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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반도네온 May 20. 2020

나는  어쩌다 반도네온을 하게 되었나

1. 익숙한 듯 낯선 냄새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설 속의 이름 마냥 낯설다. 카테고리를 넓혀 보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그리고 남미. 남미의 나라들을 쭉 훓어 보던 차에 눈에 들어 온 지명이 하나 있다.




  갈라파고스.




  나는 아뜰리에 오를 가기 몇 달 전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땄다. 꼬따오의 외진 바닷가에 있는 5번방에서 지내면서 처음 만난 바다 속 세계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온 몸에 힘을 빼고 세상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 모든 것들과 단절된 새로운 세계가 좋았다. 갑자기 스콜이 내리는 순간, 바닷 속에는 하늘에 꽃이 핀다. 또로로롱 비가 수면과 만날 때 만드는 영롱한 소리와 수면에 만들어지는 파동을 처음 만난 순간은 잊을 수 없다.



꼬따오에서 머물던 5번방 테라스




꼬따오 바닷속


  다섯 개의 해류가 만나는 적도의 섬 갈라파고스는 다이버들의 꿈의 성지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기초가 된 섬으로 토착민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 상의 몇 안되는 태고의 섬이다. 다이버들에게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버킷리스트, 바다의 정글.   사실 나같은 초보 다이버에게는 위험한 곳이지만  삶의 의욕이 그닥 없던 나는 죽으면 죽지. 물개랑 수영하고 망치 상어의 반달같은 못난 입을 봐야겠다.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갈라파고스를 여행의 시작으로 잡았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자. 반도네온을 사자.


  이 두개가 여행 계획의 전부였다. 그 흔한 여행 책자, 인터넷 서핑 한 번 없이 나는 배낭을 싸고 바로 여행을 떠났다. 장사를 하면서 카드를 긁어댄 덕에  카드 마일리지 만으로 세계 여행 비행기 티켓이 가능했다. 서울에서 뉴욕, 뉴욕에서 에콰도르 키토,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이태리 밀라노, 밀라노에서 서울.  비행기표를 사고 13kg 짜리 배낭을 달랑 매고 달랑달랑 정말 아무 생각없이 떠났다.

  뉴욕에서 몇일을 보내고 에콰도르 키토에 자정 즈음 도착했다. 대충 인터넷으로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픽업 신청을 해 놓았는데 자정의 공항에는 아무도 나를 마중 나오지 않았다. 공항을 헤매다 우연히 마주친 한인 아저씨한테 사정을 얘기했다.


"어? 여기, 문 닫았는데."


"아? 에? 저 오늘 잘데가 없는데... 노숙해도 되려나요?"


"아이고 이 아가씨야, 총 맞아요."


  자기가 아는 집이 지금 공사 중인데 거기 낡은 매트리스가 하나 있단다. 일단 실내에서 잘 수 있으니 차를 얻어 타고 거길 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구멍 가게들에 철창이 있다. 강도가 많아서 철창 사이로 물건을 사는 거라고 했다. 에콰도르가 총을 맞을 수 있는 나라라는 걸 그 때 알았다. 공사 중인 빈 집의 낡은 매트리스에 누워 냄새를 맡았다. 전기가 없으니 빛도 없다. 공사장 냄새.  매장 인테리어 하면서 수 없이 맡던 그 냄새.


  나는 네번째 매장을 롯데 백화점 명동 영플라자에 냈었다. 실평수 67평의 꽤 큰 평수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 인테리어 업자들도 꺼리는 인테리어가 백화점이다. 게다가 롯데. 게다가 명동. 업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인테리어를 디자인, 시공, 현장 감독, 현장 청소까지 내가 직접 했다. 한 달 동안 명동의 찜질방에 살면서 독하게 공사를 쳤었다. 오픈을 하고 어느 날 퇴근하는 길에 백화점 직원이 "오늘 공사 있으세요?" 라고 인사를 건냈다. 인테리어 회사 직원으로 생각했었나 보다.

  롯데 백화점 매장을 철거 하던 날, 나는 스탭들을 다 보내고 혼자 남아 철거 공사를 진행했다. 인테리어 비용을 아끼려고 매장마다 직접 벽화를 그렸었는데, 3년 전 공사하면서 그린 붉은 양귀비 벽화들이 위이이잉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갔다. 공사장 냄새. 잘려나가는 벽화와 함께 마음 한 구탱이가 잘려나가는 것 같았지만 왠지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익숙한 듯 낯선 냄새를 맡으면서 그렇게 혼자 남미에서의 첫번째 밤을 보냈다.




건대점에 그렸던 양귀비 바닥 그림, 그리고 장사 초창기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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