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회사에 와서 처음 맞닥뜨린 건 예상보다 컸던 나의 부족함이었다.
눈치 빠르고 열정 넘치는 사람으로서 이전 회사들에서는 난관에 봉착한 적이 거의 없는데 이곳에서는 달랐다.
규모가 크고 복잡한 프로젝트들, 꼼꼼히 챙겨야 할 디테일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나는 자주 흔들렸다.
이전의 자신감은 어느새 불안과 조급함으로 바뀌어 있었고, 매 순간 마주하는 새로운 도전들은 나의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했다.
새벽 한 시, 모니터 불빛 아래 앉아 오늘도 업무 일지를 써 내려간다. 까만 잉크가 하얀 노트 위에 스며들 때마다 그날의 부족했던 순간들이 덩달아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어느새 습관이 된 이 시간, 하루를 돌아보며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회의 중 놓친 세부사항", "브리핑 시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얼굴이 붉어지던 것", "메일 속 오타"... 작은 실수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자책이 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이 순간들은 마치 거울처럼 나의 미숙함을 비춰주었고, 때로는 그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때로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고통받는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열망과, 현재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아픔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24년도 상반기 다이어리를 펼쳐보면 그 모순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과중한 업무에 지쳐 도망가고 싶다고 쓴 페이지 옆에, 이 프로젝트가 너무 재미있다고 쓴 페이지가 있다.
이런 상반된 감정들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존재했고, 그것이 바로 성장의 본질임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순간 웃음을 잃어갔다.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밧줄이 되어갔다.
프로젝트가 많아질수록 에너지는 바닥났고, 실수는 늘어갔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나에게 너무 가혹했다는 것을. 불가능한 완벽함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동료들의 칭찬이 낯설게 들리던 때가 있었다. "일을 참 잘하시네요"라는 말에 '내가? 정말?'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왜 나의 부족한 면만 보고 있을까? 잘하는 것에는 왜 이렇게 인색할까?
그래서 시작했다. 업무 피드백 노트 한편에 그날의 잘한 일들도 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쑥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균형이 잡혔다. 실수를 통해 배우되 지나치게 자책하지 않고, 잘한 일은 인정하되 교만해지지 않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이 작은 변화는 내 안에서 시작된 조용한 혁명이었다.
성장이란 단순히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노트 앞에 앉아 하루를 정리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실수와 성공, 좌절과 희망이 공존하는 이 기록들이 바로 나의 성장 자체임을 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