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n Cha Oct 03. 2024

백두산, 그 생태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8)

— 지하삼림 야생화

장백폭포와 소천지 탐사 후 숙소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고 지하삼림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긴 줄을 서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은 여전했다. 입구 현판에는 곡저삼림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공원은 울창한 원시림을 걷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사실상 지하삼림이 시작되는 곳까지만 가볼 수 있었다. 일종의 산림욕장 같은 곳이었다. 우리가 데크 주변의 작은 풀꽃과 나무들을 보고 감탄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을 보고는 중국인관광객들이 신기해했다.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무얼 찍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덩달아 야생화 사진을 찍기도 했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울창한 숲을 이루는 다양한 나무들이 시선을 끌었는데, 그중에 우리는 까치밥나무속(Ribes)의 식물에 관심을 갖고 세밀히 관찰하며 사진에 담았다. 풀에 가까운 관목성 식물로 줄기에 위협적인 가시가 가득한 까막바늘까치밥나무, 잎이 둥그스름하고 지면에 누워 자라는 둥근잎눈까치밥나무, 한국에 자생하는 것보다 잎이 확실히 크고 넓은 넓은잎까치밥나무, 이 세 가지는 같은 지역에 서식하고 있지만 각자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었다. 반면에 넓은잎까치밥나무는 잎과 열매의 모습이 비슷해서 배암나무랑 자주 헷갈렸다.

(좌) 까막바늘까치밥나무 (우) 둥근잎눈까치밥나무
(좌) 넓은잎까치밥나무 (우) 배암나무

데크길 주변을 여기저기 탐색하며 걷느라 정신이 없는데, 앞에서 "물망초!"라고 외치는 소리가 내 귀를 깨웠다. 마치 잠에서 깬 듯한 기분이었다. 그 외침을 따라 눈을 돌리니 작은 꽃 하나가 내 시선을 확 끌어당겼는데, 짙은 하늘색 꽃잎 다섯 장이 노랑 꽃술 부위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왜지치라는 식물로 큰꽃마리와 유사한데 색감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잎이 세잎양지꽃과 유사한 땃딸기도 계속 눈에 띄었다. 나중에 들으니 하루 전에 탐사한 분들은 딸기를 따먹으며 사진에 담았다는데... 우리한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몇 개라도 좀 남겨 둘 것이지... 데크길 양쪽에는 쥐털이슬, 퍼진고사리, 나도옥잠화, 자주꽃방망이 등 이름이 익숙한 식물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왔다.


나도범의귀를 처음 만났다. 범의귀과 범의귀속의 이 식물은 이미 열매를 달고 있었는데, 작고 까맣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타원형 열매가 씨방마다 10여 개씩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 귀엽고도 신기했다. 한 달여 전에 왔던 분들은 거미줄 안테나 모양의 꽃 모습을 담아 왔던데... 꽃도 열매도 참 매력적인 식물이다. 같은 날 새벽에 백두산 북파에서 보았던 같은 과, 같은 속의 구름범의귀와는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참 독특한 형태의 식물이었다. 탐방로에서는 노루삼 열매, 인가목 열매, 댕댕이나무(개들쭉나무) 열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국에도 자생한다지만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는 귀박쥐나물도 탐방로에 많이 보였다. 입자루(엽병)가 줄기와 만나는 부분에 귀처럼 보이는 턱잎(탁엽)이 두장씩 달려있는 모습이 참 독특했다.

(좌) 왜지치 (우) 나도범의귀 열매

한 시간여를 걷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데크길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다. 그곳에서 시야에 펼쳐지는 광경이 바로 지하삼림이라고 했다. 눈앞에는 백여 미터 정도 깊이의 푹 꺼진 협곡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은 키가 무척 큰 나무들로 꽉 찬 원시림이었다. 그 모습이 지하에 형성된 삼림 같다고 해서 지하삼림이라고 불리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전에는 이 협곡도 탐방이 가능했다던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니까 그곳의 식생이 더욱 궁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주어진 시간에 맞추느라 걸음을 재촉해 공원입구로 돌아오면서 들어갈 때 제대로 못 담았던 야생화들을 더 사진에 담았다. 특히, 처음 대면하는 쌍잎난초를 사진에 담는데 남은 에너지와 시간을 최대한 할애했다. 크기가 작기도 했지만 조명이 약한 그늘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 특징이 제대로 드러나는 사진을 담느라 수십 컷을 찍어야 했다. 마침내 그나마 맘에 드는 사진 두어 장을 확인한 후 자리를 뜨며 이 난초 이름에 대해 궁금증이 솟아났다. 줄기 아래쪽에 서로 마주 보는 둥근 잎이 두 장씩 달려 있어서 붙여진 이름일 텐데, 왜 쌍잎난초란 말인가? 한자어 '쌍(雙)'과 순우리말 '잎'의 조합이 참 어색했다. 쌍엽난초나 두잎난초라고 명명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조합일 텐데 말이다. 지금껏 다양한 야생화를 마주하면서 일부 야생화 이름의 어색함과 비논리성 또 비합리성을 계속 인지해 왔는데 그런 예를 또 발견한 셈이다.

(좌) 귀박쥐나물 (우) 쌍잎난초

야생화 탐사 셋째 날인 이 날은 오전 3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오전, 오후에 걸쳐 대장정의 탐사활동을 벌인 날이다. 셔틀버스와 관광버스를 갈아타가며 멀리 떨어진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몸은 많이 지쳐 있었지만 마음은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우리는 단순한 여행을 온 게 아니야, 열정적인 야생화 탐사활동을 벌이러 온 거지!



작가의 이전글 백두산, 그 생태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