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특별기획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네모 프레임 안에 젊은 남자가 있다. 어깨를 비틀고 머리를 오른 쪽으로 돌린 채 눈을 살짝 내리 깔고 관람자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오만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수평과 수직, 사선의 구도가 잘 짜여져 있으며 흰 바탕에 검은 옷과 빨간꽈리 열매의 색깔이 대조를 이루며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얇고 세밀한 선, 거칠고 빠른 붓질로 그려진 이 그림은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 Egon Schiele, 1890~1918)가 그린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이다. 지난 달 3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 특별기획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에 소개된 작품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소장한 레오폴드미술관의 한스 페터 비플링거(Hans-Peter Wipplinger) 레오폴드 관장은 2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시연계 특별 강연에서 " 에곤 실레는 어떤 화가보다도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이며,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은 그가 남긴 300여점의 자화상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히는 작품"이라고 "이 작품을 포함해 레오폴드미술관의 대표 소장품들을 한국에서 선보이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매년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협력하여 세계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마련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에서는 오스트리아 레오폴트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총 191점을 엄선해 세기 전환기 비엔나를 무대로 자유와 변화를 꿈꿨던 예술가들을 한 자리에서 소개하며, 1900년대 비엔나가 가지는 문화사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레오폴드 미술관은 오스트리아 모더니즘 미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이를 수집한 루돌프 레오폴트(1925-2010)와 엘리자베트 레오폴트(1926-2024)의 소장품 약 5200점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미술관은 오스트리아 현대 미술에서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로 꼽히는 에곤 실레의 회화 작품 40여점, 드로잉 200여점 외에 수채화와 스케치 등 1000여점의 방대한 컬렉션 외에 1900년 전후 비엔나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걸작으로 구성된 방대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이 소장품들은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와 같은 오스트리아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비엔나 1900년대의 사회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적 장르를 포괄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왕가를 열었던 중심도시였으며 200만이 넘는 인구를 지닌 유럽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였다. 문화와 예술계 인사들이 모인 가장 흥미진진한 도시기이도 했다. 하지만 세기의 전환기인 1900년대는 제국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만큼 기대와 불안이 공존했다. 역사주의 전통아래 머물려는 보수적인 분위기와 이에 반기를 든 예술가들의 도전과 혁신의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던 시기로 그 선두에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가 있었다. 클림트는 새로운 예술적 자유를 찾기 위해 1897년 ‘빈 분리파’를 결성해 초대 회장으로서 세기 전환기 빈 예술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는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성으로 분리파를 이끌었고, 이 시기 등장한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빈 예술계가 모더니즘으로 전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화가, 디자이너, 건축가 등이 주축이 된 빈 분리파는 각자의 방식대로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2년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을 소개하며, 오스트리아의 600년의 역사를 선보였다. 전시는 한때 유럽을 호령했으나 19세기 위기를 맞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빈의 대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명령한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로 끝맺었다.이번 전시는 대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이 비엔나 예술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고 빈을 어떻게 유럽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생생한 비엔나 1900년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전시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특별한 공간 디자인과 영상 연출을 기획한 전시는 프롤로그와 함께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프롤로그부터 3부까지는 비엔나 예술계에 등장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1897년 창립된 빈 분리파의 역사와 이념, 그리고 비엔나 분리파의 철학이 반영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소개한다.4부와 5부는 에곤 실레로 대표되는 젊은 예술가들의 표현주의적 경향과 특징들을 살펴본다.
프롤로그, 비엔나에 분 자유의 바람’에서는 비엔나 대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명성을 얻은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를 소개한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화법을 구사하던 클림트가 인물화에서 다양한 구도를 실험하고 인상주의와 같은 유럽 미술의 영향 속에서 점차 ‘클림트다운’ 특징들이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클림트는 기존의 틀을 깨고 예술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비엔나 예술계가 모더니즘으로 전환하도록 이끌었다.
'시대에는 시대에 맞는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1부 비엔나 분리파, 변화의 시작’은 비엔나 분리파가 추구한 다양성을 소개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고자 한 클림트의 철학은 비엔나 분리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비엔나 분리파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의 보수성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찾고자 했고, 이를 위해 특정 양식을 고집하지 않았다. 분리파 회원들이 직접 설계한 분리파 전시관 제체시온(Secession)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었다. 제체시온의 입구에는 '시대에는 시대에 맞는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이라는 분리파 표어를 강조해 걸었다. 전시장 입구에 분리파 회원들의 단체사진이 비치고 제체시온의 입구와 표어가 영상으로 연출된다.
1부에 소개되는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잡지 ‘성스러운 봄’의 표지 디자인, 우표 디자인과 판화 등은 이들이 추구한 다양성과 예술적 통합을 지향한 목표 의식을 보여준다.
2부 새로운 시각, 달라진 오스트리아의 풍경’은 비엔나 분리파의 개방성을 다룬다. 클림트는 비엔나 분리파에 속한 예술가들에게 오스트리아 밖에서 일어나는 예술 운동을 충분히 경험할 것을 주문했다. 이 과정 속에서 유럽을 풍미하던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오스트리아의 풍경도 새로운 시각에서 그려졌다. 각종 분야의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소통하며 교류할 수 있었던 비엔나의 사회적 배경을 함께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한다.
3부 일상의 예술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은 예술적 장르를 허물고자 설립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들은 일상적인 물건도 예술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다양한 재질의 공예품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디자인 공방 초기에는 장식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지만, 1900년경 영국의 예술공예운동의 영향으로 점차 기하학적인 미학을 담는 간결한 디자인으로 변화했다. ‘장식’에 대한 서로 다른 철학과 달라진 디자인적 관념을 3부에서 함께 소개한다.일상을 예술로 만들고 싶어 한 빈 분리파 작가들의 그릇 등 공예 작품과 가구 60여 점을 3부에서 만날 수 있다.
‘4부 강렬한 감정, 표현주의의 개척자들’에서는 에곤 실레로 대표되는 젊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실레는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교수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료들과 ‘신예술가그룹’을 창단한다. 이들의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세 번의 전시회에서 강렬한 표현주의적 경향을 선보이며 빈 예술계에 세대 교체를 알렸다. 표현주의로 두각을 드러낸 리하르트 게르스틀(1883-1908)과 오스카 코코슈카가(1886-1980) 등을 소개한다.
리하르트 게르스틀은 인물의 감정을 색과 형태로 나타내는 표현주의적 경향을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빠른 시기에 선보였다. 현대음악의 창시자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깊이 교류하며 예술적 영향을 주고 받았으나 스물 다섯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시대를 앞선 창의성과 혁신을 보여준 표현주의의 선구자이다. 오스카 코코슈카는 초기에는 빈 분리파의 장식적인 예술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곧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특유의 거친 화법으로 나타내는 표현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회화뿐 아니라 연극, 문학 등 장르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실험으로 오스트리아 표현주의의 지평을 넓혔다. 코코슈카의 포스터와 표현주의 화풍이 강하게 드러나는 인물화 , 게르스틀의 자화상 등을 볼 수 있다. 코코슈카의 라이벌 격인 막스 오펜하이머의 ‘자화상’은 사상 처음으로 해외 전시에 나왔다.
‘5부 선의 파격, 젊은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는 에곤 실레의 대표작들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5부에서는 실레의 작품 세계를 ‘정체성의 위기,’ ‘모성,’ ‘검은 풍경화,’ ‘에로티시즘’ 등의 주제로 집중 탐구한다. 실레 스스로 탐구한 독보적인 표현 방식은 현재 그를 비엔나 1900년의 대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세계 최대 에곤 실레 컬렉션을 보유한 레오폴트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으로 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1890년 오스트리아 툴른에서 태어난 에곤 실레는 두살때부터 색연필을 잡고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부끄러움이 많고 말수도 적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그는 1906년 비엔나 예술아카데이에 입학했으나 학교의 아카데믹한 분위기에 실망하고 이듬해 학교를 그만둔다. 평생 멘토로 삼은 클림트를 만나고 예술적 인생이 변화하게 된다. 특히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와 선으로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존재에 대한 고뇌를 표현하여 독보적인 지위에 올랐다. 1918년 빈 분리파 49회 전시회에 초대되어 대성공을 거두며 인정받기 시작했으나 유럽을 강타한 스페인독감에 걸린 아내를 잃고 사흘만에 자신도 생을 마감했다. ‘인간의 내면’에 솔직하게 접근한 예술가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 현대 미술에서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로 꼽힌다. 전시에는 그의 자회상들과 스케치, 드로잉,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에서는 회화와 함께 실레 특유의 선이 강조되는 스케치와 드로잉을 볼 수 있다. 클림트와 실레는 둘다 여성의 누드를 많이 그렸는데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섬세하고 강렬한 선으로 그려진 실레의 드로잉 14점과 클림트의 드로잉을 비교해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도 마련됐다.
‘에필로그, 예술에는 자유를’에서는 에곤 실레가 그린 전시의 첫 번째 작품 ‘원탁, 제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를 영상으로 다시 만난다. 클림트가 사망한 직후에 그려진 이 포스터에는 클림트와 실레의 특별한 관계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비엔나 예술계의 변화를 이끈 두 예술가의 특별한 이야기로 전시를 끝맺으며, ‘예술의 자유’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총체예술’은 이번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개념이다. 비엔나 분리파가 추구한 ‘총체예술’을 전시장에서 구현하여 관람자들에게 종합적인 감상을 선사하고자 했다. ‘제14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을 주제로 열렸다.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들은 조각, 회화, 디자인, 음악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담은 ‘총체예술’을 구현했다. 1부에서는 이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소개하여 ‘총체예술’에 대한 개념을 직접 감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비엔나의 분리파 전시관, 제체시온(Secession)에서 볼 수 있는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가 베토벤 9번 교향곡과 함께 대형 화면으로 상영된다.
비엔나 분리파의 ‘총체예술’은 디자인 공방에 이르러 일상과 예술을 통합한, 변화된 의미의 ‘총체예술’을 보여준다. 3부에서는 공방 문으로 들어가며 이들의 철학이 담긴 각종 공예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공방에서 제작한 가구들과 벽지 디자인과 스테인드글라스 공예, 바닥 무늬까지 실내디자인으로 구현한 ‘총체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연출했다. 일상의 모든 요소를 예술로 승화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콜로만 모저(1868-1918)는 빈 분리파의 창립 회원 중 한 명으로, 회화와 디자인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했다. 특히 유리, 도자 등 각종 공예품의 디자인, 비엔나 분리파의 잡지 ‘성스러운 봄’의 표지 디자인, 전시회의 기획과 디자인 등 만능으로 활약한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그의 회화 작품 '마리골드' (1909) 외에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60주년 기념우표(1908년), 가구, 은 공예품, 유리공예품 등을 볼 수 있다. 요제프 호프만(1870-1956)은 비엔나 건축계의 대부 오토 바그너의 제자로, 비엔나 분리파에서 개최한 많은 전시회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모저와 빈 디자인 공방의 설립을 주도하며 일상과 예술의 통합을 지향했고, 특유의 정사각형 디자인으로 ‘정사각 호프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번 전시의 입장권 판매 등 관련 정보는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www.museum.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