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SCM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SCM이란 말이 역사 상 처음 나온 것이 1982년도라고 한다. 당시 케이트 올리버(Keith Oliver)라는 사람이 인터뷰 때 최초의 SCM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급사슬 관리(SCM)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공급사슬의 운영을 계획, 실행, 제어하는 프로세스이다. 공급사슬 관리는 원자재, 재공·재고, 완제품의 원산지에서 소비지로 이르는 모든 운송과정과, 중간과정으로서의 저장 활동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이 정의를 기업의 가치 사슬(Value Chain)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 원자재: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재를 구매하는 활동, 간단히 구매.
- 재공: 재공은 공장에서 생산 중인 물건이다. 생산의 영역이다.
- 재고: 생산 활동이 끝나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물건이다. 창고관리는 물류의 영역이다.
- 운송: 원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운송 역시 수송이라는 물류의 영역이다.
- 저장: 수송 중간에 저장 활동은 창고에 보관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역시 물류이다.
가치 사슬 관점에서 보자면 "공급사슬(Supply Chain)"은 구매와 생산 그리고 물류의 영역이다. 그런데 "공급사슬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는 구매/생산/물류를 관리 즉, 계획하고 실행하며 제어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사실 실행은 구매 부서에서 구매하고 생산 부서에서 생산하며 물류 부서에서 보관하고 수송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계획과 제어이다.
원자재를 얼마만큼 구매할지를 계획하는 것은 생산 부서의 생산 계획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제품을 생산할지를 계획하는 것은 영업 부서의 판매 계획이 있어야 가능하다. 여기까지는 계획(Planning)이라는 관리(Management)의 영역이다. 그리고 계획의 영역에 들어서자 드디어 "영업"부서가 우리의 가치 사슬(Value Chain)에 들어오게 되었다.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제어의 영역이다. SCM이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것도 바로 이 제어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SCM을 잘한다는 것은 바로 제어를 잘한다는 의미와도 대체로 같다.
그리고 제어는 주로 창고와 관련된 즉 물류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제어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창고 관리의 주인이 둘 이상이기 때문이다.
먼저 원자재를 보자. 구매 부서의 경우 생산 계획이 1차 기준이 된다. 생산 계획에 맞추어 원자재 창고에 원자재를 구매해서 보관한다. A라는 원자재가 100개가 필요하다고 하면 A-100을 구매해서 생산이 원하는 날짜(구매 계획: A-100-날짜)에 맞춰 창고에 보관해 주면 일이 끝난다.
잠깐, 그런데 문제는 <A-100-날짜> 이렇게 구성된 구매 계획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제품-수량-일자>로 구성된 이 계획이라는 녀석이 항상 변하는 생물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100개를 원했던 생산계획이 갑자기 200개로 바뀌면? 날짜를 한 달 후에 필요했다고 했다가 다음 주에 필요하다고 바뀌면? 더 심각한 것은 제품이 바뀔 수도 있다. A가 아니라 B가 필요하다고 바뀌면?
이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서 구매 부서는 어떤 일을 할까?
먼저 생산 계획이 춤을 추는 만큼 더 여유분을 창고에 보관하고 싶어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계획 대비해서 필요한 것 이상을 창고에 쌓아두는 것, 바로 재고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더 정확한 이름을 붙이면 "(원) 자재 재고"가 된다.
자재 재고를 얼마나 쌓아두어야 될까? 이것은 구매 부서에서 결정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니면 생산 부서에서 결정해야 할까? 공장에 있는 제품 창고 역시 얼굴만 바뀔 뿐, 동일한 문제에 직면한다. 이번에는 자재 재고가 아니라 제품 재고로 이름이 바뀐다.
판매계획을 기준으로 해서 생산 계획을 짜서 창고에 물건을 쌓아 놓기만 하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변덕스러운 마녀의 비위를 맞추려면 적정한 양의 제품 재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제품 재고를 얼마나 쌓아 두어야 하나? 생산이 정하나 아니면 영업이 정하나?
바로 이것이 제어(Control)의 문제이다. 가치 사슬에서 두 개 이상의 부서가 모여 제어를 해야 하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회사에서 두 개 이상의 부서가 만나면 물리학이 적용된다.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왜 충돌이 발생할까? 재고가 빠른 시일 안에 없어진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재고가 아예 없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창고에 남아 있는 경우다. 이런 재고를 악성 재고라고 부른다. 악성 재고는 누구의 책임일까? 원자재이건 제품이건 재고가 많으면 회사의 손실이 커진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구매인가? 생산인가? 영업인가?
악성 재고도 문제지만 재고 부족도 문제이다. 원자재가 없어서 제품을 만들지 못하고 제품이 없어서 판매를 하지 못한다. 부족(Shortage)으로 인해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회사의 매출이 하락한다. 누구의 책임일까?
누구의 책임인지를 놓고 사사건건 구매와 생산 그리고 생산과 영업이 싸움판을 벌인다. 회사 전체를 바라보는 사장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매번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고 단죄해 보아야 좋을 것이 없다. 악성 재고가 많으면 결국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 제품이 없어 못 파는 것도 결국 사장의 문제가 된다. 사장의 심정을 과연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들은 자기 책임만 1차적으로 면하는 것이 급선무처럼 보인다.
구매-생산-판매 등 기존의 가치 사슬(Value Chain) 체계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결국 사장은 결단을 내린다. 두 개 이상의 부서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바로 가치 사슬, 즉 Value Chain에서 공급 사슬, 즉 Supply Chain으로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조직이 제어(Control)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에서는 특히 생산 부서와 판매 부서 간 이해 충돌이 심했다. 그래서 생산 계획을 담당하는 담당자 일부 직원과 영업에서 계획을 담당하는 일부 직원을 결합해서 제어를 맡겼다. 그래서 이름도 처음에는 Command Center라고 지었다. 이후 이름이 GOC(Global Operation Center)로 바뀌어 더 유명해졌지만.
SCM은 결국 구매-생산-판매의 계획과 실행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역할을 맡기 위해서 GOC와 같은 SCM 조직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조직은 구매나 생산 혹은 판매 부서의 이익(회사의 부분만을 위한 최적화)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이익(전체 최적화)을 추구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회사에 따라서 개발(R&D)의 역할이 클 수도 있다. 특히 신제품 출시와 관련해서 개발 계획이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 SCM은 개발과도 긴밀한 협력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어떤 회사는 마케팅이 역할을 크게 할 수도 있다. 유통업의 경우를 보면 마케팅이 프로모션을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SCM 조직은 마케팅 부서와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계획하고 실행하며 제어해야 한다.
글로벌 운영이 많은 회사라면 글로벌 수송과 창고 관리가 중요한 관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SCM의 범위라는 결론으로 가면 결국 회사의 핵심인 구매-생산-판매라는 핵심 공급사슬(Supply Chain)을 관리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신제품 개발도 결국 해당되는 대량으로 생산이 가능한 계획 시점의 문제로 귀결된다. 마케팅의 프로모션도 궁극적으로는 판매계획의 문제이다. 전 세계에 물건이 얼마나 배송되고 있고 전 세계 창고에 얼마나 물건이 있는지 관리하는 것도 결국 판매의 납기 계획 문제로 귀결된다.
SCM은 범위를 무한정 늘리기보다 회사의 특성에 맞게 개발이나 마케팅 혹은 물류 부서와 협력 체계를 갖추면 될 일이다. SCM의 범위는 구매, 생산 그리고 판매의 계획과 실행 그리고 제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