 날것으로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 묻지 않고 닳지도 않고 해맑게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푸른 바다에 흰 돛단배 같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바람은 세차고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흔들리는 세상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피할 수가 없다.    

 

눈물 나게 맵고 시리도록 짠 세상을 겪으며

구르고 엎어지고 닳고 헤져가다 보면 알게 된다.

어느덧 세월은 저만치 기울었고, 나는 지치고 불안한 인간일 뿐이다.

순수한 날 것의 옛 모습은 앨범 속 사진처럼 낯설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하얀색이 아니다. 

그 독한 것들에 절여지고 물들어 가는 것이다.

숨죽이고 익어가는 것이다.

맵고 짠 눈물을, 혹독한 겨울바람을 견뎌내다 보면 그제야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인생의 맛을 알게 된다.

세월의 풍파에 원래 색깔은 잃었을지는 몰라도

빨갛게 물들어 버렸는지는 몰라도 

인생의 맛은 그때부터다.     


어제가 아쉽고 오늘이 힘들고 내일이 두렵더라도 그건 숙성의 과정이다.

이제부터다.

세월의 무게를, 인생의 무게를 견디며 익어가다 보면 맛을 알게 될 것이다.

진정한 맛의 풍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진정 향기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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