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쩌다반도네온 Jun 01. 2020

나는 어쩌다 반도네온을 하게 되었나

2. 갈라파고스의 첫 다이빙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나는 참 잘 잔다. 그 냄새 나는 공사판 빈 집에서 푸욱 자고 상쾌하게 일어났다. 일단 어젯 밤 총을 맞는 일은 없었으니 꽤 순조로운 시작이다 싶다. 한 낮의 키토는 어젯 밤처럼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나는 그들에게 그저 흔한 여행자일 뿐이다. 아무도 내가 망한 걸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버스를 타고 근교 Papallacta에 가서 느긋하게 온천욕을 하고 갈라파고스로 향했다.


  갈라파고스 산타크루스 항에서 중심가인 푸에르토 아요르로 가는 버스 안. 일자로 뻗은 완만한 경사의 길을 올라가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양 옆으로는 처음 보는 나즈막한 잿빛 나무들에 낯선 풍경이 뭔가 비장하기 까지 하다. 모두가 숨 죽인 적막 속에 미지의 세계에 다가가는 낮은 BGM이 흐르는 것 같았다.





카페에서 낮잠 자는 바다사자



바다 이구아나


  푸에르토 아요르는 의외로 고급 휴양지 분위기였다. 파나마 모자를 쓴 백인 신사들, 테라스가 있는 멋진 레스토랑. 다만 하늘엔 펠리컨이 날아다니고 바위에 널부러진 바다 이구아나가 콧구멍을 벌렁대며 물을 뿜고 카페에는 바다 사자가 낮잠을 잔다. (사실 저 낮잠 자는 귀여운 아이들은 물개가 아니라 물범, 바다 사자였다. 얼굴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바다 사자는 다리가 짧아서 몸을 일으킬 수 없다고 한다) 갈라파고스에서 나의 목표는 심플하다. 물개인줄 알았던 바다 사자랑 수영하기, 망치상어 만나기.


  바로 다이빙 센터에 가서 예약을 하고 바다 사자가 낮잠자는 카페에 앉아 다른 다이버들의 얘기를 옅들었다. 어제 해류가 세서 같이 다이빙한 버디가 날아갔는데 락에 걸려서 7mm 웻수트를 뚫고 다리가 찟어져서 병원에 실려갔다고 했다. 날아간다니.


  실제로 갈라파고스는 갑자기 조류를 만나면 혼자 바닷속에서 날아가서 표류할 수 있어서 GPS를 달고 다이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부력 조절에 실패해서 떠 오를 경우 질소 중독 뿐 아니라 지나가는 보트에 부딪혀 큰 사고가 날 수 도 있다. 자격증을 갓 딴  초보 중의 초보인 나는 괜찮은 걸까. 버디도 없이 살아 돌아올 수 있으려나.


  갈라파고스의 첫 다이빙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생각보다 차가웠고 생각보다 어두웠고 그야말로 야생, 정글이었다. 알록달록 귀여운 크리스마스 웜트리 따위는 없었다. 어스름한 상어떼를 스쳐 보내고 어두컴컴한 모래 둔덕에 끝없이 스물스물 대가리를 내밀고 있는 가든일 (Gaden eels) 밭을 지나서 결국 거센 조류를 만났다. 그랬다. 나도 날았다. 5분간의 안전정지 내내 차가운 바닷속을 온몸을 덜덜 떨며 날았다. 다행인건 같이 다이빙하는 모두가 함께 날았다. 그래도 날아가는 내내 락은 없었고 모두의 웻수트도, 허벅지도 멀쩡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Oi6HaQSNlY


[가든일 유투브 참고영상 - 저런 것들이 제주도 유채꽃마냥 끝없이 펼쳐져 있다. ]



  거센 조류를 만나면 할 수 있는게 없다. 처음에는 몸을 가눠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에는 그저 몸에 힘을 빼고 빠르게 흐르는 조류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다. 갑자기 위로 솟구쳐 올라가지만 않기를, 나의 진로에 락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첫번째 다이빙이 끝나고 보트로 돌아와서 나는 덤덤하게 두 번째 다이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다이버가 공포가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미국에서 온 혼자 여행하는 키가 큰 70살의 할머니 다이버였다.



중간에 부력 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진짜 무서웠어. 몸이 갑자기 떠서 팀을 이탈해서 혼자 남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어.


아, 그랬어?



  끝까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실은 나도 무서웠다. 나는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렇다. 오히려 화를 내는 편이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약함은 사실 다른 문제일진데 왠지 내가 두려운 감정을 드러내면 상대방이 나를 얕잡아 볼까 봐 그게 또 두려운 거다. 그러다보면 내가 두려운 건지 화가 나는 건지 나도 모르겠고, 두려운 내 감정 자체를 부정하게 되어 버리고, 그러면 진짜 두려운 상황에 나는 두렵지만 내 감정을 인지를 잘 못 하고 그 상황에 대한 보호기재가 오류가 나서 작동을 안하게 된다. 아프거나 상처 받았을 때도 같다. 분명히 나는 아프고 상처받았는데  괜찮다고 스스로 믿어 버리는 거다. 화가 났을 때도 그렇다. 속에서는 열불이 나는데 정말 괜찮다고 나 자신을 속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개소리 같지만 그렇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사실 용감한 사람이다.


  나는 내 감정을 숨기는 일에 꽤 익숙하다. 하물며 대한민국 자영업자 19년차 아닌가. 별의 별 상식 밖의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진짜 이런 인성이 존재한단 말인가 싶은 사람한테도 "아이고오오 손님, 그러셨어요오오" 따위의 말을 "아이고오오, 감자에 싹이 났네에에" 정도의 어조로 말할 수 있는 경지이다.   그러다 보니 꾹꾹 눌러 놓았던 감정을 드러내도 되는 음악이란 장르가 나에게는 신세계이자 탈출구이면서 치료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용감한 할머니 다이버와 두번째 다이빙을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어쩌다 반도네온을 하게 되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