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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훈 Jun 07. 2019

전역 왜 했어?

“저 전역하려고요”     


장교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16년 임관식 날, 아버지는 내 어깨 위에 소위 계급장을 달아주셨다. 나중엔 별을 달아주러 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내심 뿌듯해하셨던 아버지다. 군인의 길을 걷길 바라시던 아버지에게 전역 8개월을 앞두고 속내를 고백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충고 뒤에는 진솔함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의 그 진솔함이 내겐 용기가 됐고, 덕분에 당당히 사회로 나올 수 있게 됐다. 다만 별을 가져다 드리지 못한 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릴 뿐이다.     


전역 왜 했어?     


‘자아’를 찾고 싶었다. 군인은 위계적 질서 속에서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자아가 온전하기 어려웠다. 오롯이 투철한 안보의식과 용기로 무장됐을 뿐이다. 물론 부대를 지휘해야 하는 장교에게는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됐다. 하지만 그 또한 위계가 덧씌워졌다. 내 자율성은 상관의 그것보다 단계 아래의 가치이다. 기실 바깥 사회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겠지만 군대는 그것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공간이다. 따르지 않으면 위법이다. 그렇다 보니 군대에 있는 동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을 잊고 살았다.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가며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나인데.. 훈련이나 일과가 끝나면 그저 닳아 있는 군화 밑창만 빤히 쳐다보곤 했다.     


누구보다도 군인으로서 그리고 장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복무했건만, 그렇게 부대에 애정을 가지고 생활했건만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나다운 삶을 그려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성격 탓이었다. 군인은 명령과 복종을 위해 존재해야 함을 교육받았음에도 나는 간혹 중대장님들께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고, 자의적으로 융통성을 발휘해 부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모습을 잃기 싫어했던 본능적인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부하가 군인으로서의 자질이 명백히 부족했음에도 중대장님들은 그런 나를 아끼고 보듬어주셨다. 진정한 군인이셨다.     


나는 왜 그토록 ‘자아’에 집착을 하며 살았을까.      


힌두교 경전 중 <우파니샤드>에서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브라흐만(brahman)이라 부르고, 개인에 내재하는 근본 원리를 아트만(atman)이라고 부른다. 소우주인 아트만에서 대우주인 브라흐만을 보게 되면 아트만과 브라흐만은 결국 동일하다. 세계의 모든 현상이 자기와 가깝게 연결되어 있기에 참된 자아를 알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세상을 알 수 있다. 즉, 세상의 이해는 자기 밖이 아니라 자아의 고찰에서 찾는다는 얘기다. <우파니샤드>가 주는 메시지는 내가 왜 그토록 자아에 집착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려줬다.     


나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조금 일찍 알아차렸던 것 같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고 관계를 깊게 유지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늘 체화하려 했다. 작가는 말을 수집한다지만, 나는 생각을 수집하는 데 능했다. 나와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일지언정 분명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생각들을 주입하는 일은 내 주관을 희석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한 가치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만든 건 내가 아니고 주변의 모든 환경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내게 자아를 해석하는 일은 곧 세상을 해석하는 일이 맞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했던 일들은 곧 세상만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졌다. 무수한 행위, 사건을 접해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먼저 자리 잡았다. 그렇다 보니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도 부담이 없었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조직 내 갈등이나 분쟁에 있어서도 나는 늘 중재자의 역할을 도맡았다. 역할을 자처한 게 아니라 그저 내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던 거다. 양 쪽의 말을 다 이해하려 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때문에 가끔은 줏대 없는 녀석이라든지 너는 누구 편이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자를 꿈꾸는 일은 그래서 힘들었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이냐. 어떤 것이 바람직한 행위냐에 대해 늘 명확한 답을 내려야 하는 일은 내겐 고통이었다. 기자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문은 사뭇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나 그것 보단 ‘극으로 치우치지 않는’이 현실과 더 조응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은 한쪽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운명을 감내해내야 한다. 기자는 독자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기자가 된다면 자아를 버려야 할까. 자아를 찾기 위해 사회로 나왔지만 내가 선택한 기자라는 꿈 또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기자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할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앎을 게을리할 수 없는 생활을 전전하며 평소에는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와 지식을 머릿속에 꾹꾹 눌러 담는 이 일이, 진정 내 자아를 찾는 일인 거 같다. 늘 중심에 서 있던 터라 주변을 살피지 못했던 내가,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그들의 편에 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도 기자를 준비하고 나서부터였으니까. 세상에는 잘못된 것들이 너무나 많음을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야말로 바깥세상을 이해하는 나의 소우주를 그려나가는 일인 것 같다. 어느 현직 기자분의 넋두리가 떠오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꿈꿀 때, 그래서 그 꿈이 진실일 거라고 믿을 수 있었을 때,
그때가 정말 좋은 거였다’     

시간, 금전적 여유가 어느 때보다 모자라고 

무한 경쟁 속에서 도태되고 밀려나기를 반복하는 지금 이 순간은,

적어도 내가 ‘내 삶을 살고 있구나’를 느끼도록 해주기에 

어쩌면 가장 소중한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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