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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을하 Feb 05. 2020

오늘, 하루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권진아(위로) ]



    새로 등록한 학원에서의 첫날이었습니다. 공부는 즐거웠지만, 자꾸만 마음이 답답하며 생각이 아득해지곤 하더군요. 왜 이렇게 답답한가 같은 질문을 수차례 던져 보았지만, 벽에 부딪혀 고꾸라지는 구겨진 물음표들만이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몇 번을 시도해도 똑같아서,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답답함을 꾸역꾸역 삼켜내며 하루를 끝마쳐갔습니다 끝마치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루가 너무도 길게 느껴졌던 까닭은,  하루가 이토록 버거웠던  이유는 하루를 살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발걸음은 종종 여러 시간을 거닐곤 합니다.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오늘도 어김없을뿐더러, 어김과 달리 너무도 멀리 걸어가버렸나 봅니다. 오늘의 나는 오늘이 아닌, 시험이 끝난 자리에 서서 오늘의 순간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왜 아직도 거기 있냐는 듯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이죠.



    그래요. 오늘을 사는데 쏟아야 할 힘으로 자꾸만 모든 날을 한 번에 살아 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이 계속해서 이 앞에 풍파만 가득할 것 같게 하여 두려움만 늘어났던 것이었습니다. 이따금씩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고난들이 고개를 저어봐도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도 낱낱이 드러나며 그때의 나날 가운데에 머금었던 서늘함이 여전히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걸어온 지난날들이 이 순간만큼은 디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되려 그 생각에 주장을 실어주는 것만 같아, 배신감만 한가득이었습니다. 내가 내게 배신감을 느끼면 어쩔 일인가 하며 나를 향해 주저 없이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마치 완벽한 타인의 일인 것 마냥 말이지요. 덧없는 싸움에 지친 나머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며 밤낮 가릴 새 없이 생각을 없애기 위해 나 자신과 내가 싸웠던 날도 한가득이었습니다. 그 모든 싸움의 근원지가 앞선 깨우침으로부터만 비롯된 것은 아닐 테지만, 이도 그 원인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시선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 하며, 내 멋대로 제어하려 했습니다. 상상해낸 훗날의 풍파를 오늘의 부족함으로 이겨내려 했기에 생각 속에서의 패배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그 날은 아직 오지도 않았고,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가 결코 같을 수 없을 듯이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날에 서 있는 나에 대해 그 무엇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미리 짐작하여 앞선 한계를 짓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불안은 모든 어리석음을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창작하였으며, 삶에 닥칠 그 모든 풍파를 지금 당장에 다 이기려 하였습니다. 무모함이 아닌, 그냥 정말 겁쟁이의 눈 가리고 아웅인 격이었던 것이지요.




    다른 이들이 이런 나를 보며 모자라다며 가리킬지언정, 이제는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비롯될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때론, 어쩌면 자주.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과는 별개로, 나조차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모든 것이 미워지곤 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그 문장에 어쩌면 조금 더 마음이 돌아갔을지도 모를 마음이겠습니다. 그렇기에 맹목적인 타인 편이길 고집하는 척했던 모순된 지난 나로부터 조금은 거리를 두고 균형을 잡아, 보다 건강한 스스로를 향한 헤아림을 조금씩 늘려갈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더불어 여유 또한 한 평씩 일지언정 늘어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요. 힘을 내어 살아 낸다는 게 아직은 참으로 어설퍼서,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나 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불완전한 내 모습을 보며 조금은 외로움을 덜어 보기로 합니다. 부족함만을 묵상하며 좌절해 있는 것이 아닌, 이제부터라도 오늘의 힘으로 모든 날을 살아 내려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오늘의 힘으로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에 대해 보다 관심을 기울여 익혀가길 주저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삶 속에서 고난이라는 이름을 지닌 풍파는 온 힘을 다해 고개를 저어 거부해 봐도 오고야 말 것입니다. 중2 여름을 기점으로, 이제껏 모든 폭풍이 어김없이 매년 몰아 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피해 가려할수록 더 깊이 잠기기만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망연히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풍파는 올 해에도 기어이 찾아오겠지만, 한 차례의 폭풍우를 지나쳐 보낸 뒤 가을을 지나 겨우내 몸을 말리며 한결 더 깊은 숨을 쉬어낼 수 있게 되었던 지난날의 내가 그러하였듯. 지나간 그 자리에 지쳐 있을지언정, 더 많은 빛을 품어 나누며 맡겨진 소명을 보다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진 않았을 것입니다. 두 차례의 시험 끝에 지난날의 나란 사람이 아득할 정도로 낯섦만 가득했던 지난해의 내가 그러하였듯이, 변하여 새로 맞이하게 된 나와 친해지는 시간 가운데에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부지런히 마음을 넓혀 왔으리라 믿습니다. ( 물론 한참 남았지만 말입니다. )


    그렇기에, 예전처럼 늘 휩쓸리기만 하리란 법은 없을 것입니다. 온전히 주어진 오늘 속에서 헤엄을 치다가, 예상치 못하게 거센 물걸이 몰아친다면 몰아침을 당하렵니다. 이제는 어줍짠 게 흐름을 거슬러 도망치려다 되려 더 망가지며 주위에 피해가 되는 일은 그만두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만두겠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며 손 놓는 것이 아닌, 되든 안 되든 보다 성장하기를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내 삶 가운데에 예비된 그 모든 폭풍우를 완전히 몰아낼 순 없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분명한 것들 또한 같이 있습니다.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듯 한 문장이지만, 그 문장 가운데에 이뤄지는 사랑들은 결코 당연할 수 없는 감사인. 늘 주님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보다도 우리를 가장 좋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 또한 말이지요. 그렇기에 오늘의 내게는 아득해 보이는 훗날의 거셈이라 하여도, 이를 당면한 그 날의 내게는 능히 이겨낼 힘이 갖춰져 있을 것임을 주께서 그 모든 힘을 이미 우리의 전 생애에 부어 두셨음을 믿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이 부어주시는 힘으로 나뿐만 아닌 주가 허락하신 소중한 사람들도 능히 지켜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인연들 가운데에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함께를 지키는 벗들에게 고마움을

    모두와 함께 해 주시는 주님께 늘 감사드리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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