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속 성모 발현지를 찾아
# 또 한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묶여 당분간은 해외여행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장된 여행 추억을 꺼내보며 마음을 달래봅니다. 차일피일 미루다 훌쩍 시간이 흘렀네요. 2018년 8월 남프랑스 여행기를 뒤늦게 올리고 있습니다.세상 모든 분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 마음을 담아 오늘은 가톨릭 성지 루르드로 떠나 봅니다.#
피레네 산맥 북쪽 기슭에 있는 루르드 (Lourdes)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유럽 성지 순례 중 꼭 가봐야 할 코스이다. 1858년 2월 11일부터 이곳 마사비엘 동굴에서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르(1844~1879)는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체험한다. 성모의 주요 메시지는 기도와 회개의 요청이었다. 1862년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성모 발현을 인정했다. 베르나데트 수비르는 수녀원에 들어가 마리베르나르 수녀가 되어 은둔하며 짧은 생을 마쳤다. 마리 베르나르는 1933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 되었다.
루르드는 가톨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례지 가운데 하나가 되어 순례자들의 행렬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마사비엘 동굴의 생수는 질병을 치유하는 신통한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모처럼 계획한 남프랑스 여행이니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루르드가 당연히 포함되었다. 남프랑스 여행을 함께 했던 후배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고 나 역시 오랜 냉담기를 지나온 터였다. "좀 돌아가더라도 이번에 꼭 가자"는 마음이 일치했다.
비아리츠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루르드를 향해 출발했다. 포(Pau)를 지나 피레네 산중으로 들어가는 길은 고속도로가 없어서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걸렸다. 해가 진 뒤에 루르드에 도착했다. 산속의 마을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성지순례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라 그런지 더욱 조용하게 느껴졌다. 낮에 비아리츠의 해변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다. 예약하고 찾아간 숙소에 부엌 시설이 되어 있어서 저녁을 해결하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긴 하루의 끝, 낯선 곳에서 깊은 잠을 잤다.
마침 주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루르드의 성소들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성소로 가는 길목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묵주 등 성물과 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성수를 받아갈 수 있도록 물통, 성수병들을 팔고 있다.
루르드에는 두 개의 큰 종교건물이 있다. 성모 발현을 기념해 1883 년에 지어진 비잔틴 양식의 루르드 로제르 노트르담 성당( Basilique Notre Dame du Rosaire de Lourdes)과 높은 종탑을 가진 루르드 무염시태 성당 (Basilique de Notre Dame de l’Immaculee Conception de Lourdes)이다. 로제르 성당은 베르나데트가 본 성모가 묵주를 들고 있었다고 증언한 것을 기념해 세워진 것이다. 무염시태 성당은 성모가 ‘나는 원죄 없이 잉태했다’는 말을 하고 자신이 발현한 곳에 성당을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성당 뒤편으로 강 가에 베르나데트가 성모를 만났다는 마사비엘 동굴 (Grotte de Massabielle)이 있다. 두개의 성당과 동굴은 루르드의 성모와 관련된 주요 가톨릭 성소로 꼽힌다.
루르드에 갔던 날은 3개월간의 순례가 끝나는 날이어서 유럽 각지에서 온 순례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아침에 길에서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것인지 의아했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을 도와 함께 온 사람들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이 성지를 찾아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전날 밤 루르드는 그렇게 조용했는데..
성당 뒤를 돌아가면 동굴이다. 마사비엘 동굴에서도 순례객들을 위한 의식이 열리고 있었다. 의식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동굴 벽을 만지고 성모상을 지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모든 것이 조용하고 질서 정연하게 진행된다.
동굴에서 나온다는 성수는 동굴 옆의 벽에서 나온다. 수도꼭지를 여러 개 달아 놓아 많은 사람들이 성수를 담아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강을 건너가면 소원 초를 꼽을 수 있는 기도 공간들이 있다. 150년 넘게 순례객을 맞는 곳이니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다.
강변 벤치에서 만난 프랑스인 모녀는 여러 차례 루르드에 왔다고 했다. 프랑스 북부에 있는 어느 도시에서 왔다는 그들은 기적을 믿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거리가 멀고 시간을 특별히 내야 하지만 여행을 하는 자체가 치유의 힘을 지닌 것 같다고 했다. 맞다. 나 역시 그 무언가, 어딘가를 향해 여행을 하면서 늘 마음에 힘을 얻곤 했다.
강원도 주문진에 아담한 성당이 있다. 젊은 신부님이 열정을 담아 소임 하고 계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성당은 1915년 유럽에서 온 신부님들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대한제국의 운명이 일제의 손에 넘어간 암울한 때였다. 병든 나라가 건강하게 일어서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루르드의 성모에게 기도했던 것이 아닐까. 회개를 촉구하는 루르드 성모의 메시지를 일제에 보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 춘천 교구 소속으로 오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봉직했던 많은 외국 신부들이 핍박을 당했고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주문진에 올 때마다 주일이면 성당에 들르곤 한다. 언덕을 오르면 성모상이 보인다. 그 뒤로 작지만 그림 같은 성당이 보인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55년 루르드의 성모에게 헌정되어 지어졌다. 코로나 19 때문에 성당에서는 주일 미사가 열리지 않고 있다. 신도들 중 고령층이 많아 더욱 조심하고 있다. 루르드의 성모는 치유의 힘을 주는 기적의 성모다. 감염병으로 고통받는 지구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켜 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