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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야 살아갈 수 있고, 내가 쓴 글이 나뿐만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정작 나 자신에게 도움을 건네는 것부터 서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글을 쓸 줄 알려면, 먼저 내가 나의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나의 어떤 글에 힘과 따스함을 받는다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른 누군가를 위하는 글을 쓰고자 할 때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러 나설 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힐 때, 필연적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사랑을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고 배울 수밖에 없게 되더라. 역설적이게도 내가 나만을 사랑하고자 생각했을 땐 결코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내가 먼저 나를 다루는 일에 있어서 숙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자신을 알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저마다의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나를 알기 위해서는 멍하니 앉아 있는 것보단, 무작정일지언정, 일단 쓰러 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못나던 못하던 뭐든. 일단.
또한 나선 후에 알게 된 것인데 나는 마주한 상대와 비언어적인 요소의 도움이 없는 상태로 행하는 대화 즉, 이와 같이 글로만 이루어지는 소통에 있어서 완벽한 젬병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태로 대화하는 것은 마치, 망망대해를 맨발로 걸어 나가는 것과도 같았다. 마음을 마음 바깥으로 꺼내 놓는 일이, 그 마음에 언어를 입혀 표현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 줄이야.
말이 너무 많아서 번번이 두 손으로 입을 막아야 했던 사람이, 말이 나오지 않아서 양 팔과 손바닥을 접시 받치듯이 하고 어깨를 으쓱 거리는 시늉을 취하게 되다니. 머릿속에서 스스로를 말 많은 당사자라고 이해하고 있던 나는, 할 말이 없는 내 마음을 보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다그치기도 달래기도 해 봤지만 묵묵 부답일 뿐이었다.
말 없는 마음은 마치 백지와도 같았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듯하지만 흰색으로 가득 채워진 백지와 같이,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지만 동시에 침묵으로 답하고 있었다.
마음이 침묵을 언어로 번역해주지 않는 한 내가 그 말귀를 알아들을 일은 만무하였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봤지만, 내 마음은 내게 말이 없다. 이건 마치 백지 앞에 앉아서 백지가 말을 해주길 기다리는 것과도 같은 것만 같다.
내 마음이 내게 백지처럼 나오면, 나도 마음을 백지 대하듯 대하면 되는 것일 테다. 백지 위에 펜을 들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백지의 의의를 정의하듯, 나도 내 마음에 일단 펜부터 가져다 대보는 것이다. 뭐라도 일단 쓰다 보면, 지켜보다 아니다 싶은 내 마음이 나와서 자기가 직접 펜대를 쥐고 써 내려갈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은 마음 위에 그릴 줄 아는 게 점 같은 것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무수한 점을 찍다 보면 뭐라도 쓰여 있거나 그려져 있을 것이다. 그려진 게 마음에 안 들면, 다음, next.
다시 새 백지를 들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깜박이는 커서 앞에서, 눈만 깜박이다 노트북을 덮을 수도 있다는 각오로 글에 대한 발을 내디뎌 본다.
이런저런 부담감을 핑계로 계속해서 글쓰기를 뒤로 미뤘더니, 발전이나 정체는커녕 되려 퇴보한 듯한 글쓰기를, 글을 씀으로써 또 직면하게 되는 게 여간 쉽지 않지만, 그만큼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가기 위함인 것 같다.
물론 내게 있어서 내 마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나조차도 속 터질 정도로 답답한 심정이다. 씨게 속상하기도 하고, 내가 나한테 이렇게 타인처럼 굴면 어떡하자는 건가 싶어서. 또 속상한 건, 그렇게 글쓰기를 좋아했고 즐겨했던 나인데, 글쓰기로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것으로 닿게 되니, 이게 또 그렇게 싫다. 어렵고 부담되고, 이에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이 또 속상하고. 그렇다. 푸념이다. 이 부분은 빠르게 넘겨도 좋겠다.
아무리 속상해도,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내가 아닌 오늘 지금 내 상태가, 현재인 것이며 실재인 것이니까.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이런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싶다. 마냥 쉽진 않겠지만,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법을 익히고 싶다. 아무리 못나 보여도 나는 나니까. 이런 나라도 내가 나를 수용할 수 있어야,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 그리고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상대를 사랑하러 나선 길이 곧 나를 사랑해야 하는 길이라니. 이 모순이 내겐 여러 번 벅차게 눈물겹다. 어찌하여 삶은 사랑으로 사는가, 그 의미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잘 쓰지 못하건 않건, 다 괜찮다.
일단 쓰는 것, 이것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사랑합니다. 사랑하세요.
그렇게 살아갑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