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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Mar 21. 2021

단어의 진상 #65

죽음 위에 

죽음

그 위에 죽음

죽음 그 위로 눈발 날리고

얼고 굳어서

켜켜이 쌓인 죽음의 퇴적층

그 거대한 무덤을 비집고 

끝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 

꿈틀거리는 그 무엇    

 

죽은 자들의 시간을 견디고

그 주검 위에 뿌리를 내고 

그 검은 피를 빨아

파랗고 하얗고 노랗게

마침내 솟아오르고 마는 

불사의 퍼포먼스    

 

그 찬란한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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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진상의 진상> 봄     


‘존버’의 가장 상징적인 예는 아무래도 겨울이다. 

사는 동안 수많은 겨울을 겪어왔지만 

그 혹독한 시간들을 견뎌대는 것은 아직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끝날 것처럼 거리는 생기를 잃고

푸르름은 사라지고 하늘은 차고 땅은 얼어붙는다.

죽음의 시간이다.      


그 기나긴 겨울을 그래도 견뎌내다 보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얼어 죽은 것 같았던 나뭇가지에 하얀 매화 송이가 솟아나는 것을 보는 것도

역시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봄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파릇파릇 새순이, 하얗고 노란 꽃망울이 그냥 갑자기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기나긴 죽음의 시간을 기어이 버텨내고 

그 죽음의 땅에서 양분을 빨아 

마침내 되살아나는 놀랍고도 눈물겨운 스토리가 숨어있다.     


죽음과도 같은 시간은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이다.

아픔과 좌절과 실패의 시간이다.

때로는 그 고통이 길어서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터널의 끝이 도저히 보이지 않을 것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언젠가 봄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아픔과 좌절과 실패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 거대한 양분을 빨아먹으며 버텨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파랗고 하얗고 노란 결실이 탐스럽게 피어나 있을 것이다.     


겨울이 있기에 봄이 완성되듯이

죽음의 시간을 통해 삶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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