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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r 16. 2024

클래식리뷰] 키안 솔타니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

3월 14일 롯대콘서트홀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서울시향의 올봄 첫 연주회는 도이치그라모폰을 대표하는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가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1895)을 연주한다는 것만으로도 콘서트홀을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생각해 보면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가 활동하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특이한 정체성을 지녔다. 페르시아 출신 부모를 둔 오스트리아 국적의 첼리스트라니. 현대의 ‘이란’이라는 나라 이름보다 ‘페르시아’라는 단어는 우리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서울시향이 발간하는 소식지 SPO에 실린 인터뷰기사를 보니 솔타니는 페르시아인의 정체성에 무척 자부심을 지닌 것 같았다.   

2024년 봄을 여는 서울시향의 무대에서 만난 키안 솔타니는 말 그대로 ‘꽃미남’. 서주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며 준비를 하는 동안 페르시아 전통복장을 한 왕자의 모습이 자꾸 그려져서 감상에 방해가 될 것이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솔타니가 활을 그으며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페르시아 왕자는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 버리고 탁월한 연주력과 파워풀한 보잉으로 곡을 풀어내는 첼리스트 솔타니의 존재가 무대를 장악했다. 

서울시향과의 무대에서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을 연주 중인 키안 솔타니 (사진 서울시향 제공)

솔타니는 연주 내내 첼로를 껴안고 격정적인 춤을 추는 것 같았다. 1악장에서 솔타니는 강렬하게 휘몰아치듯 연주하며 거대한 운명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듯했다. 솔타니가 연주하는 첼로도 한몫을 했다. 그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더 런던 엑스 보케리니’를 대여받아 연주하는데 저음부터 고음까지 골고루 깊고 풍성한 첼로 고유의 음색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이날 지휘봉을 잡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지휘자 마르코 레토냐는 첼로의 드라마틱한 음색을 뒷받침해 주려는 듯 부드럽고 정적으로 연주를 풀어나갔다. 

솔타니는 SPO와의 인터뷰에서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 1악장을 ‘영웅적’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2악장은 ‘비극적’이라고 설명했다. 드보르자크는 짝사랑했던 여인(처형 요세피나)의 부음을 듣고 그의 가곡 ‘혼자 있게 내버려 두세요’(Op.82-1)를 2악장에 넣었다. 2악장에서 솔타니는 완전히 다른 음색의 연주를 들려줬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의 보헤미아에서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옛사랑과의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며 가슴이 저려오는 듯한 분위기로 가슴 밑바닥의 감정까지 끌어올리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구슬프고도 맑은 첼로 음과 절묘한 합을 이루었다. 3악장은 꿈에서 깨어나라는 듯 다시 휘몰아치며 현실을 일깨운다. 민요의 요소들과 리듬이 전체 악장에 흐르면서 경쾌한 분위기를 이끌지만 말미에는 다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압도한다. 

연주를 마치고 인사하는 키안 솔타니 (사진제공=서울시향) 

40분에 이르는 대곡이었지만 지루할 틈이 없이 음악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하이든, 엘가 등의 협주곡을 제치고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이 왜 ‘첼로협주곡의 제왕’으로 불리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드보르자크가 극적인 악상과 치밀한 구성으로 브람스 풍의 ‘교향적 협주곡’을 훌륭하게 구현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로 협주곡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음악이 끝난 뒤에도 2악장의 비극적 여운이 남았는데 솔타니는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센스 있는 앙코르 곡을 들여주었다. 그는 커튼콜에 나와서 첼로협주곡에 대해 “드보르자크가 이 곡을 작곡할 때 매우 슬픈 일을 겪었다”면서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세요’라는 제목의 2악장에 쓰인 원곡을 자신이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앙상블로 편곡했다고 설명하고 첼로파트와 함께 연주했다. 슬프지만, 슬프기에 더욱 아름다운 연주였다.   

2부에서는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1944)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졌다는 시대상황 때문에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의지가 담긴 작품으로 그랜드 피아노에 하프, 다양한 타악기가 등장하는 대규모 오케스트레이션의 장중함을 즐길 수 있는 곡이다. 세련된 곡 해석으로 정평이 난 마르코 레토냐는 현의 배치를 더블베이스를 좀 더 무대 전면으로 나오게 하는 등 현의 배치에 신경을 쓰고 팀파니, 탐탐 등 타악기를 돋보이게 함으로써 장중한 곡에 입체감을 주었다. 4악장의 엔딩이 하이라이트였지만 역시나 1부의 여운을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 서거 120주년이 되는 올해, 기억에 남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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