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올 줄이야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오늘부터 5일 동안 쉰다고 신나 있더라고요. 어제저녁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내일 뭐 할까, 뭐 먹을까, 마트 갈까, 어디 갈까. 쉬지 않고 물어봅니다. 직장인에게 연휴는 황금 같은 시간이죠.
오늘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요약 독서법 강의 실습수업 있었어요. 10시 15분쯤에 거실로 나갔더니 옷을 입고 나갈 채비하고 있더라고요. 애초에 먹으려면 돼지 국밥집이 오늘 휴무라서 선짓국 먹기로 했어요. 비 오고 날이 선선해지니 따뜻한 국밥이 먹고 싶었나 봐요. 얼른 옷 갈아입고 나섰어요.
자주 가는 선지 국밥집이 있어요. 울산 울주군 남장 시장 안에 있는 장터국밥과 사일국밥이에요. 장터국밥집은 국물이 진하고 구수한 맛이 나요. 사일 국밥은 대중적인 맛이에요. 깔끔 시원하고 감칠맛이 나죠.
도로는 한산했어요. 시장 가까이 가니 차가 밀리더라고요. 가는 날이 장날이었더라고요. 공영주차장에 들어가는 차들이 줄 서있었어요. 밖에서 몇 바퀴 돌다가 주차하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좌판도 많이 깔려 있고 평소 풍경과 달라서 혼자 갔으면 국밥집도 못 찾아갈 뻔했어요.
오늘은 사일국밥에서 먹었어요. 시장 안에 있는 식당들은 테이블이 많지도 않아요. 홀에 앉을자리가 없어서 방에 들어가서 먹었어요. 안쪽에 방이 있는지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그릇 부딪히는 소리, 주문하는 소리, 반찬 추가해 달라, 국밥이 잘못 왔다 등등 시끄러워서 국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장날에는 오지 말아야겠다며 얼른 먹고 나왔어요.
소화시킬 겸 장 구경했어요. 남편이 대추 샀다면서 만 원짜리 달라고 하더군요. 등지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몸을 돌리시더니 대추 하나 건네주셨어요. 마침 사진 찍는 순간에 그러셔서 할머니 모습이 찍혔지 뭐예요. 아름답죠? 감사합니다 하며 얼른 받았죠. 먹지 않고 한동안 손에 꼭 쥐고 다녔어요. 할머니의 마음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요.
장이 많이 커졌더라고요. 순대, 고래고기, 족발 손두부, 콩나물, 고구마, 전어, 낙지, 물메기, 새우, 낙지, 바닷장어, 군소 소라 등등 온갖 야채와 해산물도 많이 나와있었어요. 군것질거리도 많았고요. 밥 먹고 나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어요. 대추만 사들고 빠져나왔어요.
시장은 북적거렸는데, 왠지 활기가 없어 보였어요. 국밥집에만 사람 가득하고 시장에는 의외로 물건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우리만 해도 대추만 사가지고 왔으니까요.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사를 다 없애셨어요. 3년째 안 지내고 있어요.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편했어요. 지금은 편하지만 명절 느낌이 나지 않아요.
시장 구경하다 보니 혼자 시장 봐서 제사 준비하던 날 생각났어요. 그날도 비가 왔었죠. 한 손에 시장바구니 끌고 한 손에 우산 들고 재료 사러 다녔어요. 시장바구니 꽉 차서 손가락마다 비닐봉지 걸고 언덕길 올라 집으로 오면 손가락이 시뻘게져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죠.
명절에는 시댁에서 새벽 제사 지내고, 작은 집에서 지내는 아침 제사에 참석하고, 우리 집에서 우리 부모님 제사를 또 따로 지냈어요. 그러니까 명절 때면 하루에 제사를 세 번 지냈던 거죠. 우리 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끝나면 녹초가 되었어요.
시아버님께서 제사를 절에 모시자고 하셨을 때 놀랐어요. 아버님 심기가 왜 변하셨을까 궁금했지만 여쭙고 싶지도 않았어요. 마음속으로는 너무 좋았거든요. 혹시라도 마음 변하실까 조마조마했고요.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명절 기분이 나지 않을 정도예요. 아직도 적응 중이에요.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했지만, 진짜 올 줄을 몰랐어요. 간절히 원하는 대로 되더라고요.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요.
평생 동안 그 많은 제사를 지내오신 어머님은 얼마나 어색하셨을지요. 아버님 첫 기제사 날 제사상을 준비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첫제사인데 집에서 지내지 않는 게 서운하다고요.
서울 사는 아들이 추석에 못 온다며 2주 전쯤 미리 다녀갔어요. 작은 아이도 약속이 있어 못 온대요. 추석 당일 통도사 비로암에 모셔둔 시아버님과 부모님 찾아뵙고 올 거예요.
아이들이 안 오니까, 남편이 나와 뭘 하고 놀지 궁리하고 재촉하며 물어요.
오늘을 국밥 먹고 시장 구경하고, 마트에 가서 먹고 연휴 동안 마실 소주와 고기 사 왔어요. 내일은 시어머님 모시고 해운대 31cm 칼국수 본점에 가자고 하더군요. 어머님은 벌써부터 추석날 LA갈비 먹이려고 준비해 두셨대요. 지난봄에 담은 보리수 주 들고 가려고요.
그런 날도 있었으니까,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요.
몇 달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몸살이 나던 명절 증후군을 숱하게 겪었지요. 몸이 녹초가 되도록,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하루 종일 일하던 때가 있었어요. 먹지 않아도 배에 가스 차고 속이 메슥거릴 만큼 음식 냄새 맡았던 날들이 있었고요.
이제는 명절에 우리 뭐 할까 하며 빈둥거리는 여유 누려요.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넷플릭스를 뒤져서 둘이 같이 볼만한 영화를 찾아내고요. 무알코올 맥주와 대추, 와사비 새우깡 펼쳐 놓고 넷플릭스 1위부터 10위까지 드라마 영화 하나씩 봅니다. 오늘은 영화 '섬망' 하나 보고요. 어제저녁부터 오늘 나누어서 <사마귀> 정주행 했어요. 고현정 배우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명연기 반가웠어요. 극 중 정이신(고현정)에 감정이입해서 머릿속으로 소설도 써봤어요.^^ 남편과 정이신에 대해 생각 나누는 시간도 좋았어요. 남편이 꽤 감성적이에요. 영화나 드라마 볼 때는 말이 잘 통해요.
남편은 연휴가 신나지만 반대로 나는 마음이 바쁘고 할 일이 많아요. 작가로 코치로 글 쓰고 강의하고 공부하고 연습, 훈련해요. 1인 사업장도 운영해요. 1인 사업가는 365일 일 생각만 하게 되거든요.
조기 은퇴한 지 일 년 된 시누이가 그러더라고요. 뭐니 뭐니 해도 직장 생활할 때가 마음 편했다고요.
남편도 조기 은퇴하고 여러 직장 이직하면서 다니고 있어요. 이번 직장은 두 달짜리 계약이에요. 한 달이 지나가요.
명절 연휴라서 신나 하는 남편이 짠하기도 하면서 신나 하니까 덩달아 좋아요.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할 일이 많이 쌓여 있지만, 아이들도 없고 놀아줄 사람 나밖에 없으니 옆에 있으려고요. 잠시 블로그 쓰려고 책방에 들어왔어요.
내일은 새벽에는 뒷산에 밤 주우러 간대요. 오늘 비가 와서 밤이 많이 떨어졌을 거라고요. 밤 주우러 오시는 할아버지 내일은 남편 네게 밤 뺏기시겠어요. 같이 가자는데 그건 사양했어요.
바쁜 날들이 있었으니, 한가한 날도 옵니다. 힘든 날도 언젠가는 지나고 여유 있는 때 옵니다.
하기 싫은 걸 묵묵히 하며 견뎌내다 보면 그게 내 삶에 밑거름이 되고요, 원하는 걸 계속해서 바라고 그쪽으로 행동을 하면 이루어지더라고요.
상상하고 견디고 버티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집니다. 무엇을 바라고 있다면 더 간절하게 바라되, 지금 해야 할 일을 후딱 해치워 보는 거예요. 그렇게 견디면서 버텨내면 언젠가는 내 꿈이 이루어져 있더라고요.
연휴 동안 스트레스받을 걱정 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냥 일어난 일이고 그냥 넘기면 된다고요.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면 진짜 해로운 물질이 되어 몸에 쌓인대요.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와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스트레스가 아닌 게 되는 거죠. 스트레스 상황이 생기면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넘기면 좋아요.
치유 언니는 틈틈 글로 푸는 게 즐거운 일이에요. 후아! 블라블라 욕도 좀 하고요.
사진 찍은 거 블로그에 올리면서 오늘 있었던 일 정리하고요. 옛날 제사 준비로 바빴던 날도 떠올랐어요. 그때는 예민했던 일들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더라 생각도 들고요. 지금의 한가함을 누리게 해 주신 시아버님도 생각하고요.
감사합니다. 아버님! 편히 지내세요. 추석날 가 뵐게요.
비가 와서 저혈압이 도져선지 아침부터 왼쪽 머리가 깨질 거 같고, 눈이 빠질 듯 아파요.
감성적인 공감대 빼고는 행동, 말투, 반응 등이 정반대인 남편과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지만요.
심호흡 크게 하고 즐겁게 놀러 다시 나가봅니다.
밤에는 '크라임씬' 같이 보려고요. 탐정이 되어서 범인 찾아봐야죠.
자기 치유 성장 치유포유
셀프 치유법을 전하는 치유 언니
치유성장 에세이스트 최미교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당신의 빛나는 삶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