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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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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을하 Mar 22. 2020

항해

with pleasure, with you.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The Ocean (블루램) ]




   소중한 사람과의 함께가 내게는 언제나 힘인데, 되려 당신에게는 부담이 될까 봐 매번 두렵습니다. 당신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인 것이 자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당신이 참된 스승 앞에 서고 싶은 그때의 마음들을 나도 함께 품고 있다고 하면 조금은 이 마음이 닿을 수 있을까요. 나의 존재가 그저 짐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내가 나여도 괜찮습니까. 내가 나인 게 괜찮지 않은 이 시간들의 나인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당신만 괜찮다면, 나는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라서 나부터 괜찮을 수 있도록, 더디지만, 노력하겠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내가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다듬어 나가겠습니다. 감히 부탁드리자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아픔이 되는 순간이 있다면, 기꺼이 표현해 주시겠습니까. 몇 번이고 달려가 사과하고 싶습니다. 보다 더 조심하고 맞춰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가 폐가 된다면 걸음을 돌려 떠나가야 함 또한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 곁이 좋다고 계속해서 머물면 그건 당신에게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기를 쓰고 노력해 보지만, 매번 오답인 시험지만 제출하고 맙니다.



    나로 인해 당신이 다치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내 존재가 당신에게 폐만 되는 것 같습니다. 폐가 되지 않겠다고 기를 쓰고 노력해도 그조차 당신에게 상처가 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곁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이 세상에 모든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내 안에 모든 모난 부분을 다 깎아 낸 다음이 되어서야 곁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난 내 곁에 있다가 당신이 아플까 걱정이 되어서요. 당신만큼은 안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만큼은, 부디. 내 마음이 보다 온전하여 당신에게 보다 아픔이 되지 않을 때까지 거리를 두는 것, 그게 당신 곁에 평생 머물고 싶은 내가 당신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허나 그조차 오답이었으며, 되려 당신께 아픔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람들의 어디까지가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인지, 도무지 노력해도 좀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알고 싶습니다. 감히, 실례를 무릅쓰고 하나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더 이상 나를 보고 싶지 않을 때, 나의 존재가 당신에게 있어 버거움이 될 때, 그만 멈춰달라고 말해 줄 수 있나요. 한없이 무지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실 수 있나요. 그걸 당신의 신호라고 보고, 그만 멈추겠습니다. 우리의 함께가 당신에게 힘이 든다는 것을 존중하겠습니다. 멈춰 서서 제자리에서 응원하겠습니다. 그전까지는 나는 계속해서 곁에서 걷겠습니다. 설령 언젠가 다시 그 마음을 돌이켜 그만 멈추길 그만 하길 바란다면, 그 또한 그렇게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다시 와도 괜찮다고.



    내가 나인 게 괜찮다면, 나는 몇 번이고 함께이겠습니다. 몇 번이고 그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몇 번이고 당신의 바다가 어떠한 상황이던 배를 뛰우고 싶습니다, 당신만 괜찮다면, 나는 언제나 괜찮습니다. 더 이상 함께일 수 없는 곳이야 말로,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서요. 설령 당신의 바다에서 몰아치는 파도에 같이 휩쓸리게 되더라도, 함께이기에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를 당신에게도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모든 나날은 언제나 순항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생을 살아가는 이상, 결코 쉽지 않음을 알지만요, 그렇기에 더더욱 두 손을 붙잡고 간절히 바라며 신께 기도를 드립니다.



    나는요, 당신과 꼭 함께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당신의 스승을 나도 함께 스승으로 모시고, 그 스승들께 안부를 전하러 가고 싶습니다. 그게 내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당신만 좋다면, 나는 언제든 좋습니다.

몇 번이고 함께 하겠습니다.

내가 말한 평생을, 당신은 지키지 못해도 괜찮아요.

할 수 있는데 까지 함께 걸어요, 그러다 힘이 들면 언제든 가도 괜찮아요.

다 괜찮습니다, 당신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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