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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nker Jan 06. 2020

다들 이렇게 사나요?

CHAPTER.3

집이 없는 상태로의 6년간의 기록.
내가 집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내가 히피가 된 이야기.
히피에세이를 씁니다.
Another chapter to our story.
챈커(CHAENKER)입니다.



세상에는 두부류의 사람이 있다.

커피를 타는 사람과 그 커피를 마시는 사람.

아쉽게도 나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보다는 타는 사람에 가깝다.


카악- 퉤-


누우런 가래침을 뱉어 진갈색 믹스커피에 휘휘저어 녹여버렸다. 물론! 상상 속에서.

하지만 현실에서는 “차장님- 여기 커피…! 팀장님은 둘 둘 하나 맞으시죠? 더 필요한건 없으세요?”

나는 겉바속촉, 겉은 바로 대령하는 듯이 보이지만 속은 촉촉이 상사에 대한 분노로 젖어 들고 있는 사람이다. 참 사는 것이 치사하다. 물론 앞에서 ‘알아서 타 드세요’ 말 한마디 못하면서 키보드를 쳐대고 있는 나도 치사하고. 그래도 이렇게 버텨야 평화로운 회사생활이 가능하니까. 하- 언제부터 삶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 버티는 것으로 변했을까. ‘존버’라는 말은 '존나버틴다' 를 의미 한단다. 이런 말이 생성 될 정도로 다들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존나게 힘들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한국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존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처럼 살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닥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뭐랄까 ‘이곳으로부터 도망쳐서 좋겠다.’와 같은 느낌이랄까. 꼭 내가 도망자라도 된 것만 같았다. 덕분에 요 며칠 전부터  내가 빈껍데기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것들이 잡을 수없는 신기루 같기도 하고 말이다. 영어를 못했고, 돈도 없었다. 가진 것도 모은 것도 베푼 것도 그래서 받을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할 수없는 존재가 되지 못했고,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떠났다. 사실은 맞다, 나는 도망친 것이 맞았다.  

오늘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건, 내가 히피가 되고자 했던 이유이다. 그리고 내가 떠나고 싶었던 이유는 하나의 말에서부터 시작 된다. 나는 이 말을 한 두 번들은 것이 아니며, 한사람에게만 들은 것도 아니다.

다들 이렇게 살아


나는 이 말처럼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가가 궁금했으며, 정말 내가 봐온 사람들은 그렇게 힘겨운 내적싸움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거주지를 두지 않고 바람과 같이 떠돌며 어딘가의 일원으로 남지않겠다고 결심했다. 스물두 살, 모 기업에서 대표 비서로 1년간 근무했다. 근무 할 시절 마음속으로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산다며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만을 채찍질 하곤 했는데, 그러다 참지 못해 병에 걸려버렸다. 하루는 코끝이 시렵다못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던 한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우리 부서 팀장과 식사를 하며 술잔을 기울였고, 타부서 팀장이 몇 시간이 지나 합석했다. 그 팀장은 나를 굉장히 싫어했었는데, 그 덕에 나도 책잡힐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했다. 아침과 저녁 인사 외엔 말을 따로 하지 않았고, 탕비실에 들어오면, 나는 나가고 내 근처에 식판을 들고 앉으면, 밥을 끄적이다 무의미한 '맛있게 드세요' 한마디를 남긴 채 일어섰다. 그렇게 나는 나를 싫어하는 높은 직위의 사람을 대립 할 힘이 없어 억지로 피해 다녔다.

그날도 그 자리에 그분이 오신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취한 척 집에 갔을 텐데. 올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오 분도 안 되어 문을 열고 들어오니, 갑자기 나가기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밥집에서 나와서 자리를 옮긴지 30분채 되지않아 내가 지금 나간다면 ‘너 싫음!’ 밖에 되지 않는다.

또 다시 익숙한 듯 억지미소를 자연스레 지으며, 그저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치는 정도의 역할로 술자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병의 술이 비워졌다. 타부서 팀장의 눈길이 싸늘하게 나로 향하더니 피식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너가 싫어"

나는 팀장을 올려도 볼 수 없는 한없이 작은 신입이기에 그저 웃으며 팀장의 빈 술잔에 술을 채워줄 뿐이었다. "너는 편의점 알바만도 못해, 쉽게 이야기해서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맞겠다.  웃음소리 걷는 것 다 경박해 듣기 싫어"

옆에 있던 우리 부서 팀장은 눈은 동그랗게 뜬 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냐며, 아이가 실수를 했다면, 예쁘게 봐달라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취기에 얼굴이 달아오른 타부서 팀장은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싫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만취가 되어 그 사람이 떠나고, 우리 팀장 얼마나 그 사람을 씹던지 본인 앞에서 자기 팀원을 까 내리는 건 얼마나 자기를 무시하고 있는거냐며. 그냥 네가 따박따박 할 말하며 일하는 것이 싫은 양반이니 똥 밟았다 생각하라고 다독였다, 나는 직위는 같으나 직급이 다른 우리팀장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기분이 정말 더 우울해졌기에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팀장은 내게 미안한 건지 길길이 날뛰며 술을 한잔 더하자며… 나는 답답하게 그저 따를 뿐이었다. 변기를 부여잡고 먹은 술을 게워냈는데도 정신이 멍했다. 그리고 목이 찢어질 것 같아 눈물이 고이는 것 말고는 눈물도 안 났다. 그 말들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그저 내 존재자체가 못마땅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났다. 더 이상 나는 걸을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눈빛조차 전부 싫다고 표현했으니 물론 쳐다 볼 수도 없었다. 내 존재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는 한 삼일동안 미친년처럼 엉엉 울다 해가 뜨면 화장을 하고 또 다시 구두를 신었고 주먹을 꽉 쥐고 생각했다. 

다들 이렇게 살아


며칠 뒤 몇몇의 팀장과 과장들, 사원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어느 부서의 팀장이 술에 취해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앉더니, 구두를 벗겨 발을 만졌다. 나는 순식간이라 무척이나 놀라고 그 자리는 잠시 동안 정적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대화의 주제를 돌리던 내 사수. 다른 상사에 의해 상황은 다행이도 종료되었지만, 이미 내 마음은 배신감이었다. 시선을 빠르게 거두어들이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하던 사수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날도 사람들 다 이렇게 산다며, 눈물을 꾸역꾸역 삼켰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들 앞에서 웃었다. 최대한 경박스러워 보이지 않도록.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다들 내가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내 마음은 고장 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남들 다 이렇게 살아’ 에 맞추지 못하고 이 뭣 같은 상황에 적응치 못하는 내 탓만을 했다. 밤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 내 무감각한 세상엔 더 이상에 감정이 없는 것 같이 느껴져서. 정말 살아가는 것이 아닌 억지로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은 거울을 봤는데, 다 내 탓이구나 내가 부적응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깨부수고 거울 조각을 손에 들곤 죽어버리고 싶다 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관뒀다. 남들처럼만 살기위해 버텼는데, 나는 그냥 죽기일보직전이었으며 이 모든 것에 익숙해지고 나면, 나도 누군가에게 ‘다들 이렇게 살아’라며 다독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기보다 싫었으며, 나는 모든 것을 버린 채 그들의 세상에서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나는 히피가 되어 세상을 떠돌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하자면,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달간 머물렀던 독일에는 모든 도시중간에 큰 공원이 있다. 공원을 없애고 건물을 올리는 것이 아닌, 국민들은 자연을 당연한 권리로 보장받고 살아간다. 스페인에는 여전히 시에스타가 있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모든 가게의 문을 닫는다, 그렇게 여유를 보장받고 있다. 프랑스에는 국민에게 저녁이 있다.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워라밸(work-life and balance)이 그곳에선 당연하다. 우리는 나쁜 전통에 익숙해질 필요가 없다. 히피 생활은 내게 여유와 평화를 알려주며 삶의 질을 높여주었다. 나는 더 이상 외국에 가지 않아도 적당 선을 안다, 악습이 무엇인가를 알며 할 말은 하며 퇴근 후 시간의 사용법도 안다, 점심시간엔 먹고 싶지 않은 짬뽕을 거절하며 회사 근처를 여유롭게 산책하기도 한다, 모두에게 하루는 빠짐없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천하기 위해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다들 이렇게 살아’라는 폭력적인 말로 존나게 버티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악습은 악습일 뿐, 절대 융화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글을 쓰며 ‘W.H.I.T.E.’ 의 ‘네모의 꿈’을 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다들그렇게 살아’는 그저 그들의 꿈일 뿐, 세상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W.H.I.T.E. - 네모의 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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