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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 Apr 18. 2024

공감의 차이

아빠가 준 또 하나의 선물

우리 나라는 공감이라는 말을  'sympathy'와 empathy로  구분하지 않는다 둘은 각각 '동정과 연민'입니다. 대상에게 거리를 두고 이해하는 것.

 이에 반해 'empathy'는 대상과 하나 되어 '감정이입'을 해서 '공감'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늘 sympathy를 했던 것 같다.

누군과와 거리를 두고 그와 동화 되는 것이 아니라, 늘 그의 삶에 그려지는 부분들 

상황과 결과로 이해하여서 그런 감정들을 외웠던 듯 하다.

진정으로 남이 힘들다고 울어본 적은 글쌔 덕질할 때 연예인이 아플 때, 울어봤던 듯한데, 그 때도 진정한 의미의 empathy보다는 

그렇게 울고 덕질을 열심히 하는 나에 취해서 그런 행동들을 했던 듯하다

진정으로 누구의 마음과 동화되어서 감정이입해서 울었던 적은 없던 듯하다.

그래서 내 연기는 늘 남을 울리지 못했나?

내가 잘하는 연기 나랑 비슷한 연기만 할 수 있고 내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 오면 그 상황을 그저 '훙내' 내었다.

내 삶에 누군가가 사라진 적도 많았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뻥뚫린 듯한 기분' 평생 기억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지 못했다. 머리로만 알았지.

소시오패스인 줄 알았다. 

그런 감정들을 느껴본 적도 없거니와 사회에 대한 냉소 그리고 자기 혐오가 강해, 

가장 불쌍한 '나'는 남과 같아질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자기혐오가 아니라  자기 연민이 강했던 것 같다.

세상 누구보다 내가 젤 싫고 내가 제일 불쌍해.

아빠가 떠난 후에야 조금은 알 것같다.  empathy라는 것을

내가 아닌 누군가의 마음과 같이 간다는 것을.


아빠는 떠나기 전, 아플때부터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세상이 싫어서 169에 26키로 까지 빠졌던 나를

다시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삶을 다시 살아가고 아픈 사람이 눈에 보이게 했다'

건강을 다시 챙기게 해줬다

아빠는 죽어서까지 가르침을 줬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주고갔다. 

아이러니하다. 세상은.

가장 슬플 줄 알았던,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순간에도 나는 숨을 쉬고있고 살아있다.

오히려 예전의 나보다 더 많이 알고있는 듯하다.

삶은 그런 것일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속담은 새옹지마라고 한다. 

새옹지마,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 일은 일. 세상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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