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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을하 Mar 07. 2020

괜찮은 줄 알았는데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위로(한기란) ]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신천지가 그랬던 것 같다. 



    요즘 신천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게 된다. 이에 대해 들을 때마다 애써 고개를 돌리며, 그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그들을 만난 기간으로 친다면, 3~4개월 동안 벌어진 일이었고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기에 지나온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그때의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 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종이에 베인 상처에도 아픔을 느끼듯이, 상처는 상처였구나,라고. 




    고3 친구와 카페에서 마지막 수능 공부를 하고 있던 때였다. 그 무렵, 3개월 기간 동안 친구였던 사람을 겪으며, 사람에 대한 기대함에 있어서 많은 것을 내려놓았을 때였다. 사람은 오래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어떤 여성 분이 다가와, 심리상담학과라 말하며 대학교 과제로 인해, 나와 친구에게 심리 테스트를 해준다고 하더라. 애니어그램이었던 것 같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경계심이 없던 그때의 친구와 나는, 심지어 그런 테스트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성격들이라 그저 감사하다고 말하며, 순순히 응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이름, 연락처, 이메일 주소 등을 적으면 그 테스트 결과에 대해 설명해주겠다 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나 했다. 한번 카페 매장 직원분께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그 사람을 쫓아내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밖에 안 나올 정도로, 나랑 친구는 밖에 나가서 그 사람에게 연락처와 이름을 주고 심지어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인생 참 편하게 살았다는 말에 마냥 고개를 젓고 있지는 못하겠다 싶었다.



    그 사람은 우리 둘에게 수능 기프티콘을 보내곤, 수능 끝나고 연락하라고 했다. 설명해주겠다며. 수능이 끝나고 한차례의 입시 폭풍이 지나간 후에 우리 둘은 그 사람에게 연락했다. 심지어 친구 한 명을 더 데리고 갔다.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우리들은 세 명이서 친했는데, 이렇게 우리 둘만 재미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집순이인 친구를 설득에 설득을 해서 데려갔다. 그리고 각자의 심리테스트의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정말 맞다고, 어떻게 이렇게 잘 맞냐고 놀라며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다음에 또 만나자고, 그때 다른 심리 테스트 같은 것을 해주겠다고. 별 의심 없이 다음 기약을 잡았다. 



    다음 만남 때, 그 사람에게 마카롱을 만들어서 고맙다고 선물하고, 친구랑 돈을 나눠서 핸드크림을 사서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만났을 때 했던 심리 테스트는 집, 나무, 새 등등을 그리는 것이었다. 학문이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용도는 천차만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었다. 그때 함께 하던 친구는 정신적으로 건강했으며, 심적으로 상처 입은 상태였던 내 곁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던 고마운 친구였다. 그에 비해 나는 심리 상담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상태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그린 그림들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겠다. 어느 정도의 심리 공부를 한 사람이었더라면, 어느 쪽을 공략해야 잘 먹힐지 한눈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로 그 사람은 심층적인 대화를 하려면, 함께 모여서는 힘들 수 있다고, 따로따로 약속을 잡자고 했다. 처음에는 우리들은 괜찮다고, 서로에게 거리낄 것은 딱히 없는 사이라고 함께 만나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 사람은 단호하게 1:1 만남을 선호했다. 그 후로 혼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심리 상담 쪽 공부를 하고 있으며 자기에게 있어서는 선배와도 같은 은사님 한 분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도움을 나누는 것이 내게 있어서 큰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듯, 심리계 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되게 호의적이며 사람들이 좋은가보다 했다. 심지어 자신과 은사님 둘 다 기독교인이라 하였다. 역시 교회를 다니셨구나 하며, 흔쾌히 감사로 만나겠다 했고, 그의 파트너를 만나게 되었다. 



    흔히 신천지의 수법은 2인 1조로 다닌다고 한다. 한 사람은 바람잡이, 또 한 사람은 그들의 교리를 주입하는 사람. 이전에 만났던 사람은 바람 잡이었던 것이었다, 이는 나중이 되어서야 깨달았지만. 그 후로 바람 잡이었던 사람은 사라지고, 나는 그의 은사님인 다른 사람과 단독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즈음은 재수를 막 시작하게 되었던 때였다. 학원 스케줄이 있던 상황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일주일에 네 번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세 번으로 합의 보고 일주일 가량 약속을 이어갔던 것 같다.



    그 사람은 리더십 심리 상담을 하겠다고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롤모델을 설정하고 그 롤모델의 생애를 뒤따라가 보며, 보다 건강한 마음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했던 것 같다. 롤모델을 설정하는 데에 앞서, 나의 정체성을 묻더라. 신앙적으로 성숙을 배워가고 싶다는 마음이 깊었기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답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아마 그 사람은 잘 걸렸구나 했겠다 싶다.  곧바로 신천지의 교리로 방향성을 설정하고 들이미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을 테니까. 후에 알게 된 이야기이지만, 신천지의 교리는 4~5번까지는 일반 교회와 비슷하게 말하고, 그 이후부터는 교묘하게 성경 내용을 바꾸면서 전한다고 한다. 성경 구절을 수단 삼아 그들의 교리에 적용시켜 합리적인 내용인 것 마냥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렇게  1:1로 카페에 앉아서 한, 두 번 정도 그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무료로 상담받기가 죄송해서, 커피도 사드렸다. 참, 그때의 나를 무어라 불러 주어야 할지. 





    그러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게 된 건, 상담을 하는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지 말라고 했던 그의 말이었다. 2018년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의 표어는 ‘순종의 해’였고,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는 모든 부모의 행실이 매 순간 올바르기만 하실 수는 없지만, 부모님 말씀에 있어서는 순종하라 하셨다. 그 사람도 분명 교회를 다닌다고 하였는데, 부모님께 이를 알리지 말라니. 불현듯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내게 있어서 말씀보다 우선이 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생각을 했기에, 상담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부모님께서는 그 상담을 탐탁지 않아하셨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게 있어, 상담이 절실하다고 생각했기에,  부모님의 반응에 너무 무신경하지도, 과민하지도 않은 상태로 후에 그렇게 두어 번의 만남을 이어갔다.



    두 번째 만남을 마치고, 학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갑자기 문득 낌새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 당시에는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의심하는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별다른 점들에 대해 애써 의문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의문점에 대해 강한 압박감을 느꼈고, 그 아래 서서, 곧바로 고등부 때 담당이셨던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이러한 상담을 하고 있는데, 신천지일 수도 있느냐고 여쭈었다. 목사님께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교회 밖에서 교리 수업을 듣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셨다. 또한 지금은 공부하는 시기이기에, 신앙적으로 보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입시가 끝난 후에 행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더라. (뵐 때마다 정말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목사님이시다.)



    전화를 끊은 직후 학원에 올라가, 학원에 있는 컴퓨터로 신천지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신천지의 본 교회는 대구였다. 이전 사람이 물러난 이후 만난 그 사람은 교회에 가기 위해, 매주 대구에 내려가며, 그곳에서 중등부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서울이며 주위에도 교회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의 부모님도 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는데, 대구까지 내려가서 교회를 가야 하시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큼 그 교회가 그 사람에게 있어서 뜻깊은 곳인가 보다 했다. 한번 정 붙인 곳에는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인가 보다 했다. 그게 아니던 것이었다. 신천지였기에, 그래야만 했던 것이었다. 평일에는 이곳에서 포교 활동을 하고, 주말이 되면 내려가는.




    그 후로 손을 떨며 나머지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신천지 포교 활동에 대해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내게 일어난 이 상황들이 믿기지 않아서, 최대한 그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찾고 싶었지만, 왜 이제야 찾아본 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 했던 수법들과 하나같이 똑같았다. 대학생이나, 심리 센터에서 나왔으며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심리 상담을 해줘야만 자격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심리 상담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며 만남을 지속하고, 점점 그곳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다. 



    다시 돌아보며 깨닫게 된 것이지만, 신천지가 가장 주력으로 일삼는 것은 자신이 지정한 대상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람잡이 여성은 계속해서 내게 있어서 도움을 줄 유일한 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내 주위에 있는 관계들을 다 제치고, 자기 자신에게만, ‘자신에게만’ 의지하길 바랐다. 심지어 부모님도 뒤로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내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사람을 사랑하지만,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이를 되새겨야 할 일을 꼭 겪어야 했기에 의식적으로 내게 말해야 했다. 사람이 자기 자신 없이, 타인에게 자기를 다 맡기게 되면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지, 바로 직전의 관계를 통해 겪었기에. 그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참 친절한 사람이구나 하며, 그때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사람 관계에 있어 절친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떠나지 않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소중하고 또 평생 살아서 한번 만나 볼까 말까 한 정말 감사한 인연이다. 진정 위하는 관계라면 꼭 자기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 친구가 행복해지는 방향이라면, 이를 위해 함께 응원하며 곁을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의연함에 있어서는 많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며 그건 결코 쉽지 않은 걸음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지만, 이 또한 자기 자신을 잘 견디며 살아가는 것 또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그럼에도 해내야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부지런히 연습해 나아가야겠다.



    그들이 신천지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수많은 심증들을 찾은 후에 문자로 물었다. 신천지냐고. 끝까지 납득하지 않더라. 최종 확인을 하기 위해, 앞선 문자를 가족 중 한 명이 보낸 것이라며 문자를 하자, 집 앞으로 찾아오겠다 하였다. 이조차 신천지의 수법 중 하나였다. 가족으로부터 빼돌리는 것.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며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나에 비해서는 비교적 드물게 만났지만, 여전히 바람 잡이었던 사람과 연락하던 친구에게 연락을 걸어, 그가 신천지임을 알렸다. 그 친구도 더 이상 그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지만, 어딘가 서먹해진 우리 둘은 그 후로 좀처럼 연락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그에게는 여전히 고마움과 미안함을 많이 느낀다. 정말 좋은 친구였기에.) 집순이 었던 친구는 진즉에 귀찮다고 관두었다. 재수생 초기에 짧고 굵은 해프닝으로 끝났기에 다행이지, 만약 일주일에 3번씩이나 시간을 썼는데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더라면, 그 시간적 손해와 심리적 손상을 어떻게 감당해야 했을까 생각하면, 그냥 생각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다 싶다. 




    이처럼 사람의 불안정한 심리를 이용하는 신천지의 수법은 악랄하고 교묘하다. 사람들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부여잡고 뒤흔드는 행위를 보며, 좀처럼 지녀보지 못한 살기에서 비롯된 경멸의 감정들을 느끼게 되곤 한다. 어쩌면 그 상대의 가장 아픈 부분일 수도 있는 부분을 이용해, 이득을 위해 착취하는 모습. 신천지에 깊게 빠져든 사람들이 쉽사리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러한 부분도 클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심리적인 속박으로 옭아매었기 때문이라 조심스레 추측해 보는 바이다. 신천지에 몸을 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한 사람의 가정과 관계를 모두 파탄 내는 것이다. 함께를 강조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그 함께를 부수기에 여념이 없는 그런 모순. 


    이후로 한동안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는 것에 있어서 많은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다. 신천지가 그들 입맛대로 교묘하게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 성경이었기에, 신천지를 생각하게 하는 단어와 교회의 언어가 겹쳐 보일 때마다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곤 했었다. 타인이 내게 다가오는 것도, 무엇을 얻고자 내게 오는 것인지 그 저의를 끊임없이 파악하려 했었다. 감추고자 한다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를 돌이켜 보며 지금에 보다 더 선명히 느껴지는 감정들로 하여금 다시금 깨닫는다. 겪지 않고 지나 보낼 수 있는 상처는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담아 놓기만 해서는 그 무엇도 흘러가지 못한다는 것을.




    후에 다른 친구를 만나 이 이야기에 대해 나누는데, 자기도 돈을 내지 않으면, 조상님이 노하시고 부모님이 힘들어지신다는 말에, 7만 원가량을 내고 왔다고 하더라. 둘 다 이단한테 걸리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정작 서로가 그러고 있었다니. 친구는 친구네 하면서 머쓱하게 웃으며 반성했던 기억이 난다. 뒤이어 친구가 그러더라. 네가 신천지에 걸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너는 분명 좋은 건 나누려 했을 거고, 그럼 나도 네가 그러면 덩달아 함께 믿었을  거라고. 네 말에 웃네 우네 하며 장난스레 넘겼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니 정말 다행이다. 생각만 해도 그것만큼 힘겨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로 하여금 주위 친구들까지 위험해지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사람은 무조건 함께’에서, ‘사람은 혼자이지만 함께를 추구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문장으로 방향성을 재 설정한 이후에는 맹목적으로 사람의 그 모든 것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그 방향성을 다잡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께 여쭈며 나아가게 되었달까.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만약 내가 이전의 친구를 겪기 이전에 신천지를 만났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떻게 이렇게 착한 이들이 있지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의 내가 그랬으니까. 주위 친구들은 종종 사기당하기에 가장 쉬운 사람이 바로 너라며 제발 조심 좀 하라 했다. 여러 일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그런 가치관을 지니고 있음에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은 오래 보아야 하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이 일로 확실히 배우게 되더라.  이런 부분에 있어서 사람을 제대로 배우게 해 준 친구에게 고마워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 감사하지 않을 일은 없다. 




    많이 혼란스러운 시국 가운데에, 그 중심에 있는 신천지를 보며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간다. 가끔 헤아릴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면, 죄와 사람을 분리하려 부단히 노력한다. 나쁜 건 신천지라는 집단이지, 그에 종속당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사실 아직 이러한 사고를 자연스레 하는 것은 다소 많이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나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그렇게 기도하는 것뿐이다. 무사해주어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내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들이 사용했던 언어와 나의 언어가 어딘가 닮아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말을 잃게 된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이, 위한다는 말이 상대로 하여금 위협처럼 느끼게 할까 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괜찮다는 말이다. 많은 생각과 함께 정말 느린 걸음이어도 괜찮다고. 나의 걸음이 너무 빠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만 늦춰 주었으면 좋겠다면 혹은 잠시만 멈추라고 말한다면 고마운 조언이라고. 소중한 관계들을 온전히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 그 어떠한 조정도 그저 감사일 뿐이라고. 언제든지 마음 편히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진심은 언제나 소중한 것이기에 몇 번이고 돌이켜 생각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또한  사람은 오래 보아야 한다는 말에 깊게 공감하기에, 그 걸음이 늦어 어디론가 가버리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그 곁에, 그 자리에 서서 있으니. 누군가가 머물라 해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머물겠다고 다짐하여 머물고 있는 것이니. 가만히 지켜보다 정말 다 괜찮을 때, 그때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때가 되어서야 긴장을 풀어도 늦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을 소중히 아끼기에 드는 여러 생각들에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그렇게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 모든 소중함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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