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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쓰는맘 May 07. 2020

존댓말을 쓰는 아이

존댓말 쓰는 아이 왠지 친자식이 아닌 것 같지 않아?

그시절 최고의 다이노포스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릴 때부터  존대어를 쓰는 아이들을 보면

묘하게  친자가 아닌 것 아닐까

하는 그지 같은 생각을 했었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

... 훗날 생각해보면  그 느낌은  어색함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예의 바른 느낌이

천방지축 안하무인인 늦둥이 막내딸에겐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어른이 되어 지역 방송국을 전전하며

파리 랜서로 살다가

직원 잠바가 입고 싶어 들어간 서울의 한 케이블

방송국을 거쳐

신문사에 들어왔을 때

업계에서는 유명한 꼬장꼬장 한 낳을 때부터

신문사 국장으로 태어났을 것 같은

국장님이 계셨는데 무척이나 독설가였다

첫 아이를 데리고 회사 후배의 결혼식에서

만난 국장님은

꼬롬한 얼굴로

“요즘 엄마들은 이해할 수가 없어  

한 살도 안된 아기에게는 ‘이랫어요 저랬어요’

존대를 하고

늙은 지 아버지한테는

반말을 척척 하잖아?”


실제로 돌 지난 아들에게

교육이랍시고  

이랫어요  저랫어요  를 남발하고

고희를 지난 아버지에겐

니나 돌 이를 할 판인

나를 향한 독설에도

알량한 내 자존심에 못 들은 체 했었던 것 같다

 


내 아이는 말이 느렸다

낳을 때부터 산부인과 기록을 깨고

최장신이었던 내 아이는

고된 서울살이와 사회생활 초년생을 거치며

가늘고 길게 버틴 내 직장생활이 태교가 된 건지

가늘고 길었다  


영유아 검진에서 키는 늘 100% 였던 내 아이는

큰 키와 어울리게

노안이었다


노안에도 말이 유독이나 느렸던 내 아이는

꽉 찬 네 살에야 제대로 된 말을 했다

긴 시간 입을 다물어서인지  입 터졌다는

관용구가 잘도 어울리게 얼마나 떠들어대는지

시끄러울 정도였다

네 살 무렵 동생을 보게 된 첫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말이 느린 아이에 대한 신기함 때문에

우리는 아이의 모든 말을 흡수하고

사랑하고 열광했었다


그렇게 아이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사랑하는 사이

내 아이는 말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반말이 반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빠 저거 가져와

아빠 저거 먼저 먹어봐


어렵게 취직한 회사의 사장님 대하듯

갑질하는 그 반말을

참으로 고맙게도 들었던 것 같다


버릇이 없다고 간혹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은데

어렵게 입을 연 아이의 말에 감사해

예절은 예의는 버렸던 듯 하다


그리고 무럭무럭 반말 천하로 자란 아이는

초등학생이 됐다

초등 1학년 첫 크리스마스즈음

트렌드 세터인 친구들이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는

없다

어린이집에 오는 산타 할아버지가

체육선생님과 말투도 똑같고

안경벗으면 똑같이 생겼다는 유언비어가 퍼질 즘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초등학생은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

안줘?”

거짓말 보다는 나을 것도 같고

돈도 아낄듯도 하고 해서

“응  초등학생은 안준데”

하고 못을 박았다  

며칠을 우울감에 빠졌던 아이는 그즈음

가장 갖고 싶었던 로보트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뉴스에도 나올만큼 유명했던 그 장난감은

구할길이 요원했고

웃돈을 얹어 중고세상에서나 구할수 있었다

“베싸메 무쵸 모여라 썬더  어쩌고 다이노포스”

하는 그런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래를

아이는 자면서도 불렀다

너무 우울해 해서 수소문을 했지만 구하기가 어려웠고  극단적인 나는 그 참에 산타할아버지는 없다고 말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이틀 남겨두고  한 마트에서 번호표를 나눠줬다

새벽에 일어나 끝에서 두번째에 턱걸이 한

나는 그 공룡로보트를 구했고

심한 감기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jtbc뉴스에 떡하니 등판을 노출하고 말았다


어쩌든 우여곡절끝에 구한 그 장난감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 머리맡에 두면서

내일 일어나 그 장난감을 볼 아이를 생각하니

내가 두근거려 잠을 잘수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를 기다린 우리 부부는

아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날뛰는 모습을 보고

부모들이 목숨을 걸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그 마음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

한참 로보트를 가지고 소리치며 좋아하던 아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엄마  근데 산타할아버지가 초등학생은 선물 안주지 않아?”

“응 근데 지한이가 동생도 너무 예뻐하고 엄마 아바 말씀도 너무 잘듣고 착해서 지한이만 선물 주셨나봐”

구태의연하게 대충 말을 둘러대고  그날 하루를

정말 크리스마스처럼 보낸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선물 받았다


아이는 그 날부터 정확하게 존대어를 썼다

자꾸만 말을 높이는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는 착한 일을 한적이 별로 없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했으니 존대말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정확히 5년간

내 아이는 존대어를 쓰고 있다


사춘기가 찾아온 요즘도

“뭐가요~~”하며 눈을 부라린다


아들 둘이 대학생인

나이가 지긋한 방문교사분은 나에게

“아들은 존대말을 쓰는게 좋더라구요  

사춘기가 과하게 오면 존대어를 쓰던 애들은

아무래도 부모에게 과한 말을 못해요

존대어 쓰게 두세요”

라고 말했다  


유독 양심적이고 신앙심이 좋은 내 아이는

자기검열로

다이노포스같은

놀라운 선물을 받을 자격과 요건이 안되기 때문에

일련의 보답으로 존대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렇게 찾아온  내 아이의 존대어는

동네에서도 주위에서도

부러워할만큼 예쁜말을 쓰는 아이로 거듭나게 했다

남의 시선이 무엇이 중요하냐만

아이가 예쁘고 말간 얼굴로

나긋하게

“엄마 괜찮으세요? 오늘 많이 힘드셨어요?”

하면 나는 녹는다


혹자에게는 의붓어미로 보일수도 있는

예의어린 모자 사이의 말로 느껴지겠지만

나긋한 내 아이의 존대어는

크리스마스날 어렵게 아이를 위해 선물을 구한

나에게 산타할아버지가 준 선물을 아니었을까  

존대말을 선물로 받기 충분한 노력이 집결된 크리스마스 선물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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