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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모 Aug 26. 2022

배 아픔에 관한 고찰

배가 아프다. 배에 찬 음식을 먹는 날엔 늘 그러했다. 배에 찬 음식이라고 해서 '문자 그대로 찬 음식'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찬 음식은 돼지고기와 같은 몸을 차게 만드는 음식을 말한다. 이런 체질은 어릴 때부터 쭉 이어졌다. 배탈이 자주 났고 밤마다 엄마가 내 배를 문질러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퇴근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도 배가 아파 끙끙 거리는 자식의 배를 문질러 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배가 자주 아파서 우리 집엔 늘 매실 원액이 있었다. 결혼하여 분가한 후에도 집에는 매실 원액이 있다. 매실은 아픈 배를 완화해 주는 것뿐 아니라 배탈로 인해 지친 내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매실로 인해 배가 편안해지고 설쳤던 잠도 잘 수 있었다. 


그동안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어제 먹은 양곱창이 문제가 되었다. 명확히 말하면 양곱창뿐 아니라 기름기 있는 음식에 아이스크림, 커피, 라떼까지 먹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처남과 처남의 짝지가 부산 여행을 한다고 찾아와 부산로컬맛집을 소개해달라고 했고 나와 짝지는 부산 지인에게 소개받은 부산로컬맛집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먹은 기름기 가득한 양곱창, 맥주와 소주 그리고 집에서 2차 하겠다고, 술 깨겠다고 산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5종류(패밀리),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지막으로 손님 대접하겠다고 제조한 카누라떼까지 모든 게 내 배에는 좋지 않았던 듯하다.


(카누라떼는 투명 텀블러에 얼음을 넣고 카누와 설탕을 부어 섞어준 뒤, 컵에 부어둔 우유에 부어주면 완성된다. 카누와 설탕이 섞이며 거품이 되어 우유에 부으면 살살 섞이면서 맛있는 라떼가 된다. 그리고 얼음까지 넣어서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노는 중간 배가 약간의 신호를 보냈지만 무시했고 처남과 짝이 나간 뒤부터 내 배는 본격적으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약간 알딸딸한 상태로 화장실에 앉아있을 때의 기분은 마치 대장 내시경을 위해 약을 먹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몇 가지 단어로 대체하자면 '끊임없다, 힘들다. 피곤하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불과 일주일 정도 지났나? 다시 느껴보는 대장 내시경 약의 위력은 내게 고통을 주었지만 나는 긴 밤을 이용해 매실로 완화시키기로 했다.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 화장실을 벗어나 매실 한잔과 찬 물을 따라 마셨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신호가 왔을 때 화장실에 갔다 와서 피로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들었는데, 자다가도 한 두 번 깼다. 그때마다 매실을 마셔줘서 그런지 아침이 되었을 땐 피로로 일어나기가 힘들었을 뿐 몸은 지난 밤보다 훨씬 가뿐했다. 역시 매실의 힘이란 아픈 배도 잠잠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음을 다시 느꼈다.


매실 원액은 그냥 먹어도 좋고 시원하게 물에 타 마시거나 얼음을 동동 띄워 무더운 여름에 달달한 매실 주스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매실 덕분에 장 트러블이 자주 나는 나에게도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비록 어제 먹은 양곱창에 몸이 힘들었지만 이 기억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러했듯 나는 삼겹살을 먹을 것이며 양곱창도 먹을 것이고 커피는 매일 마실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커피 정도로는 내 배를 위협하지 못한다. 라떼만 빼고...


배 아픔은 여전히 내 인생에서 뗄 수 없는 고통이지만 배가 아프기에 매실에 대한 감사함을 가질 수 있었지 않을까. 무엇보다 매실 원액을 만들어주시던 할머니의 사랑(몇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할머니가 만든 매실 원액이 우리 집에 있다), 아픈 배를 문질러주시던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다양한 음식을 먹고 몸이 안 좋아지기도 배가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먹을거리를 크게 가릴 생각이 없다. 세상에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데 맛있는 거 못 먹으면 어떻게 살까. 다만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안 좋아지고 먹을거리도 가려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눈물이 나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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