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살 박종현에게
매튜 맥커너히가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때 소감으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who's your hero?) it's me in ten years
이와 비슷하게 저 역시 현재 저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저는 제10년 후인 37살의 제가 지금의 꿈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글은 제 꿈인 37살의 박종현에게 지금 이 27살의 박종현이 보내는 편지입니다. 현재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담론들을 전해보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이 글을 써봅니다.
어색합니다. 이런 일은 학창 시절 이후로 글을 써본 적이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27살의 박종현이 꿈꾸는 37살의 박종현은 과연 이 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였습니다. 동시에 제 인생에 있어서 많은 변화와 깨달음이 있었던 이 시점에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쓰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이끌어준 담론들은 대부분 영화에서 왔습니다. 왜 영화를 봤느냐, 10년 전이라 기억이 잘 안 나실 수 있어서 준비해 봤습니다. 이 편지의 시작은 지금부터 입니다.
리더의 조건은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든다.
2020년 기준이죠. 8월 홍정욱 전 의원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답한 리더의 대한 담론입니다. 저는 이것이 어떻게 보면 중요한 담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정말 괜찮은 친구들을 데리고 동아리와 스타트업을 시작했었지만 결과물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저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고 강하게 밀고 나가는 리더가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현실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더군다나 하루하루가 위기인 스타트업은 결과에 대한 압박 및 효율은 필수 불가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팀에서 효율이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화라는 감정에 기반해 팀원들에게 더 할 것을 요구했죠. 동시에 저 같은 사람이 꼭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오만을 저질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좋은 결과는커녕, 결과조차도 뽑아내지를 못했습니다.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얘기하지만 저는 저로 인해 모든 것이 많이 망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결국은 홍정욱 의원이 답변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살고 있는 시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리더 개인의 개성과 역량이 결국 시대정신을 이끌어와야 하는 것이 결론이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저는 저와 이 시대의 담론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담론을 담아내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죠.
그러다 영화를 매일 봐야 할 다른 이유를 찾았습니다. 바로 '그릇'에 대한 얘기입니다. 아시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저는 '돈을 잘 벌고, 잘 돼라'라는 얘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신기하게도 가족들이 '돈'을 잘 벌기보다는 '큰 그릇이 되라고' 항상 얘기해주었죠. 그 덕분에 제가 어렸을 때 유일하게 안 사자성어는 '대기만성(大器晚成)'입니다. 그 덕분에 '제 그릇은 어디까지일까'가 평생 화두 중 하나가 되었죠. 그러다가 최근 전공 담당 교수님에게 크게 실망한 일이 있었습니다.(그에 관련한 글도 브런치에서 썼지만 지웠습니다. 글의 주제는 평생 제가 짊어져야 하지만, 동기가 너무 찌질했거든요.) 저는 그리고 이렇게 훌훌 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로 몇 주를 고생했습니다. 제 전공을 너무 좋아했지만 동기를 잃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제 고민을 진지하게 듣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초지종을 이리저리 얘기하러 다녔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L 형도 빠질 수 없었죠. 듣던 중 깊게 고민하더니 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현아, 형이 여기서 너 얘기 몇 날 며칠이라도 들어줄 수 있어. 언제든지 편하게 들어줄 수 있는데, 하나만 약속하자. 이제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불평 안 하는 거야. 왜냐하면 계속 그 불평을 하고 다니고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순간, 너는 딱 거기까지 밖에 못 갈 거야.
멋있었습니다. 동시에 제가 그릇이 더 커지려면 어떤 담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대답을 주신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멋진 얘기들을 뒤로하고 저는 여전히 교수한테 들었던 몇 마디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릇'이라는 화두로 매번 살아가는 저는 사실 찌질한 면도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게 이러한 고민은 추석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가족들 앞에서도 도통 웃을 수 없었고 왜 내가 이러한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리고 생각보다 가족들은 저를 너무 잘 알았습니다.
삼촌이 종현이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태도야. 니 사촌동생들한테도 매번 얘기하지만, 어떤 것을 대하는 태도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단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수동적으로만 계속해서 해석해 왔던 거죠. 제 태도는 그렇게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릇이 커지기 위해서는 매번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질 기본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해서 다양한 담론을 담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시작한 것이 영화입니다.
I used to think that my life was a tragedy, but now I realize that its a f***ing comedy
작년(2019년)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조커' 대사입니다. 아서 플렉으로서 비참하게 살던 자신의 삶이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우습게 무시당하는 코미디 정도라는 자조 섞인 대사입니다. 친구 C와 저는 이 대사 한 마디로 많은 토론을 해 나갔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고 무시마저 정당화하는 이 사회에 '조커'라는 상징이 , 같은 해에 나온 '기생충'에서도 보인 것과 같이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계급이 존재하는 이 역설적인 상황에서는 '조커'가 필수불가결이라고 얘기했죠. 그에 비해 친구는 조커 같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공감을 폭력으로 나아가는 상징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며 이를 사회 스스로가 조절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술 한잔을 하며 그렇게 수많은 얘기들을 오르내렸습니다.
흘려보내야 해, 종현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그러다 목회자를 준비하는 P형을 만나게 되었는데 '조커'에 대해 P형은 목사님답게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동시에 제가 평생 지켜야 할 담론이라고 생각했죠.
what do you get when you cross mentally ill loner with a society that abandons him and treat him like a trash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서 플렉과 저와의 차이점은 어느 것도 없습니다. 단지 운이 좋아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좋은 형들을 만날 수 있었고 좋은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즉, 저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아서 플렉은 위로 하나마저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무시당하고 정신병자라며 기피하죠. 유일한 위로는 자신의 환영에 사는 사람 들 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레이는 아서의 농담을 자기 쇼에 코미디 소재로 써 버리고 그렇게 아서 플렉은 조커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죠.
Keep her Close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불임의 세계에서 반정부 시위자들과 이민자들을 어떻게 해서든 내몰려고 하는 정부와의 대척을 이룹니다. 유일하게 이 분쟁 잠시 중단되는 상황은 딜런(아기)의 존재를 모두가 인식할 때죠. 이렇게 딜런을 끝까지 지켜내고자 서로가 싸웁니다. 총성은 끊기질 않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누구든지 아기 , 즉 미래의 희망은 절실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거는 싸움에서도 기꺼이 총을 들고 싸우는 것이죠. 그렇게 테오는 키와 딜런을 무사히 지켜내고 사람들이 뭐라 그래도 아기를 끝까지 지켜내라며 Tommorow호, 즉 미래를 향하는 그곳에 무사하게 데려다 놓습니다. 자신은 희생하면서 말이죠. 누구든지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서 플렉이어도 저여도 말이죠. 그래서 제가 가지고 받은 것들을 나누어주면서 누구든지 자신의 미래가 가치 있어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졌습니다.
이때 정하게 되었죠. 제 평생을 지켜야 할 담론이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받은 것을 무엇이든지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바꾸어 누구든지 자아실현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졌습니다.
Ernesto, come back damn it!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제가 이 담론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었습니다. 천식을 심하게 앓는 에르네스토는 여행 전 여자 친구에게 받은 15달러를 자신의 치료보다 광산의 부부에게 나누어줍니다. 쿠스코에서는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녀 케추아어 밖에 하지를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마추픽추를 가던 중 억울하게 지주의 괴롭힘으로 쫓겨나는 농부의 얘기를 귀담아듣습니다. 나병환자촌에서는 원장 수녀님 하고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장갑을 낀 채 나병 환자들과 악수하라고 요구하지만 에르네스토는 그렇지 않습니다. 악수는 물론 포옹까지 나중에는 무모하게도 강을 넘어가 자신의 생일 축하마저도 같이 축하하자고 합니다. 알베르토는 그렇게 무모하리만큼 실천하는 에르네스토를 보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I always knew he would make it
그렇게 편한 삶이 보장된 에르네스토는 그런 삶을 뒤로하고 나중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로 가 체 게 바라로 살아갑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공산주의를 찬양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결국 실천을 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꿉니다. 만들고자 하는 이상을 빠르게 실천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un to the rescue with love and peace will follow.
'칠드런 오브 맨'에서 루크는 줄리언이 평화롭게 하려던 방식이 틀렸다며 그녀의 방식을 부정합니다. 폭력을 정당화하죠. 하지만 조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오스카에서 위에 말처럼 전합니다. 평화를 쫓으면 사랑은 뒤 따라올 것이다라고 얘기하죠.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즉, 저는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입니다. 당장 바뀌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실천하고 사랑한다면 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을 하게 된다면 과연 제가 그리는 유토피아 완벽한 세상은 올 수 있을까요, 아니요 오지도 않을 것이고 오지도 않기를 바랍니다.
완벽을 위해 나아갔던, 부족하지만 기특했던 나의 한 걸음이다.
나는 절대 완벽해지지 않을 거야. 근데 오늘 하루도 완벽해질 거야.
요즘 정말 자주 듣는 '우연한 하루 김수지입니다'에서 나온 올해 10월 22일 자 라디오에서 시작하는 글입니다. 얼마 전 친구 K와 얘기하면서 들었던 말과 비슷합니다.
왜 그렇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말씀드릴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다 완벽하다고 느껴졌을 때가 진짜 위험한 때입니다. '안톤 쉬거'는 가장 완벽하다고 모든 것을 다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찾아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절대 완벽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안 될 것 같다고, 해 봐도 별 소용없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문제는 찾아오는데 이왕이면 문제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살아가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안 될 거라고 미리 정해놓고 그래서 뭘 하겠어요, 해 보고 판단해야지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는 '몽상가에 이상주의자'이지만 그렇게 하나씩 했기에 단밤을 시작으로 해서 결국 장가를 이겨냅니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합니다. 패배의식에 안 될 거라고 미리 정하기 보다, 일단 해 보고 그에 맞게 또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득 보시면서 실천하는 것이 그리 쉽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쉽지 않죠. 그래서 많이 부끄럽지만 어떻게 하면 잘 실천할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겁니다. 호아킨 피닉스에 연설에 감동을 해 비건을 시작했고, 라디오에 사연 한 번 보내는 게 진짜 읽힐까 싶어서 사연을 보냈더니 '광화문에서 젤리 먹기'가 라디오에서 읽히고 패스트 벤처스에서 하는 fall batch에 지원해 올해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작은 실천이 결국 큰 실천을 이끕니다. 그렇게 매일 반복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렇게 큰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다른 것들도 묻고 싶습니다. '클래식' 같이 정말 절절한 사랑을 해서 '원더' 같이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가족애로 뭉쳐 극복하는 가족을 꾸려놓았냐고 묻고 싶습니다. 또한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저도 아들의 순수함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가 되었냐고도 묻고 싶습니다.
그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볼 수 없는 걸 보여 주고 싶어요
하지만 진짜 묻고 싶은 것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37살의 당신은 양양처럼 지금 나에게 보이지 않는 그 세상을 보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까. 부디 이 편지가 당신한테 있어서 근거 없는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소설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꿈꿨던 장애인, 노인, 미혼모, 성 소수자 등 차별을 생각하게 되는 단어가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써 자아실현이 가능한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37살의 박종현이길 바랍니다.
27살의 박종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