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멈춰 세운 문장들, 두 번째 기록
장장 두 달에 걸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완독 했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경험을 담은 1부는 경이로웠으나, 로고세러피(의미 치료)를 설명하는 2부에서는 난해한 정신과적 개념들로 인해 읽는 속도가 더뎌지기도 했습니다.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흥미를 잃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소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인간의 실존과 심리를 파헤친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임에 틀림없습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인간 군상의 실상과 극한의 선택에 대한 기록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독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제가 이 책에서 밑줄 친, 그리고 제 삶과 맞닿아 있던 문장들을 꺼내어 다시 사유해 봅니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이 구절은 현재 제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행복이 저의 최종 목표이긴 하지만, 당장의 '성공' 그 자체를 좇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할 뿐입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성공에 무관심할 때 오히려 기회가 찾아왔고, 그것이 결국 저의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성공과 행복은 억지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충실히 채웠을 때 주어지는 선물과 같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저에게 이 문장은 '삶의 동력' 그 자체였습니다. 현재 저는 호주에서 영주권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10년을 버티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시련이 있었고 마냥 좋은 상황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주권'이라는 목표하에 모든 것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수많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삶까지 계획하는 것이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임을 깨닫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해 보면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수용소의 삶은 모두가 좌절하고 무능력했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랐습니다. 작가의 경험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은 스스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선택할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과연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자문해 봅니다. 명확한 답은 없지만,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한 '나'를 끊임없이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몇 년 동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시련과 고난의 절대적인 한계까지 가 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시련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련에는 끝이 없다."는 문장은 서른 중반의 저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삶은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한 가지를 끝내면 또 다른 시련이 나타나는 무한 반복입니다. 남은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시련을 대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인생의 고통을 덜어내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저는 잘 울지 않는 편입니다. 홀로 외국에서 10년을 살아내며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저 역시 참다 참다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울고 나면 내 안의 감정이 깔끔히 비워지고,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기분이 상쾌해지기까지 합니다. 이 문장은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이 간극이 확실히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 긴장감은 일의 성취도를 높이고, 쉬는 날에도 미래의 나를 위해 자기 계발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긴장도 마냥 좋은가라고 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쉬고 싶을 때조차도 내면의 긴장감이 저를 끊임없이 부채질합니다. 이 긴장을 어떻게 조절하여 정신적 건강함을 유지하는지가 또 하나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밑줄은 곧 나의 질문이자 깨달음이었습니다. 프랭클의 연구는 단순한 심리학을 넘어 철학적인 사유로 나를 이끌었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점검하게 했습니다.
아우슈비츠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길 바라지만, 인간에게 시련은 형태만 바뀔 뿐 계속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나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남겼습니다.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길 위에서 이 책은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 것 같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