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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키티 Jun 07. 2019

어쩌다 시작된 독립

부암동이 어디야?


어쩌다 부암동으로 독립하게 됐다. 서른이 되면 난 부모의 품을 떠나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매 순간 나의 서른을 떠올렸다.


현실은 어땠냐고? 스무여덟 즈음되어, 인생이 통째로 흔들릴 만한 사건이 우르르 몰려왔다.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자 하는 듯했다. 나름 강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나를 얕봤다. 문장 한 줄 쓰는 법을 잊었고, 점점 바보가 되어갔다. 현저히 떨어지는 업무능력으로 인해 동료들이 피해를 보기 시작했다. '자주 아프고 정신력도 약한 애'가 되어버린 나는 주변의 시선을 견디지 못했다. 시말서 대신 사직서를 던져버린 그때의 패기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제야 덤덤하게 그때를 말할 수 있다. 나만 볼 수 있게 비공개로 전환된 블로그를 보고 있노라면, 눈물부터 쏟아진다. 나 좀 살려줘라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아서.


매일매일 엄마와 전쟁 같은 하루를 보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 길 없는 엄마는 이직 준비도 안 하고, 매일매일 잠만 자고 있는 내가 무척이나 한심했을 거다. 나는 내 속도 모르고 저러는 엄마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어떤 날은 서랍에 수북이 쌓인 약봉지를 들고 털어놓을까 싶다가도 엄마가 무슨 죄야 하면서 다시 서랍을 닫았다. 그냥 한심한 딸이 되는 게 더 나았다. 지금까지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와 매일 싸우다 지친 엄마는 이제 나가 살면 안 되겠냐 물었다. 내 능력으로 집을 구하기 전까진 절대 오지 않을 '독립'의 기회였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부모의 도움으로 독립을 하게 된 부끄러운 서른이 되겠지만, 나는 덥석 잡고 놓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쉽게 독립하게 되다니.

"어디서 살고 싶니?"

엄마는 나에게 말하지 않고, 몇 군데 오피스텔을 보러 다녔다. 여의도,  연희동, 일산 등등 성인 여자가 혼자 살만한 곳을 알아보고 있었다.

"부암동"


6월 어느 날, 엄마와 나는 차를 타고 무작정 부암동으로 향했다. 나는 왜 이곳에서 살고 싶었던 걸까.

1년이 지난 또 다른 6월. 나는 이곳에서 세 번째 계절을 보내고 있다. 사람도 사계절을 보내야 제대로 알 수 있다던데, 부암동에서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의 시작.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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