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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을하 Feb 11. 2020

무심한 듯 묵직한

재수 학원 선생님과의 만남

 [19.8.23] 

“너 정말 열심히 했었어.”


무심코 뱉었을지 모를 그의 한마디가 애써 밟아왔던 발길들이 무색하리만치 마음을 헤집었다. 이제껏 괜찮다 자부했던, 애써 다독여왔던 아니 눌러왔던 모든 것들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오래간만에 뵙는데 덜컥 울면 낯부끄러울 까 봐, 그러나 울음을 참진 못해서 열심히 속으로 울었다. 조금은 놓고 울어도 되었을 텐데, 그렇게 고집을 부리며 겉으로는 울음을 참더니 결국 집에 와서 마음이 찢어지다 못해 온 몸이 내려앉는 것 마냥 울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 선명한 마음의 일렁임. 오랜 시간 외면해 왔던 내 마음의 민낯이겠지. 온통 너덜너덜한 채, 성한 구석이 없을 것만 같았다. 마치 마음이 머금을 수 있는 눈물의 양에는 한계가 있는데, 이를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울며, 차오르기만 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곪았던 것 같다, 곪아가는 줄도 모르고.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나임에도, 나일 수 없었던 순간들이. 내게 가장 솔직하다 못해 남에게도 투명했던 지난날의 나는 불사하고, 나에게조차 불투명한 나는 과연 나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마치 나라는 자아와 몸뚱이가 별개인 것만 같다. 원래 다른 이들이지만, 어쩌다 보니 한 몸에 있게 되어서 서로를 모름에도 함께 해야 한다는 이유로 동작하고 사고하는 그런, 어쩔 수 없음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분명 숨을 쉬고 있는데, 들이쉬고 내뱉고 있는데 속도 모르는 마음은 무식하게 답답하기만 하다. 마음만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어 왔는데, 결국 마음도 몸의 일부였으려나. 이렇게 ‘나’라는 사람으로서 사고하는 이는 이 세상에 결국 몸도 지니지 못한, 어디에도 머물 곳 없는 외톨이인가.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몰아치며, 스스로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외로움들을 조금씩 마주하는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오랜 침묵 속에서 홀로 묵언으로 외치며, 숨을 쉬는 시늉을 하며 살아갔다. 이렇게 살면 사는 거고, 또 죽으라 하면 죽는 거고란 심정으로 그 어떤 무력보다 격렬히 무력감을 느끼며 아무것도 하기 싫음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다 못해 생각하는 것마저 귀찮아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었다.

삼척 바다

그랬던 내게, 차오른 것들만 가득한 나머지 호수를 이루다 못해 바다가 되어버려 많은 것들이 빠지고 다시 나서지 못하는 마음을 지닌 내게, 떨어짐과 동시에 큰 파장을 일렁이다 못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한 문장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 무심한 듯 침묵했다. 하지만 사실, 조용히 그 말들을 하나라도 다칠까 염려되어 자음 하나하나, 모음 하나하나 온전히 배열하여 잘 싸서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러곤 집에 와서 고이 싸 두었던 그 말들을 조심스레 펼쳐 계속해서 꼭꼭 씹었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된 이후로, 씹는다는 것은 내게 살이 찔 걱정이 되는 염려에 지나지 않았는데 염려는커녕 그저 감사할 수 있는 식사는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파도의 가치

나조차 바라봐주지 못했던 지난 나의 노력들을 기억해주고, 내가 내던졌던 기억들과 땀방울들을 버리지 않고 고이 싸서 간직해두었다가 다시 내게 건네준 그의 한마디 덕택에 정말 많이 울 수 있었다. 어쩌면 그때 울었어야 했을 내 슬픔들이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씻겨져 내려갔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 전한 그 말이 아니었다면, 정말 긴긴 시간을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보내왔을 것 같다. 오히려 고마움을 평생 전해도 모자를 내게. 독하디 독한 말만을 수천번 뱉으며, 영영 나와 담쌓으며 살아갈 뻔했다.


사소한 일에도 곧잘 울던 나의 모습들을 지질하다며 정말 싫어했던 난데, 울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아무것도 막지 않고, 그저 느끼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내 삶에 당연하다 여겼던 많은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닌 하나님 은혜로 가능했던 것들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그 감정 그대로 느낄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더라. 비록 아직 감정을 터트리는 게 어색해서, 맘 편히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다 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울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더라.



그리고 내게 정말 고맙더라. 그 각박한 입시라는 시간 속에서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을 다해주어서. 양심을 얼리지 않고, 그 양심이 이끄는 대로 행하려고 노력해주어 정말 고맙다고. 그 선택들이 설령 지금의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더라도 주님이 주신 그 선함을 찾아 따라나서려 노력해주어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다시금 떠올리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많은 후회들이 남지만, 그럼에도 내가 견딜  있는 만큼의 후회만을 남기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며 나아가 주어 고맙다.



약속했으니, 더 이상 숨 쉬면 쉬는 것이고 멎으면 멎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은 금물이다. 무조건 사는 것이다, 그것도 열심히. 이 숨을 주께서 허락하신 그 순간까지, 일단 살자. 마음에 계속해서 불어 드는 글 쓰는 것에 대한 소망을 이제는 똑바로 바라보며 그 소망을 향해 걷자.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지 못하더라도, 늘 함께 하시며 가장 선하신 주께서 내게 맞는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주고 계시며 앞으로도 그렇게 함께 하실 것임을 믿고 담대히 내딛자. 한없이 부족하고 또 부족한 나이지만, 주께서 함께 하시기에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아멘 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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