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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Oct 23. 2023

부산여자인 내가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95% 정도는 아빠 탓이다

대전이 고향인 남자친구는 한화이글스의 오랜 팬이다. 자기 말로는 10살 때쯤 한화에 입덕했다고 한다. 어느 날 집에서 함께 야구를 보다가 나에게 물었다.


-시은아, 근데 넌 부산(사람)인데 롯데 응원 안 해?

-응.

-왜?

-어릴 때 아빠가 야구장 가자고 했는데 원래 그날 놀이공원 가기로 했던 날이어서, 야구장 가기 싫다고 약속대로 놀이공원 가자고 버텼거든.

아빠는 야구장, 나는 놀이공원. 이렇게 서로 계속 양보 안 하다가 아빠가 키워준 은혜 고마운 줄 모르고 말도 안 듣는다고(억울하다. 그동안 내가 말을 얼마나 잘 들었는데) 키워준 만큼 야구빠따로 때릴 건데 그거 버티면 약속대로 놀이공원 데려가주시겠다고 그러시더라.

아빠가 맞으라는 만큼 엎드려뻗쳐해서 맞고, 그러고 놀이공원 갔는데 뭐 그러고 나니 그전까지는 야구가 좋았던 것도 같은데 언제부턴가 애정이 싹 사라진 거지 뭐. 그렇다고 죽어도 보기 싫어! 이런 건 아니라서 대학 때 친구들이 야구장 가자고 할 때 같이 간 적도 있고 네가 야구 볼 때 같이 보는 거 정도는 뭐 괜찮은데, 혼자 있을 땐 굳이 봐야 하나… 그런 느낌?


-… 몇 살 때?

-10살. 맞은 개수도 기억난다. 10년 키워줬으니까 10대 맞으라고 하셨거든.

-여자애 엉덩이를?


-우리 집은 엉덩이 맞는 걸로 여자, 남자 차별 안 하는 집이어서.. 남동생도 놀이공원 파여서 같이 엎드려뻗쳐해서 맞았는데 동생은 9살이라 9대 맞기로 했는데 3대 맞고 아프다고 그냥 야구장 가겠다고 했고 나는 10대 다 맞고 놀이공원 약속 지키라고 고집부렸지. 때리고 나서 아빠가 나보고 독하다고 질려하면서도 그 경기, 롯데 vs 해태 전이라고 진짜 꼭 사직구장 가서 보고 싶다고 양보해 주면 안 되냐고 했는데 내가 절대 양보 안 했지. 심지어 이미 10대 채워서 다 맞고 난 뒤인데? 이제 진짜 약속 지키시라고 막 그러면서. 근데 아빠가 꽤 풀스윙으로 때려서 그런 건지, 원래 약해져 있던 건지, 며칠 뒤에 동생이 우리 때렸던 그 방망이로 친구들이랑 야구하는데 그거 도중에 부러짐.


(위 이미지는 해당 에피소드와 무관함)


-멍 안 들었어?


-당연히 멍들었지. 멍도 멍인데, 학교 가서 의자 앉을 때마다 진짜 아팠는데 친구들 아무한테도 이 얘기를 할 수가 없어서 속으로 ‘윽..’ 내적 비명 지르면서 앉고 그랬지. 아빠가 놀이공원 데려가줬다고 자랑하려고 놀이공원 가고 싶었던 거고, 갔다 온 거 아이들한테 자랑도 엄청 했으니까. 그런데 아빠랑 야구장이랑 놀이공원 가는 걸로 싸운 거 말하면 내가 자랑한 게.. 뭔가 이야기 흐름이 이상해지잖아.


그렇게 놀이공원을 다녀온 지 일주일 뒤엔가 할머니랑 목욕탕엘 같이 갔다? 할머니가 내 몸을 보더니 커다랗게 보랏빛 멍이 든 엉덩이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누가 그랬냐고,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해서 여차저차해서 아빠가 야구빠따로 때렸다, 근데 놀이공원 갔으니까 괜찮다 그랬지. 그러니까 할머니가 비속어로 아빠 욕을 막 하는 거야. 어린 나이에 할머니가 욕을, 아빠 욕을 하는 게 막 웃기면서 마음이 좀 풀려서 웃으니까.. 할머니가 물 묻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쓱 넘기고 또 쓱 넘기고 하시면서, 계속 그렇게 쓰다듬으면서 하신 말씀이 제일 기억에 남아.


-뭐라고 하셨는데?

-‘내 새끼지만 내가 그렇게 키운 거 아니다이.’




오해할 것 같아 미리 언급하자면, 저 정도 맞은 걸로 아빠의 행동을 가정 폭력이라고 할 생각은 없다. 전혀. 우리 가족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평범하고 화목한 집이었고, 흔히 말하는 ‘가부장적이지만 다정한 아버지, 가끔 무섭지만 현명한 어머니, 딸 하나 아들 하나인 그런 집’이었고, 그 당시는 어느 집이나 그 정도는 맞고 살았다(물론 지금은 그러면 안 되고, 이제는 그게 아동 학대의 범주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이게 얼마나 비일비재하고 평범한 일상이었느냐 하면 가끔 반에서 아이들이 아빠한테 누가 더 많이, 독특한 걸로 맞았나 내기하듯 이야기하기도 했다.


효자손, 허리띠, 옷걸이, 직접 만든 나무 회초리, 잘라 만든 당구대 회초리. 토속적인 것으로는 절굿공이도 있었다.


우리 세대 초등학생들은 참 다양한 오브제들로 맞았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몇 대 맞았다고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나도 야구방망이로 몇 대 맞았다고 아빠를 미워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뭘로 맞았다, 그런 것은 어떤 날의 평범한 대화 소재정도였다(물론 당연히 이런 얘기를 매일 하지도, 자주 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뜻입니다).


나는 친구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 야구방망이는 없네?‘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놀이공원 경험담을 훼손시키기 싫어 그 이야기에 끼어들진 않았다.


다만, BGM처럼 들리는 그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음, 나만 맞은 건 아니니까 그리 억울해할 필요는 없겠군.’하며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게 나를 미워해서 때린 게 아니라 이게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아이 대하는 방식’인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유쾌하진 않았지만 불쾌하지도 않았다.




… 미안하다. 거짓말이다. 한 몇 년간 조금은 불쾌했다. 조금 불쾌해서 밤에 잠이 안 오기도 했다. 난 내가 아빠에게 엄청 소중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 일에 아무 생각이 없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었지..’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전에도, 그 후에도 서로에게 대립되는 문제가 없는 한 아버지는 언제나 다정한 아버지였고, 나는 똑부러지고 손이 안 가게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잘하는 기특한 맏딸’이었다. 나는 이후로 야구 때문에 한번 더 맞은 일이 있었는데(디테일은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맥락의 상황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그 이후로 나는 야구 문제로 아빠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다정한 아버지가 냉정해지는, 그리고 폭력을 쓰는 아버지로 돌변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착하고 똑똑한 내 딸’에서 ‘고집쟁이 미친 계집애’로 내 위치가 추락하는 빌미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착하고 똑똑한 딸의 역할은 가끔 불편했지만, 온순하고 복종적으로 내가 내 욕구를 누를 때 부모님은 행복했고, 온 가족이 평화로웠으니까. 그렇게 하면.. 나는 계속 아버지에게 ‘기특하고 착한 내 딸’ 일 수 있었으니까. 그런 식으로지만 우리 집은 화목하고 평화로웠다. 그런 식이지만 나는 사랑받는 딸이었다.


그리고 그걸로 아빠한테 서운했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딱히 서운하지도 않다. 다만 아주 어릴 땐 야구가 재미있었고, 좋을락 말락 했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야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도저히 생기지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동안은 TV에 나오는 야구만 봐도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다고 불쾌까지는 아니고.


내가 이렇게 된 이유가 아마 아빠의 야구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커서, 그래서 나를 줘 패 서라도 야구를 보러 가고 싶어 한 그 모습이 썩 좋진 않았어서 야구에 정이 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거 말고는 내가 야구를 이렇게까지 안 좋아할 만한 다른 이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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