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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r 23. 2024

추천전시] 1세대 여성조각가 김윤신 개인전

 3월 19일~4월 18일 국제갤러리 K1, K2

근자에 현대미술의 화두는 여성작가에 집중되고 있다. (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하는 이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지난해 글로벌 3대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 필립스의 경매 판매총액은 111억 6000만 달러(약 14조 8595억 원)로, 전년보다 18.8% 줄어든 가운데서도 유독 여성작가들의 작품은 경매판매 총액이 전년 대비 8.1% 늘어난 것이 실증이다 쿠사마 야요이, 조안 미첼, 조지아 오키프가  선두에 서 있다. 지난해 경매에서 판매된 초현대 미술 작가 작품 상위 50점 가운데 21점은 여성 작가 작품이었다.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하는 지금 이 시대, 미술계의 또 다른 화두는 디아스포라.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등 변방의 국가에서 떠나와 외국에 뿌리를 내린 작가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현재 환경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전시가 많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립하고, 충분히 스토리가 있으며  이 두 가지를 갖춘 여성작가라면 금상첨화라고 할까.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b. 1935)은  지난 40년간 아르헨티나에서 활발하게 작업했으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고하게 다졌다. 그가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내 메이저 화랑인 국제갤러리, 뉴욕 기반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리만머핀 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었으며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초대받은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렇다는 얘기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의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이다. 

베니스비엔날레를 앞두고 그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김윤신의 개인전 '김윤신 KIM YUNSHUN'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나무 조각은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 회화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그의 작품은 투박하지만 생명력이 넘친다. 다음 달 개막하는 2024 베니스비엔날레 주제관 초대작가로 선정된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b.1935)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회 'Kim Yun Shin'이  국제갤러리 K1과 K2에서 19일 개막했다.  1980년대 남미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한국의 주류 모더니즘과 물리적으로 단절된 채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각문법을 구축한 작가가 40년 만에 한국으로 거점을 옮긴 후  풀어놓은 첫 번째 전시다.  

개인전 개막일인 3월 19일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김윤신 작가 (사진 함혜리)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떨리는 목소리로 " 90 평생 살면서 이렇게 상업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전시를 하는 것이 처음이고 이렇게 많은 기자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작가는  "2022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1년 간 있어보자고 하고 전시회(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개인전)를 가졌는데 이렇게 좋은 일이 따라오게 될 줄 몰랐다" 며 "한국에서 작가로서 새로운 장을 펼칠 기회를 갖게 해 준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윤신 작가는 지난 연말 국제갤러리와 뉴욕기반의 리먼머핀 갤러리와 동시 전속계약을 맺었으며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주제로 열리는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참가하게 됐다. 


목조각 연작과 함께 꾸준히 지속해 온 회화 작업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을 국제갤러리 K1과 K2에 걸쳐 선보인다. 사진 함혜리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김윤신 조각 전반을 아우르는 작품의 제목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합(合)과 분(分)은 동양철학의 원천이며 세상이 존재하는 근본이다. 주어진 재료와 내가 하나가 되어 내가 또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고, 나 또한 또 하나의 생명으로 잉태된다. 그래서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는 두 개체가 하나로 만나며,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철학에 기반한 목조각 연작과 함께 꾸준히 지속해 온 회화 작업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을 K1과 K2에 걸쳐 선보인다.


" 나는 나무를 굉장히 좋아한다.  나무는 살아있고 숨을 쉬기 때문이다.  내 앞에  주어진 재료를 관조하는 것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눈앞의 나무를 오랜 시간 바라보며 그 대상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다가  완전히 파악이 된 순간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잘라 나간다. " 이렇게 조각의 재료인 나무와 작가가 하나가 되면 합을 이루고, 그런 합치의 과정은 나무의 단면을 쪼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분의 단계로 이루어지며 그 결과물로 또 하나의 분, 즉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K1에서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근원이 되는 1970년대 작 〈기원 쌓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작가가 꾸준히 매진해 온 원목 조각들과 함께 회화 작업의 일부가 소개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고찰하며 초월적 존재에 닿고자 하는 염원의 정서는 일찍이 그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엿볼 수 있는 특징이다. 기원 쌓기는 작가의 어머니가 난리 통에 행방불명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모습을 형상화하면서 시작된 작품이다.  초창기 전통에 대한 (재)해석에 유독 관심을 보이기도 한 그는 민간신앙 속 장승의 모습이나 돌 쌓기 풍습 등의 토템에 영향을 받아 나무를 수직적으로 쌓아 올렸고, 그에 대한 형식적 변주는 자연스레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에 이르게 되었다.

김윤신 개인전, 국제갤러리 K2 전시장 (사진 함혜리)

나무는 그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에 멈추게 한 원인이었다. 작가는 " 아르헨티나에 갔다가 시립미술관 관장에게 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작품을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해서 길에 뒹구는 나무를 주워다 새로 산  전기톱으로 작업해서 보여줬더니 흔쾌히 전시를 수락했고 1년의 준비기간을 받아 작업하다가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건조한 자갈밭에서 성장하는 알가로보 나무를 비롯해 라파초 나무, 칼덴 나무, 유창목, 케브라초 나무, 올리브 나무 등 다양한 원목이 그의 손을 거쳐 다채로운 형태의 ‘기도’가 되는데, 특히 그의 톱질을 통해 드러나는 나무의 속살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려둔 나무의 거친 껍질이 이루는 시각적 대조는 김윤신 조각의 대표적인 표현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K2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대지, 그 특유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연상시키는 회화와 회화 조각을 대거 선보인다. 작가는 “그림을 해야 조각을 하고, 조각을 함으로써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설명하며 조각과 회화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규정한다.

조각과 일맥상통하며 표면의 분할을 특징으로 하는 김윤신의 회화는 남미의 토속색과 한국의 오방색에서 영감 받은 원색의 색감으로 제작되는가 하면, 멕시코 여행을 계기로 아스테카의 흔적을 입기도 하는 등 작가의 환경과 심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이루어지다〉, 〈내 영혼의 노래〉, 〈원초적 생명력〉, 〈기억의 조각들〉, 〈진동〉 등의 제목으로 진행되는 회화 작업은 나이프로 물감을 긁는 기법으로 원시적 에너지를 표출하거나, 물감을 묻힌 얇은 나무 조각을 하나하나 찍어내 구사한 다양한 색상의 선과 자유분방한 면을 통해 강인한 생명력의 본질을 보여준다.  


회화와 조각을 아우르는 김윤신의 시각적 문법은 자연스레 목조각에 채색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남미의 토테미즘에서 한국 전통 색상 및 패턴의 유사성을 발견한 작가는 조각을 색조 및 기하학 실험의 장으로 삼기도 했다. 나아가 작가가 ‘회화 조각’이라 명명한 이 유형의 조각군은 전지구적 팬데믹 시기를 맞아 더욱 적극적으로 제작, 변주되기에 이른다. 

"나이 든 사람들은 외출이 금지됐지요. 재료를 사러 갈 수도 없고.. 일상의 주변에서 나무조각들을 모아서 형태를 만들고 색을 칠해봤습니다." 

당시 한 개인으로서 여러 일상 속 규제를 당면한 한편 예술가로서도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작가는 일상 주변의 나무 조각들을 모아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에 몰두했다. 이렇듯 목재 파편 내지 폐목을 재활용해 자르고 붙여 색을 입힌 회화 조각은 회화와 조각을 잇고 나누는 또 하나의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보여준다. 생을 관통하여 매 순간 도약해 온 김윤신의 우주는 열린 마음으로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는 실험 및 도전정신을 통해 조각과 회화, 그리고 회화 조각이라는 영역으로 여전히 확장해 나가고 있다. 

'예술이 생활'이라는 작가는 "예술이란 작가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업을 하면서 순간순간 집중되어, 무언가 담기는 것이 예술의 생명력"이라고 말한다.  올해 나이 89세인 그는 "나이가 들어서 못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정신으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면서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나무 및 석재 조각, 석판화, 회화를 아우르며 고유의 예술세계를 일구어 온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이다.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5년 뒤인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조각과 석판화를 수학했다. 이후 1969년 귀국한 김윤신은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 전까지 10여 년 동안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74년에는 한국여류조각가회의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1984년 작가는 새로운 재료를 만나 작품세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열망을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였는데, 그곳에서 만난 단단한 나무는 김윤신이 작품 안에 건축적 구조와 응집된 힘을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이어 1988년부터 1991년까지는 멕시코,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브라질에서 머물며 오닉스와 준보석 등 새로운 재료에 대한 탐구를 지속했다. 200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윤신미술관(Museo Kim Yun Shin)을 개관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8년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 김윤신의 상설전시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컬처램프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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