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정 Nov 15. 2024

적절한 열정

회사에서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너는 참 열정적이야." 때로는 칭찬으로, 때로는 우회적인 충고로 들리는 이 말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헤매었다. 과도한 열정은 때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열정은 마치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기계와도 같다. 한편으로는 우리를 목표로 향해 끊임없이 밀어주지만, 동시에 그 과부하로 인해 우리를 고갈시키고 무겁게 짓누를 수도 있다. 나는 그동안 이 기계의 강력한 추진력에만 의존하며 달려왔던 것 같다.


몇 개월 전,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때의 나는 이 기회를 통해 내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밤을 새워가며 자료를 만들었고,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스크립트를 수십 번 읽었다. 모든 가능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고, 심지어 상사가 던질 법한 날카로운 질문들까지 예상하며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너무 과하다"는 피드백이었다. 그때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왜 과한 걸까?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그 순간의 나는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나의 불안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보지 못했다.


그 피드백 중 특히 친구에게 들은 말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너의 열정은 적절하지 않아." 그 말은 내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나는 열심히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더 잘될 거라고 믿었기에, '적절하지 않은 열정'이라는 표현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친구는 내게 말했다. "네 아이디어들은 프로젝트의 규모에 비해 너무 크고 어려워. 해낼 수 있는 인력과 자원이 한계가 있잖아. 그리고 프로젝트는 장기전이야. 초반부터 모든 열정을 다 쏟아버리면 나중에 우리가 지쳐서 페이스를 잃을 수 있어."

 그 순간 나는 내 열정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내 열정을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나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해 왔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것이 내가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때로는 '적당함'이 '최선'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순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 프로젝트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업의 본질과 효과적인 전달 방식을 고민했다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얼마나 많이 공부했는지'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나의 불안한 자아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열정이란 무조건적인 '최선'이 아닌, 상황에 맞는 '적절함'을 찾는 지혜라는 것을 조금은 느낀다.

타인의 시선으로 그린 나의 초상화는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날은 선명하게, 어떤 날은 흐릿하게. 하지만 그 모든 모습이 나이며, 그 모든 순간이 의미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적절한 열정'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모순적인 표현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다. 그것은 단순히 열정을 억누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의 에너지를 현명하게 사용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일하라는 조언이었다. 이제 나는 조금 더 여유롭게, 그러면서도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나와 화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열정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다만 이제는 그것을 더 현명하게 다루는 법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열정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다만 이제는 그것을 더 현명하게 다루는 법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적절한 열정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오히려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투명한 방, 투영된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