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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an 27. 2024

임윤찬이 츠베덴의 서울시향과 협연한 베토 벤의 '황제'

1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만약 피아노의 신(神)이 있다면 임윤찬에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베토벤이 이곳에 있었다면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19)은 1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월드클래스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의 서울시향 3대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첫날 공연에서 베토벤 피아협주곡 제5번 ‘황제’를 들었다 놓았다. 

임윤찬은 검은색 연미복에 하얀 셔츠, 하얀 넥타이 차림으로 무대에 총총 걸어 나와 꾸벅 인사를 한 뒤 연주를 시작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광주시향과 발매한 ‘베토벤·윤이상·바버’ 음반에서 녹음한 곡이자 2022년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로 원코리아 오케스트라와 한 무대에 섰던 곡이었다, 익숙하게 듣던 대로 ‘질주 본능’을 가진 그의 연주를 기대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임윤찬은 차분하고 담백하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화음에 맞춰 피아노의 선율이 부서지는 아침 햇살처럼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분산화음과 트릴, 스케일을 부드럽게 이어가다가 앞으로의 전개를 암시하듯 강하게 질주했다. 놓았다 쥐었다를 반복하며 임윤찬은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는 가운데 디테일한 해석을 살렸다. 때로는 온화하게, 때로는 위엄 있게, 그러다가 사뿐사뿐 건반 위를 구르기도 하면서 색다른 아티큘레이션으로 초반을 연주했다. 그러면서도 오케스트라가 점점 세게 음량을 늘려갈 때마다 똑같이 크레셴도를 구사하는 등 합주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 셈여림을 구사했고, 솔로 악기들이 악상을 이끌 때는 음량을 줄여 오케스트라 연주가 선명하게 들리게 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_ⓒ서울시향

녹턴풍의 2악장에서 임윤찬을 아름다운 음악을 즐기려 작정한 듯 음악에 빠져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손으로 음악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고, 어깨를 들썩이며 음악을 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강한 몰입과 긴 호흡에서 나오는 명상적 깊이를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 2악장에서 3악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베토벤 특유의 역량이 드러나고 임윤찬도 그의 질주본능을 3악장에서 제대로 발휘했다. 서정적으로 시작했다가 론도의 질주가 시작됐다. 접신한 듯  온몸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이 천재 피아니스트는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마지막 부분에서 조용한 아다지오가 등장하지만 이내 힘찬 피아노와 관현의 연주, 그리고 팀파니로 웅장하게 마무리했다.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폭발하는 것처럼 아름답고도 황홀한 시간이었다.   기립박수와 몇 차례의 커튼콜에 이은 앙코르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이여’를 쇼팽이 편곡한 곡을 연주했다. ‘황제’로 질주하던 감정을 가라앉히라는 듯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이었다. 

임윤찬이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 베토벤의 '황제'를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2부에는 예고됐던 대로 얍 판 츠베덴 감독의 취임연주회 레퍼토리인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이 연주됐다. 악장마다 츠베덴 감독의 핀셋지휘와 풍요로운 사운드, 강렬한 추동력이 빛을 발한 연주였다. 

‘오케스트라 조련사’라는 별명을 가진 츠베덴 감독은 취임 연주회를 앞두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도 다채로운 표정을 지니는 현악 파트 조련에 특별히 신경을 쓴 듯 보였다. 두 명의 악장이 현악 파트를 이끌면서 악단 전체의 음향적 양감이 풍요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비롭고 여기저기서 소리가 쏟아지는 듯한 1악장에서 특히 관악기가 다양한 음색을 자랑하며 제 역할을 해 냈다. 무대 뒤 한편에서 문을 열고 연주하기 시작한 금관은 물론이고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등 목관 모두 제각각의 소리를 내며 오케스트라의 밀도를 풍부하게 했다. 2악장 스케르초는 부르크너 풍의 춤곡으로 목가적인 1악장과 대조를 이루었다. 모리츠 폰 슈빈트가 제작한 ‘사냥꾼의 장례행력’에서 영감을 받은 3악장에서는 더블베이스와 바순의 등장으로 장송곡 같은 단조에 이어 말러 자신의 가곡 ‘ 내 사랑 그대의 푸른 두 눈’을 인용한 선율이 독특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4악장은 강한 충격과 불협화음으로 점철된 도입부에서 심연의 절망으로 이어지며 클라이맥스로 치닫으며 화려하고 장렬하게 마무리됐다.

서울시향 3대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 취임연주회_ⓒ서울시향

25일 예술의 전당, 26일 롯데콘서트홀로 이어지는 이번 공연은 츠베덴 음악감독이 서울시향과 함께 진행할 야심 찬 프로젝트인 말러교향곡 전곡 녹음의 첫 시작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시향은 시종일관 긴장의 끝을 놓지 않고 최선의 연주를 들려주는 모습을 보였다. 츠베덴 감독과 함께하는 앞으로 5년간의 행보를 기대하게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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