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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키티 Apr 08. 2020

내 하루가, 나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4월의 부암 1


나에게 4월은 지독하게도 잔인했다.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그 잔인함은 해를 넘길수록 나를 옭아맸고, 나는 깊은 늪에 빠진 듯 그 시간의 경계가 다가오면 긴장했다. 어쩌면 더 이상의 4월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 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애정 하는 계절의 한 중심에서 나는 언제부터 비틀거렸나. 친구를 둘이나 떠나보낸 잔인한 계절. 소중한 것들은 왜 항상 먼저 떠나버리는지, 왜 사라진 다음에야 그때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지. 32년째 찾지 못한 답이다.      


3월을 무척이나 행복하게 보내고 있음에도 불안함은 순간순간 급습해왔다. 이렇게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닌데, 이만큼 불행해지면 어쩌지.      


늘 나의 문제였고, 내가 저 먼 시간으로부터 끌고 온 화근이었다. 올해는 조금 더 가볍게 이 문제들을 마주하겠노라고 몇 번을 내 안으로 삼켜 넘겼다. 나는 이제부터 무수히 너를 그리워할 거야.     


코로나 19로 인해 두 달째 사회와 멀어졌다. 주변인들과도 마주할 순 없으나, 이로 인해 더 자주 통화하니 평소보다 다정한 소식들을 접한다. 집안에는 놀 거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읽지 않은 책 사이에 밑줄 그어진 책들도 많아졌고, 술을 직거래하는 능력도 생겨났다. 세상 맛있는 IPA를 할인행사장에서 만났고, 나는 무려 2박스를 구입했다. 송명섭 막걸리도 직거래로 주문해 1박스를 샀다. 내가 마신 술은 얼마 안 됐지만 홀로 사회와 거리를 둔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이 시간들을 함께 견뎌내고 있다.     


각자의 방에서 취해가며 버텨가고 있는 4월을 건강하게 보내고 싶어 졌다. 마음이 고꾸라질 때마다 가만히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다독일 수 있는 30대를 보내고 싶었다. 하필 제대로 놀아보려 시작한 백수생활을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하게 됐다니.      


최소한의 야외활동과 최대치의 집순이 생활에서 나의 4월은 어떻게 흘러갈까.      

지난 주말부터 아침 등산을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종종 등산을 다니곤 하는데, 우선 사람이 없고 급경사를 20분 정도만 참아내면 여기가 서울이 맞나 의구심이 드는 숲길이 나온다. 백사실계곡은 북악산 중턱에 있는 계곡으로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별장이라니. 세상 부럽기 그지없다. 무튼 이곳은 부암동의 자랑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의결로 직무가 정지됐을 당시 등산으로 이곳으로 왔다가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찬사를 보냈다고. 이후에도 종종 약수터에 와 물을 드시고 갔다고 한다.      


오늘은 백사실 계곡까지 올라가 명상을 했다. 내가 요즘 듣고 있는 명상은 오드리 코치의 ‘나다운’ 영상이다.


“내 마음에 가까이 마주 서보세요. 내가 어떤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고 그 앞에 서있는지에 따라 나의 하루가 결정됩니다”


“나의 감정이 무겁고 틈이 없다면 내 곁에 누군가 다가올 틈도 사라지고, 나의 열정과 꿈에 대한 기회도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의 공간을 안아준다면 내 곁에는 건강한 공간으로 채워지고 건강한 사람들이 다가오고 나의 꿈에서 하루의 선택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로움이 다가올 것입니다”      


짧은 시간의 명상이었지만 숲 속에서 온전히 집중하며 마음을 닦아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숨을 멈춘다. 그리고 가늘고 길게 숨을 내뱉는다.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무거운 감정들을 숨으로 내보냈다.      


수많은 생각들과 걱정들은 상황이 나에게 주어준 것들뿐이고 진정한 나는 맑고 아름답고 건강합니다


아- 행복해. 가뿐해진 마음으로 다시 일어나 부암동을 크게 걸었다. 이러한 건강한 쾌락은 나의 4월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습관의 말들’의 작가는 쾌락을 주면서도 실제로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감각을 마비시키는 행동을 ‘그림자 위안’이라고 설명한다. 불안하거나 무기력할 때 도피를 위해 술과 담배,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 등을 찾는 행동 등을 예시로 들었다.     


4월에는 그림자 위안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를 위한 습관을 들이는 건 어떨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일. 이번 주는 두 번의 아침 산행으로 마음을 닦아냈다. 내일 아침 계획은(?) 없다. 눈 떴을 때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습관이 내 마음에 들었냐는 질문은 나의 하루가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이었냐는 질문과 같다 (습관의 말들 중에서)


오늘 내 하루가,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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