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4
2019년 올 한 해 동안 안식년이라는 명목으로 정말 부단히 놀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가고.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것으로 사용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얻었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안식년이라는 이름처럼 마음껏 안식을 누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아쉬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안식년 동안 무엇을 이뤘는지 물어본다면 어떤 수치화된 무언가를 제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올해 1년은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감사한 것으로 가득 채워졌다. 작년의 나보다 분명히 내가 성장했음을 느꼈고, 서점을 방문할 때면 쉼 없이 적어내던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많이 줄였으며,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다짐했던 독립출판 역시 해냈다. 가장 결정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성과 삶의 모습을 마음껏 수정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올 한 해 읽었던 책들은 서서히 내면에 스며들어서 나의 삶을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내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삶의 방향이 틀리지 않음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많은 이들은 아닐지라도 소수의 사람과 연대하고 관계하는 기쁨을 얻었고, 애써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하게, 든든하게 나를 지켜줄 사람들을 얻었다. 조금은 나라는 사람을 더욱 가까이서 잘 알 수 있게 된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안식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이제는 올해를 정리하는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 30주년이다. 어머니는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끔 혼잣말로 하와이를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곤 하셨다.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셨던지 혼자서 묵묵히 삭혀내시다, 자기도 모르게 하와이라는 단어를 말하곤 하셨다. 사실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너무 내 마음대로 유럽을 여행지로 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역시 많았다. 어머니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은 하와이가 분명한데, 너무 내 마음대로 유럽으로 목적지를 정한 건 아닌가 생각할 때도 많았다.
나의 이런 마음과는 달리 어머니는 유럽을 여행지로 삼았을 때 무척 기뻐하셨고, 여행 중에도 문득문득 즐겁고 행복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가 하와이를 가고 싶으셨을 텐데 하면서, 혼자서 아쉬움을 삼키곤 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뒤 최종적으로 정산을 완료하니, 생각보다 유럽 여행 경비가 많이 남았음을 확인했다. 참 다행스럽게도 하와이 왕복 비행기 티켓을 3개 정도는 끊을 수 있는 정도랄까? 한창 일하고 있어서 매일 출근해야 하는 형을 제외하고, 자신의 매장을 꾸려나가는 아버지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뿐인 나와 전업주부 어머니는 미리 시간을 비워놓는다면 하와이를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향을 물었다. 12월쯤에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하와이를 가보는 것은 어떤지.
다행스럽게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시간을 비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나 역시 비울 수 있었기에 매일 출근해야 하는 형을 제외하고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자, 잔액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건 유럽 여행을 떠나며 그만둔 독서실에서 다시 연락이 와 나에게 아르바이트 제의를 했고, 또 다른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이다. 두 개의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많은 돈은 아닐지라도, 꾸준히 돈을 벌 곳이 되어주었다. 당장 하와이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4개월가량 돈을 열심히 모은다면 10일 정도 떠나는 여행에서 충분할 것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함께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모든 돈을 내가 낼 필요도 의무도 없었지만, 오히려 부모님의 돈을 받아서 쓰는 것이 더 옳은 결정일 수도 있었지만, 내 마음은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내가 번 돈으로 부모님과의 여행을 준비하고 싶었다. 부모님 모두 내색하지는 않으시지만,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시고 당신의 매장을 시작하신 뒤 가정 경제가 전보다는 조금 어려워졌다는 것을 직접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독립 출판물 제목처럼 내가 "쓸모 있는 자식"인가에 대한 생각은 자주 했었다. 한국 나이로 26살이면 어딘가에 취직된 상태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 나는 남들보다 1년 빠르게 학교생활을 시작했으니 친구들은 27살, 대부분 취직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더욱더 깊어졌다. 빨리 직장에 들어가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뜻깊은 무언가를 선물해야 할 것만 같고, 매달 용돈을 드려야 할 것 같고, 살갑게 전화도 문자도 자주 하는 아들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내 머릿속을 맴돌곤 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테고, 아직은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을 시기라는 것도 맞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인스타그램만 봐도, 친구들만 봐도 부모님께 정말 "쓸모 있는 자식"들이 차고 넘쳤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누군가는 어머니와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것만으로 나를 충분히 "쓸모 있는 자식"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이들에 비한다면 부족한 자식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자식의 쓸모가 단순히 돈과 같은 물질적인 부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관계적인 측면,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은 더욱 그랬다. 주변에 다른 자녀들보다 나는 그 어떤 측면에서도 나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그래도 올해는 스스로 안식년을 선포한 까닭에 부모님과의 시간을 많이 쓸 수 있었고, 여전히 우리 가족은 각자의 일정 때문에 바쁜 상황이지만, 언제든 시간이 되는 사람이 두 명으로 늘어난 덕에 조금은 더욱 친밀해졌다. 어머니와의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었던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임을 생각하면 올해 안식년은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 어머니와의 여행을 다녀오면서 가장 걸렸던 부분은 바로 아버지였는데, 그 이유는 지금껏 우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홀로 애쓰셨기 때문이다. 넉넉지 못했던 가정환경 탓에 아버지는 내가 군 전역을 앞둔 순간까지 일을 계속하셔야 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우리 가족은 지금은 남들 다 가는 가족 여행조차 많이 가보지 못했고, 긴 시간을 내어놓아야 하는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떠난 가족여행이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제주도 여행일 정도였다.
사실 부모님을 향한 마음의 부채는 질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어머니를 향한 마음의 부채가 감정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면, 아버지를 향한 마음의 부채는 경제적인 면이 더 컸다. 아버지가 지금껏 우리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생하셨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많이 고민해봤지만, 결론은 내가 그 모든 감정적인, 경제적인 부채를 아버지께 직접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아버지가 되어본 경험이 없기에 그저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가 고생한 만큼, 너도 나에게 잘해야 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저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을 사랑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그 고생을 마다하면서까지 헌신한 것일 테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자식이 감사를 모르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모님께 아무런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배은망덕이 아닐까. 경계선이 참 애매하지만, 부모님에게 받은 것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도를 하는 것이 그나마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여행이 딱 두 달가량 남은 상황이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아는 터라, 아버지까지 동반된 여행은 더욱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지만 그럼에도 여행을 준비하는 지금은 무척 즐겁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부모님께 드린다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저 바라는 것은 부모님이 푹 쉬고, 마음껏 즐기고 오실 수 있도록 나는 환경을 제공해드리는 것. 부모님은 그 환경에서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며 기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