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B부장은 프로젝트를 어떻게 망하게 하였나?
B부장은 이번에 맡게 된 SCM 프로젝트에 자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B부장은 SCM의 이론과 사례를 충분히 공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 사례(Best Practice)를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팀원이나 컨설턴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잘 추진해 주는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B부장은 타사 사례 중 특히 탑다운(Top-Down: 하향식. 경영진의 결정이 직원들에게 내려가는 업무 형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타사의 성공이 바로 이 방식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B부장은 프로젝트 3개월 기간 동안 Top이라고 할 수 있는 경영진 설득에 시간을 대부분 할애했다. 현업들 과의 인터뷰는 1~2회로 끝냈다.
경영진 보고가 중요했기 때문에 경영진과의 회의를 잡는데 집중했다. 당연히 경영진을 위한 보고서가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보고서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컨설턴트들은 자신의 입맛에 딱 들어 맞출 때까지 보고서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B부장은 컨설팅 사의 깔끔한 보고서 양식(Template)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경영진이 좋아하는 딱 그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신이 정한 방침에 맞추어 방대한 자료 분석으로 뒷받침을 해주니 더없이 흡족했다.
중요한 보고는 최소 2주일 전부터 준비를 해서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보고가 끝난 후 경영진의 피드백을 받으면 다시 수정을 해서 재보고를 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어느덧 정해진 3개월이 훌쩍 지나게 되었다. 아무리 경영진 보고가 중요하다고 해도 프로젝트에는 최소한으로 나와야 하는 산출물이라는 것이 있다. B부장과 컨설턴트들은 이제 막 현황 분석을 끝내고 경영진에게 개선 방향을 보고하는 데까지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앞으로의 개선 모습, 즉 To-Be를 그릴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해진 것이다.
하지만 B부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돈과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B부장은 프로젝트 팀 임원을 설득해 프로젝트 기간을 5개월로 연장했다. 2개월의 시간이 더 주어진 것이다. 컨설턴트들도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그만큼 컨설팅 회사의 매출이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스템 구축 일정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시스템 개발 일정이 짧아지는 것이 다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B부장은 컨설팅에 만족했다.
자 이제 추가로 남겨진 2개월의 시간 동안 To-Be를 그려야 한다. 그런데 우선 시간은 확보했으니 지난주에 보고한 경영진 보고서를 다시 검토했다. 초지일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뜻이니까 말이다.
경영진만 설득하면 시스템이 나중에 어떻게 만들어지든 현업 팀원들은 시스템을 쓰게 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2개월을 연장했지만 경영진 보고서를 만들고 또 만드는 일에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어느덧 프로젝트 종료를 2주 남짓 남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연장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B부장과 컨설턴트들은 부랴부랴 To-Be 산출물을 만들었다. 현업과 협의하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업 검증은 생략했다. 어차피 프로젝트 최종 보고는 경영진에게 하는 것이니 최종 보고서만 잘 만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 프로젝트 과연 성공인 것일까?
B부장에게 물어보자.
“아, 네 전무님 보고 아주 잘 끝났습니다. 전무님이 만족하다 하셨고요. 남은 시스템 구축도 잘 진행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점에서 전무님이 만족한다 하셨나요?
“아, 네 전무님은 특히 제가 강조했던 선진사례가 적용될 것이라는 점을 좋아하셨습니다. 지금은 영업사원들이 1달에 한 번만 계획을 짜지만 앞으로는 매주 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영업 사원들이 짜는 수요계획의 정확도가…음 저희 컨설턴트가 분석한 내용을 보니까 30% 이상 올라갑니다. 그러면 회사 입장에서 비용이..음 연간 200억 이상 올라가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 맞다! 그리고 영업 사원들이 지금은 아무런 시스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수요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시스템에서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요계획을 짜게 될 것입니다. 통계 모델을 통해 나온 수요 계획 데이터가 활용되는 거죠. 통계 모델 만들 때 우리 컨설턴트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전무님은 특히 여기에 기대가 크셨습니다. 전무님도 영업사원들이 제대로 계획을 짜는 것인지에 대해 늘 의구심이 있으셨거든요. 생산팀 상무님도 영업이 제대로 일을 못해서 항상 생산팀이 고생이라는 생각이셨습니다. 시스템 도입으로 생산팀도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B 부장은 프로젝트 성공에 털끝만 한 의심도 없었다.
이번에는 컨설턴트들에게도 물어보았다. 프로젝트 성공적으로 끝났나요?
“네, 고객이 아주 만족했습니다. 다음 프로젝트도 저희와 함께 할 것을 약속했고요.”
이번에도 좀 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어떤 점에서 고객이 만족한다 하셨나요?
“뭐, 일단 보고서 잘 만들어 주니까 좋아하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보고서 만들어 주고, 결과적으로 경영진 보고가 무리 없이 잘 끝나게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저희 회사 방법론에 있는 양식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다른 회사에서 많이 통했던 것이거든요. 경영진들은 어디 가나 다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할 때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를 말해 드리면, 이 프로젝트 이후 이어진 시스템 개발은 당초 예정보다 세 달이 지연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시스템을 오픈한 이후에 발생했다.
시스템의 사용자들인 현업 사원들이 시스템 사용을 거부한 것이다.
“시스템이 우리가 하는 업무와 맞지가 않습니다” 주된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 외에도 시스템이 너무 느린 문제, 필요한 기능이 없는 문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탑다운으로 누르면 된다고 생각한 B부장은 경영진을 만나서 도와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직원들에게서 시스템의 문제점을 전해 들은 경영진은 바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B부장에게 오히려 부탁을 했다. 현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그 시스템 제발 쓰지 않으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