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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exQ Dec 04. 2022

SCM이란 무엇인가?(5)

SCM과 SCM System, 주객이 전도되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를 관통하는 SCM의 전성시대는 또한 i2라는 SCM System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i2는 한마디로 "준비된 SCM"이었다.  90년대 말 당시 삼성전자는 이미 SCM을 통한 혁신을 전략적으로 선택했고 프로세스와 조직을 바꿀 용의가 기꺼이 있었다. 이제 적절한 시스템이 갖춰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i2는 시스템 업체로서만 자리매김하는 것에 만족해하지 않았다. 


i2는 준비된 SCM 시스템과 아울러 "이론"을 선보였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많은 SCM 용어들도 당시 i2가 준비한 SCM의 일부였다. 재밌는 것은 SCM의 경우, 전략과 프로세스가 시스템과 업무의 이름을 지어준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시스템과 시스템 업체의 이론이 전략과 프로세스를 정의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슬그머니 주인과 손님의 바뀌 치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SCM이 도입되기 전에 영업부서 일은 그냥 영업의 일이었다. 하지만 i2가 들고 온 SCM 이론과 시스템은 달랐다. 먼저 영업의 업무에서 SCM 업무를 두 가지로 분류해 떼어 놓았다. 수요계획(Demand Plan), 납기 관리(Demand Fulfillment)이다. SCM 시스템은 그래서 두 가지 모듈로 구성이 되어 있다. DP와 DF가 영업의 SCM 시스템이 되었고 영업 사원은 이제 이 두 시스템이 있어야 SCM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얼핏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기존에 하던 업무에 멋진 이름과 시스템이 추가된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i2는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나갔다. 그리고 이 한 걸음은 그냥 한 걸음이 아니었다. 


수요계획은 기존의 삼성전자 영업부서에서 어떻게 세웠을까? 삼성 브랜드, 자가 브랜드라고 불리는 제품의 영업사원들은 직접 고객을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대부분 국내의 큰 대리점, 해외는 삼성전자의 해외 법인을 통해 수요를 집계하고 논의하며 조정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수요를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매출이 삼성 브랜드보다 컸던 OEM, 그러니까 고객사 브랜드를 판매하는 쪽은 어땠을까? 여기는 더했다. 오로지 고객사 구매팀이 주는 수요에 충실하게 움직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i2는 SCM 이론 중에서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채찍 효과"를 예를 들면서 시스템 구매자들을 압박했다. 채찍은 손 끝에서 작게 움직이지만 채찍의 끝에서는 큰 파도가 된다는 것이 채찍 효과이다. 영업에서 계획을 조금만 잘못 짜도 생산이나 구매 부서에 가는 잘못됨의 크기가 커진다는 무시무시한 이론이다. 전자 산업은 수요의 변동이 매우 심하다. 그리고 삼성전자처럼 규모가 큰 경우에는 변동이 주는 파동과 아픔도 크고 깊다. 당시 많은 이들이 "채찍 효과"에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채찍을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게 맞을까? 이에 대한 해답으로 i2는 "통계적 수요 예측"이라는 답을 제시했다. 그리고 수요계획 시스템에 이 통계적 모델을 탑재했다. 그러니까 영업 사원은 이제부터 영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기존에 하던 업무 말고도 통계 모델을 잘 사용해서 "수요 예측"도 잘해야 SCM을 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i2가 내디딘 한 걸음이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많은 회사들이 통계적 수요 예측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도입해 보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 "통계적 수요예측"을 폐기해 버렸다. 애초에 "수요 예측"이라는 것이 기존의 "수요 관리" 업무와 잘 맞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예측"의 특성상 통계 모델로 추론한다고 정확하게 나오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영역이 생기면서 다시 신의 영역을 대체하려는 도전이 보인다. 그러니까 AI를 통해서 수요 "예측"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산업이나 회사의 특성상 적절하게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AI는 과거에 있었던 변수에 의해 미래를 추론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미래는 항상 새로운 변수가 작용한다. 예를 들면 코로나19나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처럼.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변수가 지배적이 되면 AI의 예측은 정확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만든 새로운 조류는 가끔 희망의 한계치를 초과하는 경향이 있다. i2의 SCM이 한 때 그랬던 것처럼 AI도 다시 한번 자신 있게 SCM "수요 예측"을 광고한다. AI는 부디 이번에 좋은 결과가 많이 나와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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