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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Nov 22. 2020

10년 후의 나에게 - 후편

조금 더 솔직한 <10년 후의 나에게>

글을 쓸 때 다들 몇 가지 원칙이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원칙 중 하나가 '정말 이런 걸 써야 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쓰는 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지난번 '10년 후의 나에게'를 두고두고 보면서 그 글은 제가 솔직하게 써 내려가지 못한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치 알맹이 없는 껍데기만을 내민 느낌이라 할까요. 그래서 지난번 <10년 후의 나에게> 서 쓰지 못한 소재들과 함께 제 종교적, 철학적 신념들을 이번 글에서는 가감 없이 드러내 보고자 합니다. 동시에 제가 좋아하는 영화와 드라마들 스포일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TO 37살의 박종현에게


전편의 편지는 극히 위선적입니다.  지난번의 <10년 후의 나에게>는 저의 철학적, 종교적 신념을 다 제외시켰습니다. 하지만 지난번 글을 두고두고 봐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솔직한 저의 생각이 들어가지 못했음에 조금은 한심하다고도 느꼈습니다. 또 쓰지 못한 내용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전편 내용을 이어 저의 담론들과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들도 가감 없이 드러내고자 합니다.


처음 시작은 '꼰대'라는 단어에 대한 담론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전에 저는 꼰대란 그저 시대 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어른으로 치부해 왔습니다. 동시에 그렇게 저도 꼰대 같은 행동을 보이면서 합리화해 왔습니다. '나는 그저 시대 담론을 이해 못한 사람 중에 하나야'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그렇게 하나하나 쌓이다 보니 합리화해야 할 문제가 아녔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얘기를 하다 보니 꼰대가 왜 위험한 지 알 수 있었습니다. 꼰대는 단순히 시대 담론을 이해하지 못한 어른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얼마나 선배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정의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느 나이대를 가도 꼰대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I'm listening


드라마 '키딩(kidding)'에서 제프는 무대를 철수하던 중 한 아이가 다가옵니다.  '무엇을 해 줄까?'라고 제프가 물을 때, 아이는 인형을 당기며 저 대답을 합니다. 동시에 제프는 다시 피클로 아저씨가 되죠. 그렇게 수많은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어른은 단순히 나이만 먹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만큼의 여유와 많은 담론을 담을 수 있는 크기의 그릇, 그것이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현아 내가 생각할 때는 20대에 최고로 할 수 있는 것은 30대에 어떤 삶을 살아갈지 밑그림을 그리는 거라 생각해


전편에 등장한 친구 C가 저에게 해준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이 20대 때 해야 할 일종의 임무였습니다. 30대에 어떤 삶을 살아갈지 20대에 정해야 만 했었죠. 그 결과 저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 지금의 저의 목표를 바꾸었습니다. '학점을 잘 따기'도 아니고 '취직 준비'도 아닌 '좋은 어른'이 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좋은 어른이 되고자 시작한 첫 번째 작업은 바로 좋은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니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 롤모델이 정해졌죠. 바로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의 체 게 바라였습니다. 이유는요,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이라고 놀림받는 동생을 매번 봐왔던 저였기에 '사회적 약자'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을 똑같이 일반인으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건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그런 사람이 영화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센병 환자에게 장갑을 벗으면서 직접 악수하고 북쪽만이 아닌 남쪽도 생일 축하해야 한다며 험한 아마존 물길을 거슬러 가는 에르네스토는 제가 살아가야 할 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체 게 바라 평전'을 읽은 후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저의 이상을 현실에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거창한 것은 없지만 첫 번째 비건을 시작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I have been a scoundrel all my life, I’ve been selfish. I’ve been cruel at times, hard to work with, and I’m grateful that so many of you in this room have given me a second chance. I think that’s when we’re at our best: when we support each other. Not when we cancel each other out for our past mistakes, but when we help each other to grow. When we educate each other; when we guide each other to redemption.

위 연설처럼 지난날의 저도 굉장히 이기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지난번 편지에서도 나와 있지만 경쟁 레이스 안에서 오로지 결과만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결과가 안 나온 이들에게 가차 없이 화를 기반해 소통했었죠. 하지만 되돌아보니 저 역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 때는 타인이 저의 실수를 잊어주고 , 사랑으로 저를 돕고,  '할 수 있다'라는 말로 저를 응원 해주었 을 때였습니다. 결국 사람 하나를 바꾸는 데에는 지적과 비판이 아닌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하죠.   


We fear the idea of personal change, because we think we need to sacrifice something; to give something up. But human beings at our best are so creative and inventive, and we can create, develop and implement systems of change that are beneficial to all sentient beings and the environment. 

그리고 사랑의 대상이 사람만을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상에는 연설처럼 지구 상에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모든 대상들이었죠. 그렇기에 인간만이 아니라 현재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비건을 시작하자고 마음을 먹게 된 마지막 이유는 창세기 1장 28절로 인해서입니다. 기독교 신자인 제가 성경에서 인상 깊어하는 구절 중 하나인데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필요한 자원이 있다면 땅을 정복하고 이를 통해 인간을 번영시키는 것이 아담에게 주어진 미션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땅에 충만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과 자연의 생물체가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까지만이죠.


많은 과학자들이 우리의 행동, 그중에서도 특히 산림 파괴와 야생동물의 서식지 다양성 파괴가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질병을 옮길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최근 BBC 뉴스에서 나온 기사 내용을 가져왔는데요, 결국 조화를 이루지 못한 인간은 '코로나 19'라는 재앙을 맞게 됩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자연에 건드리지 말아야 할 영역까지 건드렸고 결국 조화를 찾지 못한 인간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인간이 지금보다 더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비건을 시작하게 되었죠.


동시에 하나 더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부입니다. 이 이유 역시 영화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천식 치료보다 15달러를 광산의 부부에게 나누어주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15달러를 봐 보면 영화에서 알베르토가 선박에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는 돈입니다. 책정되어야 하지 말아야 할 돈이지만 동시에 엄청 큰돈인 것이죠. 그 장면을 보며 저는 당시의 15달러 정도를 나누어 줄 수 있는 힘이 있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갖고 싶은 것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최근 친한 Y가 저를 보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오빠는 조금 X놈으로 살 필요가 있어. 


저는요, 그 말을 들으면서 한 편으로는 좋았고 한 편으로는 저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유는 제가 조금은 선한 대상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기쁨이 있었고요, 동시에 딱 거기까지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타인에게도 주자던 저의 다짐이 '기부를 해 봤자야'라고 한 저의 생각으로 인해 가로막히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동시에 '**단체 비리'라고 구글링 하던 저의 지난 모습이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제부터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소액이지만 일시기부를 바로 하였고 정기기부를 국경 없는 의사회 그리고 그린피스에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매달마다 증액을 목표로 시작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런 기부를 마음먹은 저에게 주변 지인들이 몇 가지 질문을 하더라고요.

지인 1: 차라리 그 돈으로 주식을 하지 그래..
지인 2: 그 정도 돈 가지고 되겠어?

웃음으로만 대답했는데요. 사실 기부를 시작한 이유를 조금 자세하게 얘기해 보려고요.


이유는 지난 편에도 등장한 친구 K와의 대화에서 시작합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친구 K를 보며 항상 돈에 욕심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를 보러 부산에 오랜만에 찾아간 저에게 주식부터 먼저 시작하자며 평소에 안 하던 강요까지 했었죠.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나'라는 생각에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습니다. 


돈은 단순히 수단일 뿐이야, 어떤 '가치'를 돈으로 교환할 것이냐가 더 중요해.


결국 많은 대화를 하고 나서야 친구 K는 저런 결론을 이야기해주었죠. 


액수가 달라지면 얘기가 달라져 


친구 C는 돌아가신 故 이건희 회장을 보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상속세가 11조라는 얘기에 국가 예산이 달라진다며 해주었던 얘기입니다. 


이 두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제가 왜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얘기가 달라질 정도의 액수를 벌고 싶어 졌죠. 왜냐하면 그 액수로 전편에서 얘기한 현재 2020년 차별을 포함한 단어로 정의되는 이들도 결국 자아실현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 싶거든요. 결국 저는 제 돈이 '제가 생각하는 이상'이라는 가치와 교환하고 싶어 졌습니다.


종현아, '지금'은 절대 유토피아가 될 수 없어. 그래서 내가 만들어야 해


그리고 친구 K의 말에 따라 이러한 실천은 때에 맞추어 시작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기부를 시작하겠지'라는 생각보다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소액이라도 습관이 되어야 나중에 정말 얘기가 달라질 정도로 액수가 생겼을 때 빠르게 기부로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묻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위 글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살았었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확신은 없지만 그럴 때마다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유는요,


au revoir


'인사이드 르윈'에서 르윈은 파트너가 죽고 "The Death queen of Jane"을 부르고 마지막 밥 딜런을 보더라도 다시 기타를 잡습니다. 중년의 남성에게 정말 크게 얻어맞아도 말이죠. 결국 이상주의자는 현실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도 다시 이상을 향해 나아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얼마 전 <10년 후의 나에게>를 처음 썼을 때도 쓴 만큼 행동하지 못하는 저를 보며 자책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문득 합니다. 


It's not possible

인터스텔라의 인공지능 로봇 타스도 쿠퍼에게 그렇게 얘기합니다. 계산해 보았더니 만 박사에 의해 훼손된 우주정거장을 도킹하지 못할 거라고 얘기합니다. 그때 쿠퍼는


No, it's necessary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하죠. 그리고 결국 성공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인간의 위대한 지점이 바로 '할 수 있다'라는 믿음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도 '할 수 없다고' 계산한 것을 인간은 '할 수 있다'라고 믿기 때문에 결국 도킹을 하고 중력 방정식을 풀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인간의 위대한 지점은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okay
Be brave


'이터널 선샤인'에서 클레멘타인은 조엘에게 자기가 기억을 지우기 전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얘기하죠. 그때 조엘은 알았다고 얘기합니다. '키딩'에서는 제프가 이혼 서류를 쓰기 전 두려워할 때 쿵쿵이가 나와 용기를 가지라 합니다. 그렇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죠. 


이와 같이 27살의 박종현은 10년이 지나가면서 위 글처럼 살아가기 힘들 겁니다. 그럴 때마다 매번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하고 그럼에도 할 수 있다고 해낼 것이라는 각오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31)


마지막으로 저는 요즘 저의 장래희망을 '21세기 체 게 바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총을 들어야 했던 체 게바라와 다르게 저는 사랑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타스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인터스텔라'의 쿠퍼도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예수께서 율법학자에게 이르기를 가장 중요한 계명이 바로 사랑입니다. 저 역시도 주변 지인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여기까지라도 못 왔겠죠. 그렇기에 제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총과 칼이 아닌 사랑이 가장 큰 무기라 생각합니다.  


유토피아는 절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한 기준과 그 이상이 결국 '보통'이 되어야 하니까 


그리고 혹여나 정말 잘 되어서 제가 원하는 세상을 보였다고 한들 거기서 안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요, 제가 생각한 이상과 그 기준들은 그때는 그게 당연한 '보통'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부디 '10년 후의 박종현' 이 사는 세상은 많은 '보통'이 지금의 '이상' 이기를 바랍니다.


27살의 박종현 드림.


P.S. 카니발이 드림카라는 P형 교회에 10대 기부할 돈은 잘 마련되고 있나요?




이만큼이라도 오게 만들어 준 P형, L형, 친구 K, 친구 C 그리고 Y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인용자료>

코로나 19는 '마지막 팬데믹'이 아니다, BBC 뉴스,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2973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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