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를 올리고> 고정순, 만만한 책방
‘괜히 모임을 만든 거 아닐까? 할 수 있겠어?’
‘사람들이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어쩌지?’
그림책테라피 모임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그림책 리스트를 넣어 워크지를 만들었는데, 그러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목소리다.
나라는 사람은, 그저 뒤에서 지켜주는 사람이고, 중재하고, 채워주고, 모임을 진행하기보다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이 편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그 역시 나의 장점이고 강점이다. 그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나와 함께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이제 시작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자꾸 주춤주춤 한다.
왜 이토록 소심해졌는지 이유를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이 아닐까… 새롭게 뭔가를 하겠다는 목표에는 새로운 사고와 감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불쑥불쑥 내 기존의 사고와 감정의 패턴으로 돌아가려는,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려고 하는 나의 오래된 습성이 늘 발목을 잡는다.
고정순 작가님의 <가드를 올리고>는 12주간 함께 나눌 그림책 리스트에는 없는 그림책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워크지를 만드는 동안 내내 생각이 났다. 그림책 속에는 빨간 장갑을 끼고서 링 위에 올라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이 나온다. 시작 종소리를 들은 복서가 할 수 있는 일은 맞거나 맞서거나… 어쩌면 피할 수도 있겠지… 아무튼 링 밖에서 보면 이 단순하고 재미없는 싸움이, 복서에게는 아직은 내려올 수 없는 간절함이 담긴 삶의 링이 아닐까… 늘 하던대로, 성격대로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과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힘들지만 목표를 세우고 이루며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내 삶의 링.
<가드를 올리고>의 저 빨간 장갑이 나 자신 같고 어느 순간 내가 있는 곳은 홀로 고독하게 싸우는 링 위가 된다. 그 외롭고 고독한 싸움이 금세 끝날 줄 알았지만 지리한 싸움은 계속 된다. 하지만 싸움을 계속하거나 끝내거나 할 수 있는것 또한 링 위에 있는 복서의 선택이다.
포기하지 않고 지치고 무거워진 가드를 다시 올리며 씩~ 하고 미소를 띠는 복서를 보니, 내 마음에도 살랑~ 하고 봄바람이 불어 오는 것 같다. 그렇게 또 위로를 받는다. 기꺼이 맞서고 싶은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