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 그거 시스템 이름 아니야?
SCM과 SCM 시스템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를 들어 ERP라고 한다면 ERP System이라고 보아도 차이가 없다. 전사적 자원 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이라는 이름 자체에 이미 시스템의 기능과도 같은 역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ERP 시스템이 없이는 회사의 자원(Resource), 그러니까 전사 Data를 관리하기가 불가능하다.
MES나 WMS는 어떤가? 이미 이름에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MES는 공장의 실행 업무를 지원하는 시스템(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이고, WMS는 창고를 관리하는 시스템(Warehouse Management System)이다.
그렇다면 SCM도 SCM System과 동일한 의미로 쓰일 수 있을까?
SCM과 SCM System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SCM은 System이 본격적으로 기업에 적용되기 이전부터 이론적으로 발전해 왔다. SCM은 앞의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업의 기존 질서(가치사슬)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공급사슬)를 요구하는 혁신이다. SCM은 가치 사슬 내에서 별도로 존재했던 구매와 생산 그리고 영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하나로 묶고 SCM이라는 조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이름으로만 떠돌던 SCM이 소문이나 유령이 아니라 실체로 나타난 것은 90년대 들어서이다. 90년대 IT의 발전과 더불어 SCM System이 등장하고,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SCM System을 도입하면서 SCM을 경험하게 되었다. 특히 인도인 2명이 설립해서 i2(Indian 2명)라는 이름을 가진 업체의 SCM Solution Package가 유명했다. 이 인도인 2명이 만든 SCM System이 당시 삼성전자에 제대로 들어맞았다.
당시 삼성전자의 경영진은 SCM이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혁신임을 간파했다. 이제 막 본격적인 글로벌 삼성전자로 도약하기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본격화된 세계화 물결에 삼성전자는 제대로 올라타기로 작정했다.
90년대 초반 삼성은 이미 신경영으로 혁신의 불을 지폈다. 하지만 모든 혁신이 그러하듯이 리더가 앞장을 선다고 모두가 리더의 뜻을 따라 동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삼성의 혁신은 경영진이 보기에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삼성전자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미 Dell과 같이 혁신을 선도하는 고객사들은 더욱 강력한 SCM을 요구하고 있었다. 대만, 일본, 한국의 여러 업체에게서 모니터를 납품받던 Dell Computer사는 SCM을 가장 잘하는 업체 한 곳으로 몰아준다는 전략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고객사를 잃느냐, 아니면 그 고객사의 모든 공급을 다 가져가느냐, All or Nothing에 직면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선 90년대 후반, 삼성은 SCM을 불쏘시개 삼아 글로벌 삼성전자를 혁신의 도가니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원들을 혁신으로 이끄는 것은 막연한 구호나 이론적 설명이 아니다.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동반될 때 혁신은 직원들의 머릿속에 구체화된 미래로 다가온다. 그리고 혁신적인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사용하는 혁신 조직이 만들어지고 운영될 때 미래는 현재가 된다.
당시 삼성전자는 혁신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혁신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경영진과 혁신 프로세스 그리고 조직 구상까지. i2의 SCM System은 삼성전자 SCM 혁신의 마지막 퍼즐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