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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Mar 09. 2020

백수에게 필요한 건 ‘소소한’
성취감

자꾸 거절당하는 일상을 지탱하게 하는 힘 

또 떨어졌다.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이고 우대조항 중 세 가지나 해당되는 경력자인데도 떨어졌다. 면접 때 그만하면 대답도 잘 한 것 같은데 떨어졌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몇 번씩 확인하고, 사이트에 들어가 공지사항을 연거푸 새로고침해 보다가 결국 포기한다. 스멀스멀 우울감이 밀려든다. 경험 상 사흘 정도는 무기력해질 것이 확실한 강도의 우울감이다. 억지로라도 떨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급기야는 열패감에 휩싸여 지금까지의 상황을 하나 하나 복기하기 시작한다. 


사실은 서류 전형때 떨어졌어야 했는데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그냥 불렀나?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물어보는 좋은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면 무슨 소리 하나 들어나 보자는 심산이었나? 속으로는 비웃으면서 떠본 거야? 그때 옆에 앉았던 사람한테는 변변히 질문 기회도 안 돌아갔는데 혹시 오히려 내정자인가? 내가 거쳐간 회사 중 그들이 싫어하는 데가 있었나? 내 이력서를 보고 누구한테 물어봤나? 내 얼굴이나 태도가 기분 나쁜가? 안 그러면 맨날 이렇게 떨어질 리가 없잖아?... 


결국은 그냥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관상이고, 복이 지지리 없는 팔자에, 평균에도 못 미치는 능력부족이니 이 상태는 어제고 오늘, 또 내일도 영원히 나아질 리 없다는 결론으로 끝이 난다. 절망이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노트북을 켠다. 이번 면접 준비하느라 소홀히 했던 자격증 시험 일정을 체크해 보고 올해 안에 반드시 패스하리라 다짐해본다. 2주 후 제출해야 하는 원고 아이템도 챙겨보고, 지금 듣고 있는 강의에서 강사님이 읽어보라고 했던 책도 주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도 떨어지다니 난 망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그래도 꾸역꾸역 한다. 지금 나한테는 쓸데없거나 사소하더라도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아무리 자잘한 일이라도 조금씩 모아서 한다.   


브런치에 이 글을 쓰는 것도 작은 노력들 중 하나다. 그 어디라도 지원서를 내면 쬐끔이라도 기대하기 마련인지라 '아쉽게도 이번 기회에는 당사와 함께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정중하면서도 영혼없는 낙방 통보를 받으면 이런 저런 안 좋은 생각들이 줄을 잇는다. 이때 그럭저럭 정리된 글로 옮겨 놓고 나면 더 이상의 비약은 막을 수 있다.(다만 우울한 글을 읽는 분들께는 죄송) 


글을 쓰는 것 외에도 이것 저것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한다. 뭐 하나, 큰 돈이 생기던가 직장 건강보험에 다시 가입된다던가 남들이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드는 일은 아니지만 여튼 끝내면 잔잔한 만족 정도는 얻을 수 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 기운이 있을 때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정 못 견디겠으면 그때 울거나, 자거나, 쓰러지면 된다. 


예전에도 꽤 기대를 걸었던 자리에 떨어진 적이 있다. 그때 겉으로는 괜찮은 척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그야말로 '마상'을 입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내가 그 자리가 힘들고 골치도 아플 거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나 보다. 그랬더니 지인이 받아쳤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래요? 여우의 신포도 같은 심리인가?" 순간 멍했고, 그냥 대충 얼버무리다가 다른 화제로 넘어갔던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선택되지 않은 곳에 대한 코멘트는 최대한 삼가야지 안 그러면 우스워 보인다는 교훈을 얻었다.(그 이후로 여우 캐릭터가 싫어짐)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타인이나 외부 환경이 아닌 나 자신에게 찾는 건 물론 당연하다. 그러나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어 예민해졌다면 바깥의 조언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무신경하게 한 마디 보태는 것은 물론 객관적인 사실에 바탕한 지극히 합리적인 조언일 지라도 데미지가 크다. 어쩔 수 없다. 방사능이 섞인 비처럼 그냥 맞아야지 피할 도리가 없다. 인간관계를 다 끊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대신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 지나가는 코멘트에 흔들리지 않는 맷집을 키워야 한다. 그건 일상 속에서 작게 시작해서 끝맺는 소소한 일들이 주는 성취감이 쌓이면서 생긴다. 


누구나 알만한 회사에 다니거나 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매번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할 지 주저되지만, 아침에 일어나도 딱히 갈 데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은 챙기고 살아간다는 느낌. 세상은 자꾸 나를 거절하지만 나는 기꺼이 손을 뻗어 연결을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 그런 결실들이 쌓여 어느덧 다음 기회를 노리는 힘이 된다. 이번에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하신다면... 다음에 봐요.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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