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enker Jan 21. 2020

예술가

CHAPTER.6




할로윈이었다. 그 할로윈의 날은 떨어진 낙엽 때문에 진회색 길거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며, 거리의 상점들을 보고 있자면 주황색과 검정색으로 이루어진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떠올랐다. 거리만 걸어도 신나는 날이 있다. 그날이 유난히 그랬다. 


나는 예술가였다. 파리에서부터, 어쩌면 코팡안에서부터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인 인도에서부터. 사람들은 내게 예술가라고 그랬고 나도 그 말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예술가의 세계에 속해야만 했고 속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은 그것도 병이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나는 병이여도 좋았다. 인생은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뭉개진 아크릴 위에 올라가는 한 겹의 다른 색깔이랄까. 그만큼 예술은 나의 히피 인생에 빠질 수 없는 단어였고 다양한 모양의 예술은 나의 즐거움이었다. 그것이 음악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말이다. 하지만 그중에 꼽자면 나는 낙서를 즐겼다. 그림이라고 하기엔 거창한 그냥 그저 그런 낙서. 낙서의 모양은 때때로는 어린왕자의 보아뱀이 먹은 모자 같기도 했으며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나는 오늘 그중에서도 내가 하지 못한 낙서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파리에 왔다. 그 말은 즉, 이주에 한번 꼴로 파리에 왔다는 뜻이다. 이 여행이 특별해서냐고 묻는다면 NO 아니다. 여느 여행과 같았다. 여전히 배낭은 무거웠고 등은 축축했다. 더 이상 새로운 여행지에서 길을 헤 메지 않았고,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이질감에 익숙해졌는지 어제왔던 곳 마냥 생에 처음 본 에펠탑을 스쳤다. 나는 모든 것이 무덤덤해지는 나의 감정이 슬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파리를 다시 찾았냐고? 그건 사람이었다. 


할로윈이었다. 우리는 파리의 호스텔 앞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다 만났다. 관광지가 없는 11구역에 투어리스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허름한 건물들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탈색한 노란 머리, 삐딱한 입술,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담배연기, 묘하게 촌스러운 낡은 옷 모든 것이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할까.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한국인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카카오톡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파리를 벗어난 후에도 계속해서 그녀의 생각이 났다. 인생에서 두 번 없을 최악을 경험하고는 도망치듯 파리를 떠났었는데, 초콜릿같이 중독성이 깊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지린내 가득한 파리로 다시 날아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통장잔고는 가볍게 무시되었다. 몇 푼으로 나의 그리움을 채울 수 있다면 주머니 속 몇 안 되는 센트까지도 다 털어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만큼 파리는 나에게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가 없을 앞으로의 파리도 나에겐 그녀일 것이다.

나는 담배를 피고 있던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같은 호스텔에 있었으며, 나는 그녀에게 오늘 하루동안 나와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그만큼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우선 11구역의 벼룩시장에서 1유로짜리 원피스와 3유로짜리 외투를 하나 샀다. 그리고 40유로라는 거금을 주고 발에 살짝 큰 닥터마틴 붉은색 워커를 하나 샀다. 이후엔 맥도날드로 향하여 3.99유로를 주곤 해피밀을 하나사선 ‘미드나잇인파리’ 속 남자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지린내 나는 지하철, 바게트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까만 비둘기 떼, 질서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도로, 길 구석구석의 그래피티, 나뒹구는 술병과 골목에서 나는 마리화나 냄새. 그 모든 것을 ‘개 씨발 엉망진창’이라고 칭하며 깔깔댔다. 바토무슈도 그 웅장한 성당도 파리의 개선문도 가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 ‘개 씨발 엉망진창’을 휘저으며 춤추었고 웃었고 오래된 것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해 토론했다. 아주 멋진 날이었다. 나는 여전이 Let’s Do It(Let’s fall in love)을 들으면 스타카토로 끊어 추던 우리의 캉캉 댄스가 생각난다. 남의 시선은 잊은 지 오래였다. 우리의 쾌락이 우선이었으니까. 

문득,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3.99유로짜리 해피밀 영수증 뒤에다 우리는 끄적였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사랑에 빠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겠지만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냥 멈추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취업준비에 금전적인문제에 뜨거웠던 사랑에 앞으로의 불투명한 미래에 인간관계에. 흔히 20대들의 고민들에 아주 많이, 정말 많이 지쳐있었는데 그런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엄청난 것들이 아닌 위로기 때문이었다. 그 때 그 사람의 인생은, 가치관은, 오랜 여행 속에 지친 나에게 위로였다. 냄새나는 지하철 환승역에 주저앉아 글을 쓰는 시간과, 킨더시리얼을 나누어먹던 순간, 파리 11구역에 위치한 숙소 비오는 창가 앞에 앉아 듣던 노래들, 뜨거운 레몬차, 어느 카페 안에서 화가들과 대화하던 그 순간들. 그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순간들이 왜 그렇게 뜨겁게 느껴졌는지, 무감각해진 여행이라는 마라톤에서, 나는 다시 페이스를 되찾았다. 파리에 다녀온 지 넉 달이 되어간다. 넉 달간 아주 빨리도 아주 느리지도 않게 꾸준히 달리고 있다. 위로란 아무런 상처 없이, 어떠한 사랑 없이 이루어 질수 없음을 나는 깨달았고, 내가 두려워 숨겨왔던 모든 감정을, 그리고 나를 터뜨리고 싶었다. 나는 '나의비밀'이란 이름을 가진 내 오래된 일기장을 열었다. 그리곤 다음페이지를 이어간다. 나는 모든 감정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멈추지 않는 것은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녀의 손목에는 아주 작은 낙서가 있다. 그 낙서는 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낙서이기도 하다. ‘DON’T THINK’ 그녀의 손목에 자그마한 고양이와 함께 새겨진 문구이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몸에 영원히 담는 낙서는 이렇게 하는 거라며. 나는 ‘DON’T THINK’가 살며시 보이는 손으로 담배를 말고 있는 그녀가 좋다. 감은건지 감지 않은 건지 모를 만큼 부스스한 그녀의 머리카락도 좋다. 삐뚤어진 입술도 주근깨도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낙서를 그녀로 인해 하지 못하고 있다. ‘DON’T THINK’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편할 것을 나는 그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웃음이 난다. 춤을 추며 와인을 미친 듯이 마시고 싶다. 물론 그녀와 함께. 


작가의 이전글 사람고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